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요소수 공급의 과반을 차지하는 롯데정밀화학은 이달 말까지 요소수 생산을 위한 요소 재고분만을 확보해둔 상태다.
우리나라는 요소수 핵심 원료인 요소를 거의 중국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이 지난달 자국 수요 부족 등을 이유로 사실상 요소 수출을 제한하면서 국내에 요소수 대란이 발생했다.
국내에서 요소를 전혀 생산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롯데정밀화학이 2011년까지 요소를 생산했다. 하지만 원가 경쟁력 및 수요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해 그해 사업을 접었다. 이후엔 요소를 수입해 물과 혼합해 요소수를 만들어 국내에 공급해왔다.
요소 생산기술은 고부가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국내기업들이 다시 생산을 할 수는 있긴 하지만, 현재 국내에 필요한 요소수 수요를 충당하기까지는 최소 반년 이상의 시일이 필요하다.
요소수 대란으로 가장 큰 타격이 예상되는 산업군은 철강업과 시멘트업이다. 이들 산업은 요소수를 사용해 제조 공정 중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을 제거한다. 공정 차질이 불가피하다.
포스코는 질소산화물 저감을 위해 그동안 요소수를 사용해왔다. 현재 확보한 요소수 재고는 약 1개월 정도 사용한 수준으로 충분한 요소수 확보가 되지 않는다면 향후 공장 가동에 차질이 예상된다.
포스코 관계자는 “향후 수급 여건에 대해 면밀히 상황을 살피고 있는 중으로 최대한 요소수 확보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시멘트업계도 비상이다. 최근 유연탄 가격 급등으로 어려운 경영 상황을 맞은 가운데 요소수 대란까지 이어지면서 설상가상인 상황이다.
시멘트 친환경 생산설비에는 요소수가 필수적으로 들어가는데 부족할 경우에는 시멘트 생산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시멘트를 운반하는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 차량에 요소수가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생산설비 가동이 중단된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이미 요소수를 충당해야 할 시기가 도래한 일부 BCT 차량에서는 부득이 운행을 중단하는 사례가 나타나는 등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최근 유연탄 가격 급등으로 연간 유연탄 구매비용 약 5700억원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어려운데 요소수 대란까지 겹치면서 시멘트산업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까지는 직접적인 피해는 없지만, 향후 전개 상황에 따라 다른 산업으로 피해가 옮겨갈 가능성도 제기된다.
해운업계에서는 요소수 대란 지속으로 디젤 화물차 운행이 차질을 빚는다면 물류 대란이 빚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선박에는 요소수가 사용되지 않아 해상운임은 당장 문제가 없지만 부두로 옮겨진 대형 컨테이너들이 제때 빠지지 않는다면 물류 혼선이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전 세계 물류 대란으로 국내 물류항에서의 적체가 여전한 상황에 국내로 들여온 물류 적체까지 더해진다면 또 다른 물류대란이 생길 수 있다.
정부는 최근 발생한 요소수 품귀현상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범부처 차원의 대응에 나섰다. 이억원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이날 오전 10시 30분 정부서울청사에서 요소수 수급 관련 범부처 합동 대응 회의를 열고, 국내 요소·요소수 수급 현황 및 향후 대응방안 등을 점검·논의했다.
이날 정부는 해외로부터의 물량 확보가 긴요한 만큼 우선적으로 중국정부에 우리 기업이 중국 기업과 이미 계약한 수입물량을 중심으로 신속한 수출 통관 절차 이행을 요청하는 외교적 협의를 지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제3국을 통한 대체 수입 물량 확보 차원에서 수입 가능성이 높은 국가들을 대상으로 신속한 물량 확보에 나선다.
정부는 베트남으로부터 내주 중 차량용 요소 200톤을 도입하는 것을 확정했고, 베트남으로부터의 추가 도입을 협의 중이다. 여타 국가를 대상으로도 약 1만톤 정도의 물량 수입을 협상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요소수 대란은 글로벌 공급망 관리의 실패로 봤다. 요소수 생산이 기술집약적 고부가 가치 산업은 아니지만 일부 공공재의 성격을 지닌 만큼 안정적인 수급 관리가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요소수 대란은 글로벌 공급망 관리가 안 된 게 근원적인 이유”라면서 “핵심적인 소재 부문을 어느 한 국가에 의존하는 것은 곤란하고, 다양한 형태로 공급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적어도 국내 산업이나 운송시스템에 있어 현실적으로 의존도가 높은 부문은 일부 특정국가에 종속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채산성이 좋지 않아 사기업이 생산을 포기하더라도 공공재 성격을 지녔다면 정부가 나서서 손실을 감수하고도 일정부분 생산 또는 공급망 확보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요에 따라 민간기업들이 요소수 시장에 다시 뛰어들 가능성이 있으나, 요소수 수급 안정화 시점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이라며, “요소수 안정화 시점까지는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