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못한 일인데”...혹한에 ‘밥퍼’찾는 사람들 [가봤더니]

“정부도 못한 일인데”...혹한에 ‘밥퍼’찾는 사람들 [가봤더니]

최일도 목사, 1988년부터 청량리서 34년째 나눔
지역 주민, 밥퍼 혐오시설이라며 최근 이전 촉구
“어려운 노인들에게는 생명줄...없어져서는 안돼”
서울시, 최일도 목사 건축법 위반 혐의로 고발
상반된 반응...이해해야 할 부분vs감당가능 수준 아냐

기사승인 2022-01-19 06:00:33
배식을 준비하는 자원봉사자들.   조계원 기자

18일 오전 9시 10분 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굴다리 지하차도에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하 6도의 날씨에도 11시에 무료로 나눠주는 도시락을 받기 위해 일찍 온 사람들이다. 굴다리 한편에 쪼그리고 앉아 자리를 잡은 노인은 “이 곳 아니면 식사를 해결할 데가 없다”며 “여기서 받은 도시락으로 하루를 버틴다”고 말했다. 

소위 ‘청량리 쌍굴다리’로 불리는 지하차도에서는 34년째 ‘밥퍼나눔’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1988년 청량리 뒷골목에서 배고파 쓰러진 노인에게 끓여준 라면 한 그릇으로 시작된 최일도 목사의 밥퍼나눔 운동이 지금까지 계속됐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온기를 나눠주는 밥퍼나눔 운동은 최근 위기를 맞이했다. 인근 지역 주민들이 밥퍼를 혐오시설로 보고 이전을 촉구하고 나선 영향이다. 관할구청인 동대문구청 홈페이지는 밥퍼 이전을 요구하는 민원성 글로 도배가 됐다. 

이날 굴다리에서 도시락을 받기 위해 줄을 서있던 사람들은 인근 주민들의 민원에 ‘미안하다’면서도 밥퍼가 떠나서는 안 된다고 호소했다.

3년 전부터 밥퍼에서 받은 도시락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는 노인은 “주민들이 보기 안 좋을 수 있어 미안하다”면서도 “돈이 없어 밥 한 끼 사먹기도 어려운 노인들에게는 여기가 생명줄이다. 여기 사람들이 무슨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고, 쓰레기도 청소하고 간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밥퍼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없어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밥퍼의 배식을 기다리는 사람들. 줄이 굴다리를 넘어 섰다. 
오전 11시가 다가오자 배식을 기다리는 줄이 늘어선 모습. 

서울시가 최일도 목사를 건축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건에 대해서는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앞서 최 목사는 지난해 6월 굴다리 옆 서울시 부지에 들어서있는 무료급식소의 확장을 시작했다. 식품 저장창고를 마련하고 무릎이 아파 2층으로 못 올라가는 분들을 위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이를 두고 관할구청인 동대문구청은 무단 증축이라는 민원이 접수되자 두 차례에 걸쳐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후 구청은 최 목사가 중지명령을 따르지 않았다고 판단해 서울시에 경찰 고발을 요청했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 10일 동대문경찰서에 최 목사를 건축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약 7년간 밥퍼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는 노인은 “나라에서도 못 한 일을 개인이 하고 있는데, 한 자리에서 34년째 봉사하고 있는 사람을 고발하면 되겠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고발 소식에 여기서 밥 먹는 사람들이 구청이나 시청에 몰려가서 항의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자 최 목사가 그러지 말라고 말렸다. 그는 외부 시선과의 싸움은 자신이 할 테니 우리는 편하게 밥 먹고 가라고 말한 사람”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굴다리 옆에 위치한 밥퍼 무료급식소. 급식소 죄측에 증축이 중단된 철골 골조가 보인다. 

엇갈린 주민들 반응, 이전시켜야 OR 배려해야  


이날 굴다리 주변에서 직접 만난 주민들은 대체적으로 밥퍼가 그대로 남아있어도 좋다는 반응을 보였다. 

자녀와 함께 굴다리를 지나가던 한 여성은 “보기 안 좋은 면도 있기는 한데 줄이 하루 종일 있는 것도 아니고 낮에만 있다가 사라진다”며 “서로 이해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출근길 이라고 말한 남성은 “오래되다 보니 좀 무뎌진 감이 있다”며 “그래도 떠나라고 하는 것은 좀 그런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18일 동대문구청에 올라온 밥퍼의 이전을 요구하는 민원글들.

다만 현장과 달리 온라인 주민 반응은 전혀 달랐다. 

동대문구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밥퍼시설의 이전을 촉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보면 민원인은 “동대문구 주민들은 꾸준히 밥퍼의 이전을 요구하였으며 이미 34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밥퍼의 활동으로 인해 수많은 불편함을 견뎌 왔다. 배식하는 시간에는 동대문구뿐만 아니라 서울전역에서 노숙인들이 몰려 소음이 발생하고 도시락을 받거나 식사를 하기 편하다보니 아예 밥퍼 근처에서만 노숙하는 인원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늘어나는 노숙인들을 보며 불편하다 말하는 주민들은 인정이 없다 말할 수도 있겠으나, 저희는 반나절 봉사하고 떠나는 사람들과는 달리 이곳에서 매일을 살아야 하는 주민”이라며 “밥퍼는 그저 밥만 나눠줄 뿐 노숙인들을 관리하지 않으며 점점 늘어나는 노숙인들은 더이상 동대문구 주민들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한편 최일도 목사를 건축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 서울시는 해당 건물을 기부채납한 뒤 사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 목사 측과 이를 두고 협의를 진행 중이며, 협의가 마무리되면 고발도 취하하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무료급식소의 증축 문제가 해결돼도 밥퍼와 주민간의 갈등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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