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고구말’은 국회가 있는 여의도와 고구마, 말의 합성어로 답답한 현실 정치를 풀어보려는 코너입니다. 이를 통해 정치인들이 매일 내뱉는 말을 여과없이 소개하고 발언 속에 담긴 의미를 독자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정치권이 사퇴 거부를 시사한 노정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에게 대대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노 위원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노정희, 거취 표명 요구에 묵묵부답… “부족한 부분 채우겠다”
노 위원장은 지난 17일 오전 정부 과천청사에서 열린 선관위 전체 회의에서 ‘앞으로 더 선거 관리를 잘하겠다’는 취지로 발언하며 자리를 지키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발단은 지난 20대 대통령선거 사전투표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이었다. 당시 선관위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확진·격리자도 사전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투표사무원이 투표용지를 대신 받아 투표함이 아닌 플라스틱 소쿠리 등에 담은 점 등이 문제로 꼽힌다.
이런 가운데 사전투표 부실 관리 논란으로 사의를 밝힌 김세환 사무총장의 사표가 수리됐다. 노 위원장은 김 전 사무총장의 사표를 수리하기 위한 회의에 참석하며 사퇴 의사를 묻는 취재진에게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이어 선관위 직원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 “위원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하며 중차대한 선거를 관리함에 있어 안일했다는 지적을 수용하고 공감한다”면서도 “부족하고 잘못됐던 부분을 채우고 고쳐 정확하고 신속하게 지방선거를 준비 관리해야 할 때”라며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김기현 “뻔뻔하게 버티지마라”, 허은아 “더 버틸 명분 없다”
정치권에서는 압박이 쏟아졌다. 국민의힘은 노 위원장에게 즉각 사퇴를 촉구하며 대대적인 공세를 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노 위원장과 관계자들의 사퇴를 요구한다. 전국 17개 시도 선관위 상임위원 대부분이 노정희 중앙선관위원장에게 사실상 사퇴를 요구했다”며 “노 위원장은 더 이상 뻔뻔하게 버틸 것이 아니라 자진사퇴하는 것이 조직과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더구나 제가 코로나 확진자와 격리자들의 투표에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선관위에 미리 경고했다. 대책 수립을 요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관위는 사실상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은 채 선거 관리에 임했다”고 날을 세웠다.
김 원내대표는 “노 위원장이 자리를 보전하는 한 국민 불신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 국민 앞에 정중하게 머리 숙여 사죄하고 자진사퇴해야 마땅하다”며 “또한 실무 책임을 맡았던 중앙선관위 사무차장, 선거업무 담당한 실·국장도 마찬가지로 그 직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허은아 수석대변인도 가세했다. 그는 “어제 시·도 상임위원들의 성명으로 인해 이제 ‘노정희 선관위’는 밖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잃었고, 안으로는 조직원들의 신망을 상실했다”며 “더 버틸 명분이 무엇이 있겠는가”라고 일갈했다.
허 수석대변인은 “사전선거 관리부실만 해도, 토요일이라는 핑계로 무책임하게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 주말이 다 지나고서야 ‘긴급’ 운운하며 회의를 개최한 노 위원장의 책임이 어찌 물러난 김 사무총장보다 적다고 하겠는가”라며 “선수와 관중 모두가 심판의 경기 운영 능력과 판정을 못 믿겠다는데, 심판 홀로 끝까지 경기장에 남아 경기를 하겠다고 몽니를 부리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다. 선관위원장 이전에 법관으로서 노 위원장의 양심에 호소한다”며 “미래를 위한 희망으로 투표해 주신 국민의 허탈함, 공명선거를 위해 온 힘을 다했던 소속 공무원들이 느껴야 할 자괴감을 생각해 보길 바란다”고 즉각 사퇴를 촉구했다.
이동학 “한 번의 실수로 족하다. 물러나라”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반발이 나왔다. 이동학 민주당 전 최고위원은 지난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누구의 편도 아닌 선관위의 터무니없는 실수는 중립성 훼손으로도 이어질 수도 있는 만큼 실수를 덮어줄 수 없다. 한 번의 실수로 족하다. 물러나라”고 말했다.
그는 “사전투표에서 보여줬던 선관위의 미흡함은 자칫 우리나라 선거의 공정함을 담보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며 “어떤 의도가 없었을 것이라고 믿는 국민들의 성숙한 판단과 당장 치러야 할 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야를 떠나서 선거사무에 또다시 이런 일이 발생되면 안 된다. 선거사무는 국민들의 선택과 결과에 대한 신뢰로 국가운영의 기회가 오가기 때문에 단순한 실수로 여기며 넘어갈 수 없다. 입장을 바꾸어 민주당이 야당이었다면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힐난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