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죽음 사라질까...새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억울한 죽음 사라질까...새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중대재해처벌법 오는 27일부터 첫 시행
기업들 자발적 안전 준수 방향으로 개편 요구
유족·근로자, 법 제정 취지 무색…이미 구멍 '숭숭'
대선 후보마다 입장 달라, 대선 후 손질 예상

기사승인 2022-01-01 06:00:01
지난달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열린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3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이천 물류센터 공사장 화재로 38명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세상에 나온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이달 시행에 들어간다. 이 법은 중대한 인명피해를 일으킨 산재가 발생한 경우 형사처벌 대상에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등을 포함함으로써 사고 예방 노력을 높이겠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국회통과 1년 만에 시행에 들어가는 중대재해법이 근로자들의 죽음을 끊어낼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다.

1일 국회에 따르면 이달 27일부터 중대재해법이 시행된다. 중대재해법은 서울 구의역 스크린도어 김 군 사고와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세상을 떠난 고 김용균 씨 사고로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이 개정된 이후 만들어진 법안이다. 산안법이 두 사건을 계기로 하청 근로자의 안전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마련됐음에도 이천 물류센터 화재 등 대형 근로자 사망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자 처벌수위와 대상을 확대한 법안이 나왔다.

중대재해법에서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구분된다. 중대시민재해는 특정한 원료나 제조물, 공중이용시설, 대중교통수단의 결함으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하거나, 부상자가 10명이상 나오는 경우를 말한다. 중대산업재해는 산안법상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1명 이상, 부상자가 2명이상 나올 경우로 규정한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안전 확보 노력이 미흡한 상태에서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한다. 부상이나 질병이 발생하면, 사업주에게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또한 사업주나 법인이 손해액에 최대 5배까지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명문화했다. 산안법과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처벌을 규정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건설현장의 근로자들.   쿠키뉴스DB 

◇발 등에 불 떨어진 건설업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건설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의 절반 이상이 건설업에서 나오는 등 건설 근로자의 사망사고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특히 안전 확보 노력에 많은 돈을 투자하기 어려운 중소 건설사들이 중대재해법 시행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9일 산안법 상 중대재해 발생 등 산재 예방조치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장 1243개소의 명단을 공개했다. 명단에 포함된 곳은 중대재해 발생 등으로 산업안전감독관이 수사·송치해 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사업장, 산재 은폐 또는 미보고로 과태료가 부과된 사업장, 중대 산업사고 발생 사업장 등이다. 

이 가운데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은 총 576곳으로 절반 이상인 339개소(58.9%)가 건설업으로 파악됐다. 여기에는 GS건설, 롯데건설, 동부건설, 삼성물산 등 대형 건설사들도 포함됐지만 484개소(84%)는 50인 미만 영세 사업장으로 드러났다. 

건설업계는 처벌 만능 주의에서 벗어나 건설사들이 자발적인 안전 확보에 나설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상수 건설협회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안전 관련 처벌 법령은 개별 기업이 예측 가능하도록 명확하고 운영과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으로 보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세제혜택, 예산지원 등 기업의 자발적 안전 준수가 가능한 제도로 전환해 안전한 건설현장이 구현될 수 있도록 적극 추진할 예정”이러고 밝혔다.

지난달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에서 열린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 3주기 추모주간 선포 기자회견에 참가자한 근로자들.   사진=임형택 기자

◇취지 후퇴했다는 유족·근로자들


산재 사망자 유족과 근로자들은 기업들의 우려와 달리 중대재해법의 취지가 후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중대재해법 시행을 위해 마련된 시행령에서 기업들의 퇴로를 모두 열어줬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유족과 근로자들이 문제를 제기하는 부분은 중대재해법의 핵심인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에 있다. 시행령은 안전보건 점검 업무를 외부 민간기관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책임자는 민간에 점검 업무 위탁을 이유로 책임을 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러오고 있다. 

또한 노동계가 꾸준히 요구했던 2인1조 작업, 과로사 예방을 위한 적정인력과 예산확보 의무 등이 모두 시행령에 명시되지 않으면서 법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밖에 시민재해와 관련해서도 법의 적용 대상인 공중이용시설이 제한돼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지적에 따르면 현 시행령은 판교 야외공연장 환풍구 붕괴 사고와 광주 철거건물 붕괴사고 등은 시민재해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왼쪽)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사진=임형택 기자

◇중대재해법 앞날은


중대재해법의 실질적인 보완은 대선 이후 진행될 전망이다. 대선 후보마다 중대재해법 보완을 두고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 대선 결과에 따라 보완 방향에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달 2일 노동자 3명이 바닥 다짐용 롤러에 깔려 숨진 사고 현장을 찾아 “근로자 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이 있는데 사고 뒤에 책임을 논하고 수습하는 차원이 아니고 사고를 근본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게 중요하다”면서 처벌 보다는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는 정책 방향을 밝혔다. 여기에 그는 해당 발언 전날 “(중대재해법이) 굉장히 기업인들의 경영의지를 위축시키는 그런 좀 강한 메시지를 주는 법”이라는 평가도 내놓았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산업재해에 더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는 지난달 9일 페이스북을 통해 “(2020년 산재) 사망 노동자 10명 중 9명이 50인 미만 사업장 소속이다. 후진국형 산재 근절을 위해 소규모, 하청 노동자의 안전대책을 시급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근로감독관을 노동경찰로 전환 △영세 사업장 노동자 재정지원 확대 △원청의 하청노동자 안전보건관리 책임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심 후보는 중대재해법을 모든 사업장에 적용할 수 있도록 개정에 나설 계획이다. 그는 특히 중대시민재해의 범위를 확대해 광주 철거건물 붕괴사고 등도 법의 보호 대상에 포함하겠다는 방침이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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