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 중지 청원·협찬 철회 릴레이…‘설강화’ 사태 점입가경

방영 중지 청원·협찬 철회 릴레이…‘설강화’ 사태 점입가경

기사승인 2021-12-20 19:57:37
JTBC ‘설강화 : snowdrop’ 포스터. JTBC

예견된 논란이다. 민주화운동 폄훼, 안기부 미화 의혹 등으로 비난의 중심에 섰던 JTBC ‘설강화 : snowdrop’(이하 설강화)가 방영되자마자 또 한 번 도마 위에 올랐다. 

‘설강화’ 논란은 방영 전으로 거슬러 간다. 원제목 ‘이대 기숙사’의 시놉시스가 유출된 게 시발점이었다. 남자 주인공이 운동권을 사칭하는 간첩이고, 안기부 팀장이 정의로운 인물로 그려지는 설정이 문제가 됐다. 작중 배경인 1987년은 안기부가 민주화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간첩으로 몰아 고문하던 때다. 이에 따라 ‘설강화’의 주 내용이 당시 안기부 논리를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당시 여자 주인공 이름이 영초인 점 역시 민주화 운동가 천영초에서 따온 것 아니냐는 의혹도 이어졌다.

사태가 악화되자 당시 JTBC는 “미완성 시놉시스와 캐릭터 소개 글 일부의 조합으로 구성된 단편적인 정보에서 비롯된 논란”이라면서 “파편화된 정보에 의혹이 더해져 사실이 아닌 내용이 사실로 포장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자 주인공 이름도 영초에서 영로로 바꿨다.

방영 전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도 해명은 이어졌다. 연출을 맡은 조현탁 감독은 “군부 정권과 대선 정국 외 모든 인물과 기관은 가상의 창작물”이라면서 “청춘남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외에는 모든 게 가상이다. 그 안에서 소신껏 작품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작품을 만들어가던 초기에 일부 문구가 유출되며 받아들이기 힘든 말들이 기정사실화 됐다”면서 “많은 분이 우려하는 내용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 18일 ‘설강화’가 첫 공개되고 논란은 재점화됐다. 군사 정권, 대선 정국 등 당시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 가운데 인물만 미화했다는 점에서 비난이 가중됐다. 1회에선 간첩인 남자 주인공 임수호(정해인)가 안기부에 쫓겨 도주할 때 배경 음악으로 1987년 민주화 운동 당시 사용됐던 안치환의 ‘솔아 푸르른 솔아’가 삽입된 장면이 문제가 됐다. 2회에는 임수호가 간첩이라는 설정이 더 분명히 묘사됐고, 여자 주인공 영로(지수)가 “시위하는 학생을 무조건 빨갱이로 내몬다”며 간첩 임수호를 두둔하는 장면과 여대 기숙사 사감이 안기부 요원을 제압하는 장면 등이 나오며 비판이 쇄도했다. 

JTBC ‘설강화 : snowdrop’ 1, 2회 방송화면 캡처.

여기에, 제작진이 공식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을 비공개로 설정하고 네이버 내 실시간 톡 페이지를 닫아놓는 등 시청자와 소통을 차단해 문제가 더 커졌다. 글로벌 OTT 디즈니+에 판권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모바일 페이지에서 다시 보기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점 역시 국내 시청자를 배제했다는 비판에 힘을 실었다. 비난 여론이 거세지며 ‘설강화’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 청원 글은 방영한 지 하루도 안 돼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는 20일 오전 기준 452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방심위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위원회 차원에서 방영 중지를 결정할 수는 없다”면서 “민원 내용을 토대로 방송법에 의거해 제재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란이 가중되며 ‘설강화’ 제작을 지원한 업체들에 대한 불매 운동 조짐이 나타났다. 기업들은 즉각 발을 뺐다. 티젠, 도평요, 한스전자, 싸리재마을, 가니송, 흥일가구 등 다수 기업이 협찬 철회를 선언했다. 이들 기업은 “꼼꼼한 사전 조사 없이 협찬에 응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자사 불찰”이라며 “‘설강화’ 측에 기업 로고 삭제를 요청했다”는 입장을 전했다. 주연배우 정해인을 모델로 기용한 푸라닭치킨 역시 “‘설강화’와 관련된 모든 광고 활동을 중단 및 철회했다”며 사태 진화에 나섰다.

시청자 비판과 함께 제작 지원 업체에도 불똥이 튀며 제2의 ‘조선구마사’ 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지난 3월 SBS는 시청자 반발에 부딪혀 역사 왜곡 논란이 불거진 드라마 ‘조선구마사’를 2회 만에 폐지한 바 있다.

업계 관계자들 역시 대체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관계자는 “문제가 될 걸 알면서도 강행한 제작진이 안일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이미 ‘조선구마사’ 사태를 겪어본 대중을 상대로 소통 창구를 막아둔 건 좋지 않은 선택”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과거 비슷한 사례가 있던 만큼 모든 게 조심스럽다”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한 배우 매니지먼트 관계자는 “부정적인 선례가 더 늘어날까 우려된다”면서도 “창작자에게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있어도 콘텐츠를 유통하는 플랫폼이 대중매체라는 걸 유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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