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노동자들이 건설안전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건설안전특별법은 건설사고로 목숨을 잃는 노동자를 줄이기 위해 발주·설계·시공·감리자 등 건설공사 참여자별로 건설안전에 대한 책임을 명확하게 부여한 특별법이다. 건설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합당한 책임을 지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다만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건설업계에서는 특별법이 산업안전보건법 및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과 상당부분 내용이 겹치면서, 건설사고 예방 보다는 처벌 만능주의에 치우쳐 있다고 지적한다. 국회도 제정에 찬성하는 여당과 반대하는 야당으로 입장이 갈려 특별법을 놓고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17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전날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건설노조)은 국회 앞에 모여 건설안전특별법을 즉각 제정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김교흥 의원이 대표 발의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는 요구다.
건설노조 측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나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에도 건설 현장의 재해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건설현장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건설공사 주체들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특별법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에서 담지 못한 부분을 보완해 줄 것이라는 기대다.
건설노조 측은 “대한민국 GDP의 15.2%를 차지하고 있으며, 200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는 건설산업은 국가의 근간 산업임에도, 하루 2명씩의 노동자가 죽어나가도록 방치되는 산업”이라며 “2019년 428명, 2020년 458명 하루에 2명씩 노동자의 시신이 무덤을 이루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건설노동자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고, 기다릴 수 가 없다”면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건설안전특별법이 제정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대재해처벌법과 닮은 듯 다른 특별법
특별법을 중대재해처벌법과 비교하면 건설업에 특화됐다는 차이가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광범위한 산업재해로 다칠 수 있는 일반 시민과 더불어 노동자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제정된 법안이다. 이와 달리 특별법은 산업재해 예방의 목적은 같지만 건설산업의 특성을 반영해 만들어지며 건설공사에만 적용된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공사 발주자의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현재 공공공사의 경우 공사기간과 적정 비용을 산정하는 절차가 마련되어 있으나 민간 공사는 이러한 절차가 없다. 이에 노동자들이 촉박한 공사기간과 낮은 비용으로 위험한 공사 환경에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별법은 민간 공사도 발주자가 적정한 기간과 비용을 제공하고, 이를 지자체 등이 검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별법은 원청 건설사의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원청 건설사가 건설 현장의 안전관리를 책임져야 하며, 안전 발판 등 다수 하청 건설사가 사용하는 안전시설물을 직접 설치하도록 했다. 여기에 감리자는 건설사가 설계도서, 안전관리계획서 등에 명기된 안전규정을 준수하는지 확인하고, 사고가 우려되는 경우 공사를 중지하도록 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특별법은 발주자나 원청 건설사 등 상대적으로 공사의 권한이 큰 주체에게 책임을 무겁게 규정하고 있다.
만약 소홀한 안전관리로 사람이 사망할 경우 형사책임을 묻는다. 건설사업자, 건설엔지니어링사업자, 건축사에게는 1년 이하의 영업정지를 부여하거나 매출액에 비례하는 과징금을 부과한다. 특히 발주․설계․시공․감리자가 특별법에 따른 안전관리 의무를 다하지 않아 발생한 사고로 사람이 사망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는다.
◇업계 중복입법·처벌 우려에 ‘전전긍긍’
건설업계에서는 특별법 제정에 걱정스럽다는 반응도 나온다. 먼저 중복 처벌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관리 소홀로 산재사고가 날 경우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별법에서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동일한 문제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과 특별법의 중복 처벌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또한 두 법의 처벌 수준이 달라 사고 발생 시 어떤 법을 적용해야 하는가의 문제도 남는다.
여기에 중대재해처벌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산업안전 관련해 이미 다수의 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특별법의 제정은 기업의 경영 자율성만 제약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담당부처인 고용노동부에 특별법의 담당부처인 국토부까지 ‘시어머니’ 성격의 감독당국만 늘어나는 꼴 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밖에 건설업계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에 들어가지도 않은 상황에서 처벌 중심의 특별법까지 만드는 현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제정에 반대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건설안전특별법은 동일한 사고에 대해 중복·가중처벌 가능성이 있어 우려가 높다”며 “건설사들의 손실을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형 건설사 보다는 중소형 건설사들이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면서 “문제 해결보다는 과도한 처벌 중심의 법안이 늘어나고 있어 건설사들 사이에서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