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에 이어 또 다른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현재 활용 중인 백신과 방역 정책은 위험변수에 대비하기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22일 최종현학술원 코로나19 특집 웨비나에서 의학계·과학계 전문가들이 오미크론 대유행 상황을 진단하고, 앞으로의 불확실성을 내다봤다.
이날 발표와 토론에는 △이준호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자연과학대학장) △제롬김 국제백신연구소(IVI) 사무총장 △안광석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이재갑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감염내과 교수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김범준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가 참석했다.
이준호 교수는 “코로나19 감염병 사태는 긴 마라톤과 같다”며 “종식을 기대하는 것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방역 정책을 폄하하거나 시행착오를 지적하기보다는 과학의 과정이었다고 보는 시각이 필요하다”라며 “과학적 근거에 따라 오미크론 이후의 대처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제롬김 사무총장은 백신을 활용한 출구전략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이 약 104억도즈 접종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총 10개 백신을 긴급사용승인했으며, 가장 많이 접종된 백신은 중국의 시노백(약 25억도즈)이다. 화이자와 아스트라제네카 등도 20억도즈 이상 접종됐다.
하지만 아직까지 보건 시스템이 미비한 저소득 국가에서는 접종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특히, 국민 1인의 하루 소득이 1달러 미만인 국가들은 백신 접근성이 극히 떨어진다. 백신에 대한 추가적인 검사도 필요한 상황이다. 백신들의 단기적 효능과 안전성은 입증됐지만, 최적의 접종 용량과 스케줄, 부스터샷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진단검사 역량의 지역별 격차도 문제다. 어디서 변이가 발생했으며, 얼마나 확산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적절히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롬김 사무총장은 “새로운 변이가 이미 돌고 있을 수도 있다”며 “다층적인 방어 전략이 오미크론을 비롯한 바이러스에 대응하는 데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1차 방어막은 개인위생 수칙 준수와 마스크 착용이고, 2차 방어선은 백신접종과 항바이러스제”라며 “마지막으로는 정부가 봉쇄와 부스터샷 이외에 개인의 자유와 사회 경제적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을 고안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안광석 교수는 인체 면역 시스템의 일부인 ‘T세포’에 주목했다. 항체는 바이러스의 감염을 방어하는 방패의 역할을 하는 세포다. 이에 비해 T세포는 바이러스를 공격하는 창의 역할을 한다. 항체가 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을 인식하는 반면, T세포는 바이러스 전체를 스캔해 인식한다. 코로나19 감염자와 백신을 접종한 사람의 T세포를 분석 결과, 시간이 경과해도 여전히 T세포가 오미크론 바이러스를 인식해 공격하는 것으로 관찰됐다. 반면 항체의 경우 4개월가량 지속됐다.
4차~5차 추가접종에 대해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안 교수의 조언이다. 동일한 백신을 반복적으로 접종하면 면역반응이 오히려 약화되는 결과가 불가피하다. ‘항원 원죄’, ‘항원 각인’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체는 특정 바이러스에 최초 감염된 이후 발생한 항체를 후속 감염에서도 우세하게 생성한다. 즉, 오미크론에 감염돼도 기존 델타 항체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안 교수는 “바이러스의 돌연변이는 마냥 증가할 수 없다”며 “어느 시점에서 유전체 안정성과 돌연변이율의 균형을 맞추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코로나19는 풍토병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다양한 변이에 효능을 발휘하는 범용백신을 개발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김범준 교수는 현재까지 코로나19 확진자 발생과 치명률 통계에 근거해 오미크론 정점의 시기가 어느 정도 지나갔다고 분석했다. 다만, 앞으로 더 큰 규모의 확산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오미크론 확산은 델타보다 3~4배 빨랐다. 확진자가 2배가 되는 시간 계산하면, 델타는 17~18일이었지만 오미크론은 5~6일에 불과하다. 델타의 치명률은 약 0.5~2%지만, 오미크론의 치명률은 0.2% 수준이다. 확진 후 사망에 이르는 시간을 의미하는 ‘18일 지연치명률’을 산출하면 델타가 오미크론의 3~10배로 추정된다.
하지만 오미크론의 치명률이 낮다고 해서 방심할 수 없다는 것이 김 교수의 설명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1일 약 10만명 내외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오미크론의 치명률을 고려하면, 오늘 발생한 확진자 가운데 18일 뒤 200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 교수는 “아직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가장 확산세가 가파른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재갑 교수는 진단검사 체계와 방역 조치의 약화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정부의 기존 방역 정책은 검사(Test)·추적(Test)·격리(Treatment)를 의미하는 ‘3T’를 목표로 상정했다. 하지만 이런 목표는 확진자가 5000명을 넘어가면 역학조사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고수할 수 없다. PCR 검사의 경우, 양성률이 10%가 넘어가는 상황에서는 여러 검체를 동시에 분석하는 ‘풀링 검사법’을 활용할 수 없다. 따라서 모든 검사 수요를 PCR 검사로 감당하기는 불가능하다. 당초 우리나라의 방역 강점으로 꼽혔던 요소들이 무용해진 셈이다.
이 교수는 기존 의료체계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로나19 환자를 치료하면서 일상적인 의료 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투석이나 분만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정신과 진료를 받거나, 신생아 격리가 가능한 특수병상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이 교수는 “오미크론 확산의 정점이 어디일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의료체계 자체를 개편해서 코로나19 환자를 독감 환자 진료하듯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과 같은 상황에 거리두기 완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국민들에게 혼란을 주고, 중증 환자가 갑자기 늘어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현철 교수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사회적 피해를 분석했다. 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특히, 학생들의 등교가 제한되면서 학업성취도에 불평등이 심화했다. 등교일수의 변화가 전체 학생의 평균 성적을 유의미하게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국어, 영어, 수학 등 각각의 과목에서 하위권과 상위권 학생의 비율이 증가하고, 중위권의 비율은 감소하는 패턴이 나타났다.
김 교수의 연구에서 등교일수를 100일 미만으로 균일하게 보정한 결과, 국어의 경우 하위권의 비율이 8.1%, 상위권의 비율이 5.1% 증가했다. 수학은 하위권 9.8%, 상위권 5.4%로 비율이 늘었다. 영어는 하위권이 8.9%, 상위권은 6.8% 각각 증가했다. 상위권 학생은 등교 제한 시기를 맞춤형, 자기주도적 학습의 기회로 삼은 반면, 하위권 학생은 학습 참여 기회를 찾지 못하고 방치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교수는 “등교 제한이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지 명확하게 확인해야 한다”며 “학생들이 학교가 아닌 외부 장소로 돌아다닌다면, 오히려 감염에 더 많이 노출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초중고 및 대학 모두 등교 교육을 해야 하고, 등교가 이뤄진다고 코로나19 확산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는다”라며 “교육 불평등은 향후 10년에서 100년까지도 영향을 미칠 문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