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인 떠난 날, 페이커는 말했다

양대인 떠난 날, 페이커는 말했다

기사승인 2021-08-25 18:05:54
손석희 T1 감독대행(좌)과 '페이커' 이상혁.   라이엇 게임즈 제공


[쿠키뉴스] 문대찬 기자 =“코치님을 믿어요.”

팀의 심장이 건넨 말 한 마디에 경험 없는 젊은 감독대행은 마음을 다잡았다.

T1은 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 롤파크에서 열린 ‘2021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서머 스플릿 플레이오프(PO) 2라운드에서 젠지e스포츠를 3대 1로 꺾었다. 결승에 진출한 T1은 아울러 ‘LoL 월드챔피언십(롤드컵)’ 진출을 확정지었다. 

T1의 올해는 다사다난했다. 올해 초 T1의 지휘봉을 잡은 양대인 감독은 10인 로스터를 이용한 무한 경쟁 시스템을 도입했다. 선수단의 기량을 끌어올리고 최적의 조합을 찾겠다는 심산이었지만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계속되는 경쟁에 피로감과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선수들도 있었고, 호흡을 좀처럼 맞추기 힘들다보니 팀 경기력도 들쑥날쑥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 7월 날벼락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15일 KT 롤스터전을 앞두고 양대인 감독과 이재민 코치가 경질됐다. 시즌 마감을 한 달도 남기지 않은 시점에서 나온 구단의 일방적인 결정에 팬들은 우려를 표했다. 양 감독을 신뢰하고 따랐던 선수단의 분위기도 급격히 가라앉았다. 

하지만 T1은 이날 KT전에서 완승을 거두며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고, 이후 정규시즌 마감까지 6승2패를 거두며 시즌 4위로 PO에 진출했다. PO에서도 T1의 상승세는 계속됐다. 1라운드 리브 샌드박스를 3대 0으로 꺾은 데 이어 젠지마저 넘어서며 담원 기아와의 결승전을 목전에 뒀다.

“서머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롤드컵 진출을 확신하지 못했다”는 ‘페이커’ 이상혁의 고백처럼, 기적에 가까운 여정이었다. 임시로 T1의 지휘봉을 잡은 손석희 감독대행은 24일 열린 결승전 미디어데이에서, 팀이 역경을 헤쳐 온 과정을 비로소 취재진에게 털어놨다. 

먼저 손 감독대행은 “사람은 한 치 앞을 볼 수 없다는 걸 느낀 시즌이었다”며 “선수들과 코치님들이 함께 열심히 한 끝에 여기까지 온 것이지, 딱히 내가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아서 앞으로도 그렇게 할 예정”이라며 소회를 밝혔다.

그는 감독 경질 당시의 상황에 대해 “어쨌든 남아 있는 일정을 치러야 했다. 따라서 선수들이 동요하는 걸 최대한 케어 해 줬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설명하는 데 집중했다”며 “남은 사람들끼리 시즌을 치러야 하기에 우리가 뭉쳐야 하고, 난관을 헤쳐가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독려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이어 “(감독 경질에) 의문을 제기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선수들이 많이 불안해했다. 반면 ‘페이커’ 선수처럼 ‘저는 코치님 믿어요’라고 말해준 선수도 있었다”며 “스스로를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내가 여기서 모범을 보여야만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손 감독대행은 “변화가 생긴 뒤 KT전을 치렀는데, 그 경기를 잡으면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가 자신감을 얻었다. 흔들리는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보다 잘하는구나’, ‘우리도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다른 팀을 보며 좋아 보이는 전략 같은 걸 배우려 노력했고, 내부적으로는 선수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성 등을 최대한 수용하며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상혁은 손 감독대행에 대해 “갑작스레 감독대행이 되셨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잘 이끌어주시고 있다”며 신뢰를 드러냈다. 

손 감독대행은 “담원이 작년 롤드컵 우승자이기도 하고 스프링 시즌 우승도 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담원 기아의 우승을 점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언더독으로서 신인과 베테랑 선수가 모두 잃을 것 없는 투지 있는 모습을 보여주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 같다”고 자신했다. 

mdc0504@kukinews.com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
문대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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