16일 임영웅의 31번째 생일을 맞아 그의 든든한 지원군인 '영웅시대'가 준비한 이벤트 카페의 모습이다. 빈자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정말 많은 사람이 몰렸다. 영유아부터 중년층까지 이곳을 찾은 이들의 나이는 달라도 최애 가수를 향한 '덕심(心)'으로 하나 된 모습이 눈길을 끈다.
◇ "나이는 숫자일 뿐" 덕질에 열정 쏟는 5060
미스터트롯 출신 팬덤은 1020세대가 이루는 아이돌 팬덤형과는 연령대가 조금 다르다. 이곳을 찾은 대부분의 고객도 중년 여성이 상당수다.
'까르르'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는 이들의 나이를 잊게 한다. 2~4명의 중년 팬이 모여 가족, 집안일 이야기를 하다 "영웅이 얼굴이 살이 쏙 빠진 것 같다"며 좋아하는 가수의 건강을 걱정하기도 한다. 1020 팬덤에선 볼 수 없는 진기한 광경이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중년 팬 2명이 의자에 앉아 임영웅 사진을 보며 감탄을 쏟아냈다. "우리 손주 나이 또래라서 (임영웅이) 더 예뻐 보인다. 너무 예쁘다"는 중년 팬의 말에 동석한 다른 팬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이처럼 친구와 이벤트 카페를 찾은 중년 팬은 물론 혼자 이곳을 찾은 팬도 많았다. 임영웅의 팬인 어머니와 함께 카페를 찾은 자녀도, 손주의 손을 잡고 카페를 찾은 중년 팬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단순히 좋아하는 가수의 현수막, 액자 등을 보기 위해 이곳에 모인 것이 아니다. 카페 한 쪽에선 임영웅을 위한 생일상이 준비돼 있고 다른 한 쪽에선 생일 이벤트가 한창이다. 굿즈를 판매하는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다. 모두 '영웅시대' 회원들이 팬심 하나로 시작한 것이다.
이같은 이벤트 카페는 전국 곳곳에 마련돼 있다. 일부 중년 팬들은 영웅시대 팬들의 이런 노력을 응원이라도 하듯 카페 순례를 하며 온라인 인증을 이어가고 있다.
◇봉사·기부로 덕질 빛내는 중년들
중년의 덕질은 젊은 세대의 팬 문화와 똑 닮았다. 좋아하는 가수가 출연하는 TV 프로그램의 본방 사수는 물론이고 관련 기사를 전부 확인한다. '스밍 총공(음원 스트리밍 총공격)' '기부 서포트' '조공(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 '굿즈' 등도 빠지지 않는다.
이날 생일 이벤트 카페에서도 열쇠고리, 우산, 티셔츠, 휴대용 선풍기 등 임영웅과 관련한 여러가지 굿즈가 판매되고 있었다.
굿즈는 단순히 캐릭터 상품을 소비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중년 팬들은 굿즈 구매를 통해 자신이 즐기는 취미와 기부를 동시에 진행한다.
영웅시대 회원들에 따르면 임영웅 굿즈 역시 판매 수익은 임영웅과 팬덤의 이름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쓰인다.
굿즈를 구매한 한 중년 팬은 "희소성이 있는 상품인데다 팬덤이 판매 수익금으로 기부, 봉사 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이에 동참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임영웅을 비롯한 미스터트롯 출신 가수들의 팬덤은 그간 사회 곳곳에서 기부와 봉사로 선한 영향력을 펼치며 팬덤 문회의 귀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임영웅의 대전·세종 팬클럽 '영웅시대 위드 히어로(With Hero) 대전·세종'는 이날 대전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3년간 1000만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하고 지역 나눔리더스클럽 8호로 가입했다.
또 영웅시대는 임영웅이 생일을 맞아 지난 14일 사단법인 밀알심장재단에 2771만9392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영웅시대 회원들이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방문해 성금 약 3700여만원을 전달, 나눔리더스클럽에 가입했다. 이 외에도 취약계층 아동, 지역아동센터, 미혼모 시설, 조손가정 돕기 등에 나서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종로구 지부는 흥인지문 일대를 푸르게 해달라며 나무를 기부하기도 했다. 영웅시대 위드 히어로의 후원으로 서울숲 호수 주변에 임영웅의 '별빛정원'도 생긴다.
지난 6월9일 미스터트롯 출신 가수 김희재의 생일을 앞두고도 팬덤의 기부 행렬이 일었다. 공식 팬카페 '김희재와 희랑별'은 사랑의열매에 4900여만원을 기부했다. 팬카페 '김희재와 희랑단결'도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1069만원을, '김희재와 대구경북 희랑'도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 대구나음소아암센터에 후원금 200만원과 헌혈증을 전달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가수 영탁, 김호중, 이찬원, 장민호, 정동원, 송가인 등 팬덤도 활발한 나눔 활동을 펼치고 있다.
◇ '똑똑한 덕질'로 성숙해진 팬덤
'액티브 시니어' 또는 '오팔(OPAL·Old People with Active Lives)'세대라고도 불리는 5060대 중년들은 젊은 세대 못지않게 트렌드에 밝고 경제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취미 활동을 즐긴다. 젊은 층 못지않게 인터넷과 스마트폰 활용에 익숙해 온·오프라인 활동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자신을 위한 소비에도 아낌이 없다. 덕질도 이같은 활동 중 하나다.
최애 가수를 위해선 뭐든 다 하는 중년 팬이지만 이런 팬덤의 마음을 교묘히 이용하는 업체의 상술에는 가차 없다.
실제 영탁 공식 팬카페인 '영탁이 딱이야'는 이날 공지를 통해 "우리 공카는 트롯픽 투표를 하지 않는다"며 "과대경쟁과 상술을 반대하며 아름다운 퇴장을 위해 팬님들과 함께 트롯픽 보이콧을 선언했다"는 공지를 올렸다.
팬카페에 따르면 트롯 분야 팬덤 앱인 '트롯픽'은 본래 매일 출석하면 하루 1표씩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지지할 수 있는 투표권(스타픽)을 얻을 수 있었다. 보이콧 이전 트롯픽에서 영탁이 63주 연속 1위에 오를 정도로 그의 팬들은 화력을 집중했다.
그러나 지난 3~4일 트롯픽에서 운영 중인 무료충전소의 투표권이 100배로 불어났다. 일례로 구매하면 몇 십픽이 부여됐던 특정 상품이 7100스타픽을 얻을 수 있게 바뀌었다. 1000일을 매일 출석해야 1000스타픽을 얻을 수 있었던 팬들은 분노했다.
이에 트롯픽 측은 사과공지글을 올렸지만 팬카페는 트롯픽 보이콧 투표를 진행했고 80% 이상의 동의를 얻어 급기야 지난 5일 보이콧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영탁 팬카페 측은 "과도한 상술에 제동을 건 아름다운 팬덤의 길을 최초로 걷고자 한다"며 "과도한 경쟁을 유도하고 악플을 양산하는 아티스트 투표문화에 대해서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아티스트가 재능으로만 평가받고 지지받는 성숙한 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임영웅 팬덤 등에서도 일부 상술이 의심되는 앱에 대해 자율적인 보이콧이 일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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