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붙은 설강화 논쟁…역사 왜곡이냐, 픽션이냐

불 붙은 설강화 논쟁…역사 왜곡이냐, 픽션이냐

JTBC "개인적 서사 보여주는 창작물"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역사적으로 무책임, 명백한 왜곡 의도"

기사승인 2021-12-21 13:08:27
사진제공= 드라마하우스스튜디오, JTBC스튜디오

JTBC 주말극 '설강화'가 방송 첫 주부터 '역사 왜곡'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방영 중지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과 제작 지원 철회,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 등 악재가 엎친데 덮친격이다. JTBC는 "창작물"이라며 논란에 선을 그었고 "확대 해석과 가짜뉴스로 인한 오해"라는 맞불 청원까지 등장하며 옹호 움직임까지 일면서 논란이 격화되는 모습이다. 

위기에 빠진 설강화, 이유는?

설강화는 1987년 서울을 배경으로 여자 기숙사에 피투성이로 뛰어든 명문대생 임수호(정해인 분)와 그를 치료해준 여대생 은영로(지수 분) 사이의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다. 사전제작 작품으로 이미 배우들은 모든 회차의 촬영을 끝마쳤다. 

지난 3월 제작 단계에서 시놉시스 일부가 유출되면서 민주화 운동 폄훼·간첩 활동·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미화 등 역사 왜곡 논란이 시작됐다. 당시 청와대 국민청원에 설강화 촬영을 중지시켜달라는 글이 올라왔고 22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었다. 

이에 청와대는 "창작물에 대한 정부의 직접 개입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국민 정서에 반하는 내용에 대한 민간의 자정 노력 및 자율적 선택을 존중한다"고 답변했다.

JTBC도 입장문을 통해 "설강화는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드라마가 아니다"라며 이같은 지적은 드라마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온라인에서도 "아직 방송 시작 전" "일단 방송을 보고 판단하자"는 의견이 나오며 논란이 수그러드는 듯 했다. 

드라마 설강화 방영 중지를 촉구하는 청원(왼쪽)과 방영 중지를 반대하는 청원. 사진=청와대 국민청원

"설강화, 역사 왜곡" vs "확대 해석"

설강화가 지난 18일 전파를 타며 대중에 첫 선을 보였다. 제작진의 기대와 달리 설강화를 향한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현재 2회까지 방영됐지만 극 중 영로가 남파간첩인 수호를 안기부로부터 쫓겨 온 운동권 대학생으로 오인해 구해준 것, 안기부 직원과 간첩을 연기하는 이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민주화 운동 당시 불렸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가 쓰인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됐다. 안기부 직원을 정의의 사도처럼 묘사한 점도 도마 위에 올랐다. 

민주화운동 열사 측의 비판까지 더해지면서 논란은 확산했다. 

이현주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전날 MBC라디오 '표창원의 뉴스 하이킥'에서 "설강화는 역사적으로 너무 무책임하고 명백한 왜곡 의도를 지닌 드라마"라며 "기우이길 바랐는데 (직접 드라마를) 보고 나니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지적했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는 1987년 안기부에 연행돼 경찰의 고문으로 사망한 박종철을 기리는 사단법인이다. 

방송 중지를 촉구하는 청원글도 공개됐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드라마 설강화 방영중지 청원' 글을 올린 청원인은 "민주화 운동 당시 근거없이 간첩으로 몰려 고문당하고 사망한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이 존재하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도 불구하고 저런 내용의 드라마를 만든 것은 민주화 운동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 해외로 공개되는 것을 두고도 "다수의 외국인에게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며 방영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날 공개된 이 청원은 이날 오후 12시 현재 30만9534명의 동의를 얻었다. 

여기에 청년단체인 세계시민선언은 22일 법원에 '설강화'에 대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로 했다.

그러자 맞불 격으로 방영 중단을 반대하는 청원까지 등장했다. 

한 청원인은 'JTBC 드라마 '설강화'를 둘러싼 수많은 날조와 왜곡에 대한 진실'이라는 글을 올리고 "이번 설강화 사태는 드라마의 앞뒤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채 특정 부분만을 단편적으로 편집해 확대 해석한 내용들과 가짜 뉴스들이 온라인상에 급속도로 퍼지게 되면서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진짜 의미와 의도에 대해 오해가 발생해 빚어진 사태"라고 주장했다. 

이 청원인은 설강화의 내용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들을 열거하며 이에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는 "설강화는 드라마에서 안기부 비화가 아닌 모순을 꼬집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설강화는 중국 자본을 받은 드라마가 아니다" "1980년도의 5·18 민주화 운동과 1987년 6월 민주 항쟁은 극중 시기와 전혀 일치하지 않는다" 등의 주장을 했다. 해당 청원은 비슷한 시각 3221명의 동의를 얻었다. 

설강화 시청자 게시판 캡처

"역사는 못 참지" 온라인도 시끌시끌


설강화를 바라보는 누리꾼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설강화 내용이 역사 왜곡이라고 판단한 누리꾼들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 광고, 협찬 업체 명단을 만들어 공유했다. 이를 본 누리꾼들의 불매 운동이 이어졌고 결국 '푸라닭' '티젠' 등은 사과와 함께 지원을 철회했다.

이런 주장을 지지하는 누리꾼들은 "역사를 잊은 자에게 미래는 없다" "협찬, 광고 업체에 당장 전화하겠다" "당장 방영을 중지해라" "제2 조선구마사" 등 의견을 냈다. 앞서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는 중국식 한복, 월병 등을 소품으로 활용했다가 역사왜곡 논란이 불거졌고 방송 2회만에 종영한 바 있다.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관련 기사 댓글에는 "아직까지 민주화 운동이랑 관계 있는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 "무엇을 보고 역사 왜곡이라고 하는 지 모르겠다" "역사 왜곡이 아니고 오히려 군사정권과 북한, 간첩을 비판한다" "드라마는 픽션일 뿐" 등 반응을 보였다. 

일부 누리꾼은 역사 전문가들의 페이스북 글을 인용해 커뮤니티에 공유하며 각자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심용환 역사N교육연구소장은 페이스북에 "설강화가 비판을 받는 이유는 이런 것(들에 대한 오해를 낳고 새로운 피해가 발생할 것에 대한 국민적 고민 때문"이라며 "아무리 시간이 오래 지났다고 히틀러와 나치를 미화하는 영화를 만들지 않고 오히려 다양한 방식으로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작금의 세계적인 풍조이니 이런 드라마를 두고 비판이 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역사학자인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는 페이스북에 "2회까지 시청한 바로는 설강화에서 일각에서 제기하는 '안기부 미화'나 '민주화운동 폄훼' 등 의도성은 발견하기 어렵다"고 적었다. 

이어 "이 드라마에서 운동권은 시대 분위기를 내는 소재 정도로 가볍게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운동권을 비웃거나 폄훼하지는 않는다"며 "안기부가 악명만큼 사악하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폭력적이고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집단 정도로는 묘사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JTBC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설강화는 권력자들에게 이용당하고 희생당했던 이들의 개인적인 서사를 보여주는 창작물"이라며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는 간첩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녀 주인공이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거나 이끄는 설정은 지난 1, 2회에도 등장하지 않았고 이후 대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JTBC가 핵심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콘텐트 창작의 자유와 제작 독립성"이라고 강조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