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정부와 다르다, 또 달라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현 정부의 국정 전반을 비판하며 묘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탈문재인 행보’가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후보는 19일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국민의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어 공시가격 정책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에 협조를 요청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부동산 공시가격은 취득세·재산세·양도소득세 등 각종 부동산 세금을 물리는 기준이다. 정부는 오는 23일 공동주택 공시가 발표를 앞두고 있다. 사실상 이 후보는 정부가 추진해온 공시가 현실화 기조에 반기를 든 셈이다.
최근 이 후보는 현 정부와의 ‘선 긋기’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지난 10일 경북 경주의 ‘황리단길’에서 즉석연설을 통해 “저는 문재인도 아니고 윤석열도 아니다. 이재명은 이재명이다. 이재명이 만들 세상은 지금까지와는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강조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정권교체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점도 정부와 거리를 두는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부동산 실책 등으로 인한 민심 이반이 정권교체론으로 표출되는 상황인 만큼, ‘민생정치’를 부각함으로써 답보 중인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가 ‘K방역’이라고 지칭하며 최대 성과로 꼽히는 방역 대책도 지적했다. 이 후보는 지난 10일 “전 세계에서 방역 잘한다고 칭찬받는데 방역 그거 누가했나, 사실 여러분들이 했다”며 “나라가 뭐 마스크를 하나 사줬나, 소독약을 하나 줬느냐, 무슨 체온계를 하나 줬느냐”라고 반문했다. 이어 “다른 나라 같으면 마스크 안 사주고 ‘마스크 써라’ 하면 폭동이 난다”며 “그만큼 우리 국민이 위대하다”고 말했다.
백신 부작용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국가가 증명하지 않는 한 완전하게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안”이라고 언급했다. 야당조차 말을 아끼는 ‘백신 부작용’ 문제를 여당 대선후보가 직접 수면 위로 띄우고, 정부 책임론을 강조한 셈이다.
현 정부의 최대 실책으로 거론되는 부동산 문제도 직격했다. 이 후보는 지난 7일 규제 강화 중심의 부동산 대책을 정면 비판하며 정부와 각을 세웠다. 집값 폭등을 막겠다며 대출 규제를 꺼내 들었던 정부를 향해 “현실을 모르는 것은 잘못이 아니라 죄악”이라고 날을 세웠다. 아울러 국내 은행의 영업이익률이 급증한 점을 들며, 정부의 금융정책이 잘못됐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이재명의 민주당’ 기조를 쏟아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성과를 강조하자, 이 후보는 그 다음날 “저와 민주당은 따끔한 회초리를 맞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현 정부와의 선 긋기를 통해 여당 원톱이 대선 후보라는 점을 각인하면서, 문 정부와 다른 모습을 부각하는 의도로 해석된다.
정치권은 이 후보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전날 “이미 친문(親文)의 민주당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이 되지 않았느냐”며 “임기가 반 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더 이상 친문 계파의 수장으로 연연할 어떤 이유도 없다”고 주장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재명은 극단적으로 발달한 ‘기회이성’의 소유자”라며 “그는 자기에게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문재인을 제물로 넘길 수도 있는 인물이다. 이재명은 합니다. 그걸 친문들도 안다. 그래서 안 돕는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을 보좌하던 친문(親文) 의원들 사이에서는 “씁쓸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청와대 소통수석을 지낸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이 후보를 겨냥해 “우리 정부에서 다 하지 못한 것을 ‘나는 더 잘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소중한 성과들마저 깎아내리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인 고민정 의원도 “소중한 성과마저 비하하는 사람들 있다”는 문 대통령 발언을 담은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전문가는 이 후보가 ‘정권 재창출 공식’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지금처럼 방향성이 뚜렷하지 않은 차별화 행보를 이어간다면, 지지율이 오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 대통령과 다른 리더십을 구현해야만 한다”며 “현 정부보다 개선된 모습을 약속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보니, 이를 의식한 이 후보의 차별화 전략이 애매해지고 있다. 지지율이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라며 “현 정책 기조는 ‘문재인 정권 시즌2’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중도층을 잡기 위해서는 확실한 차별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