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준 작가는 왜 ‘번개장터’에 10억 목걸이를 팔았을까

송호준 작가는 왜 ‘번개장터’에 10억 목걸이를 팔았을까

기사승인 2021-06-26 06:00:02
사진=25일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송호준 미디어아트 작가는 세계 여행에 타고 떠날 요트에 달 돛을 내어 보이며 ‘송호준 요트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다. / 박태현 기자

[쿠키뉴스] 신민경 기자 =“죽음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 차는 목걸이. 구매하시면 목둘레에 맞춰 스테인레스 줄을 조정해 고정해드림.”

떠오르는 미디어 아트 거인 송호준 작가가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본인 작품 ‘방사능 목걸이’를 내놓았다. ‘죽음 시음’이라는 주제로 만든 그의 작품 가격은 9억9999만9999원.

“요새 송 작가가 생활이 많이 어렵나”라는 걱정은 넣어두길 바란다. 요트 해외 여행을 앞둔 그는 누구보다 즐거운 ‘행복회로’를 머릿속에서 돌리고 있으니 말이다.

25일 서울시 마포구 망원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송 작가는 번개장터와 시작한 ‘요트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진=송호준 작가는 MBC every1 예능프로그램 ‘요트원정대’ 출연을 계기로 요트 덕후가 됐다고 이야기했다. / 박태현 기자

지난해 10월 송 작가는 그간 좋아했던 캠핑, 낚시 등 모든 취미 용품을 청산하고 요트를 사서 바다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요트 매력에 빠지게 된 데에는 MBC every1 예능프로그램 ‘요트원정대’ 출연 계기가 컸다. 다양한 영감이 필요했던 시기에 먼바다의 역동성은 송 작가에게 무섭기도 하면서 따뜻함을 안겨줬다. 바다 매력에 빠진 후 요트 덕후(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가 된 송 작가는 지인들에게 “나 다 팔고 요트 살거야”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고 다녔다고 한다.

캠핑, 낚시, 덕후였던 송 작가는 요트 덕후로 거듭나기 위해 각종 아웃도어용품과 지난 2013년 세계 최초로 개인 제작해 쏘아 올린 인공위성 프로젝트에 사용했던 통신 장비 등을 번개장터에 판매해 요트 구매 비용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취향 거래 지향 플랫폼 번개장터는 송 작가의 새로운 취미를 응원하며 그의 요트 구매를 위한 중고거래를 지원했다.

250개 물건을 번개장터에 팔아 송 작가가 마련한 금액은 총 4000만원. 그간 모았던 돈과 합쳐 10명 정도 탑승 가능한 1억원 상당의 40피트 요트를 구매했다.
사진=송호준 작가가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를 통해 작품을 전시한 소감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박태현 기자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 그의 요트 구매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새로운 방식의 전시를 위한 송 작가의 도전이기도 했다.

“작품이 어떤 반응을 끌어내는지 최근 관심을 갖게 됐어요. 예측하기 어려운 다양한 관객 반응을 경험하고 싶었죠. 번개장터에 작품을 내놓았을 때 색다른 반응 경험이 가능했어요. 관객들은 댓글이나 채팅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해줬죠. 비교적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을 가진 미술관 전시에서는 이런 포인트들을 느끼기 어려웠어요.” 송 작가는 설명했다.

취미가 비슷한 이들을 만나 이야기할 수 있었던 모든 거래가 송 작가에겐 큰 영감이 됐다. 그는 “관심사가 겹치지 않는 사람간의 대화는 감흥이 없지만 같은 관심 분야를 가진 덕후끼리 만나면 동호회가 꾸려지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취미를 공유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에서 큰 에너지를 얻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송 작가의 전시는 때로 따가운 시선과 마주하기도 했다. ‘항문 컴퓨터 인터페이스’ 전시 건이다.

“국내에서는 손을 들고 질문하기 꺼리는 문화적 특성이 있어요. 손을 들고 질문하는 학생들에게 딴지 걸지 말라며 타박한 구시대적인 교육 방식이 만들어 낸 아픈 현실이죠. 이걸 풍자하기 위해 만들었어요. 들기 부끄러운 손 대신 괄약근을 조절해 질문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었어요. 이걸 플랫폼에 올리자 한 네티즌이 ‘왜 이런걸 번개장터에 올리느냐’며 타박했죠.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했는데, ‘왜 이런걸 번개장터에 올리느냐’는 말 자체가 무섭게 들리더라고요.” 송 작가는 쓴 미소를 지었다.
사진=6월 26일부터 27일까지 서울 마포구 망원동의 송호준 작가 작업실에서 진행되는 ‘이제는 육지를 떠날 때–로그아웃’ 전시 내부 전경. / 번개장터 제공

번개장터 플랫폼에서만 볼 수 있었던 그의 전시는 오는 26일부터 2일간 ‘이제는 육지를 떠날 때–로그아웃’이라는 주제로 그의 작업실에서 마무리된다. 송 작가가 15년간 해왔던 작업과 필요했던 여러 가지 물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의 작품이나 물품을 중고로 구매할 수도 있다. 

비우고 떠나기 프로젝트 과제가 아직 남아있는 송 작가는 “블랙 코미디로 웃고 까불면서 인공위성 날리기 프로젝트 등 여러 작업을 진행한 작업실에서 마지막 중고거래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많은 작품과 이야기가 있으니 들러서 많은 것들을 나눠 가져가시고 둘러보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전시를 마친 뒤 송 작가는 요트를 타고 내달 9일 러시아로 떠난다. 러시아 캄차카반도로 떠날 예정이라고 그는 말했다.

“온갖 고래들이 모여서 먹이활동도 하고 짝짓기도 하는 곳이에요. 북극여우, 곰 등 다양한 동물이 사는 곳이죠. 경치가 되게 좋은 곳이에요. 경치만 보러 가는 건 아니에요. 요트로 하는 삶의 형태를 알아보고 싶어요. 작업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죠.” 송 작가의 눈은 반짝였다.

요트 여행을 다녀와서도 송 작가의 ‘비우기 프로젝트’는 계속된다.

“‘물리적인 걸 모두 디지털로 업로드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미디어 아트 작가로서 자주 하고 있어요.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SF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가 현실이 되고 있잖아요. 먼저 내 주변에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없애는 게 실현하기 위한 발판의 첫 단계일 것 같아요. 계속 없애야죠. 그 수단이 계속 중고거래가 될 것 같아요." 송 작가는 다짐했다.

smk5031@kukinews.com
신민경 기자
smk5031@kukinews.com
신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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