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꺽, 꿀꺽 넘겨”
서른둘 김영수(가명)씨의 하루는 약을 삼키며 시작한다. 아침 3알, 저녁 2알. 고성과 돌발행동을 줄이는 정신신경용제들이다. 영수씨는 발달 장애인이다.
영수씨의 정신연령은 3살 수준이다. 아는 단어는 ‘엄마’와 ‘맘마’ 뿐이다. 의사 표현은 괴성으로 한다. 배가 고프거나 외출하고 싶을 때, 마스크가 답답하거나 날씨가 안 좋을 때 그의 입에서 나오는 건 고성 하나다. 어떤 날은 손이 빨갛게 부르틀 정도로 박수를 친다. 짧게는 한시간, 길게는 종일 영수씨에게선 큰 소리가 난다.
영수씨의 가족은 십여년째 소리와의 전쟁 중이다. 증상이 심각해진 건 영수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다. 그는 밤낮 가리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영수씨의 어머니는 안 써본 방법이 없다. 물이 닿으면 잠잠해질까 찬물을 끼얹어 보기도 했다. 영수씨 입을 틀어막은 것도 여러 번이다. 영수씨, 그의 어머니 모두에게 괴로운 시간이었다.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영수씨는 벽에 머리를 박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로 본인의 손을 물어뜯는 지경에 이르렀다. 어머니는 밤마다 잠든 영수씨의 손에 연고를 발라야 했다.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 이때부터 병원을 찾아 약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1알로 시작해 3알로 늘렸다. 약도 여러 번 바꿨다.
자해는 멈췄지만, 소리 지르는 행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영수씨의 덩치가 커질수록 어머니는 작아졌다. “영수가 소리를 지를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죽고 싶어요. 할 수 있는 건 그저 약을 먹이고, 영수가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뿐이니까요” 어머니는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었다. 뚝뚝, 손가락 사이에서 물이 떨어졌다.
영수씨의 어머니는 죄인이다. 처음 아파트에 입주할 때, 그는 모든 이웃에게 손편지를 돌렸다. ‘우리 아이가 발달 장애 1급입니다. 밤에 소리를 지를 때가 있습니다. 달래보지만, 제 맘대로 안될 때도 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절박한 심정으로 적었다. 동네에 터를 잡은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상황은 변함이 없다. 새로운 이웃이 이사 올 때마다 그는 손편지를 쓰고 고개를 숙인다. 이사는 꿈도 꾸지 못한다. 성인 4명의 가족이 살기엔 작은 집이지만, 영수씨 가족은 이곳을 떠날 수 없다.
영수씨가 낮 시간을 보내는 인천 부평구 한 장애인 주간보호센터. 센터에서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들은 이웃의 웃는 얼굴을 본 적 없다. 인사를 해도 받아주지 않는다. 맞은 편에 사는 어떤 이웃은 창문을 열고 욕을 한다. 지금껏 안 들어본 욕이 없을 정도다. 발달 장애인들이 내는 소음을 줄이기 위해 센터는 방음문과 이중창을 설치했다. 그러나 역부족이었다. 민원은 지금도 쏟아진다.
이웃과의 관계가 안 좋은 장애인가구 비율은 2009년 2.8%, 2015년 1.7%다. 4점 척도의 조사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이웃과의 갈등을 겪는 이유는 장애인가구에 대한 이해부족이 51.2%로 절반 이상이었다. 한국 땅의 수많은 영수씨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하루에 한번 뿐인 산책 시간도 다르지 않다. 영수씨의 손을 잡고 걷던 발달장애인 김한준(가명)씨가 멈추어 섰다. 한준씨가 “어어” 하며 우는 소리를 내자 주위 공기가 달라졌다. 힐끗힐끗, 지나가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 “어디 아픈가 봐” 쑥덕거림이 들렸다. 몸이라도 스칠까 피하는 이도 여럿이었다. “이제 갈까요?” 이들을 진정시키려는 사회복지사의 행동이 빨라졌다.
“층간소음 민원으로 동반 자살까지 생각하는 발달 장애인 가정의 비극, 먼 이야기가 아니에요. 지난해 국민청원에 올라온 ‘자폐 아동 가족을 살려주세요’라는 글 보셨나요. 아이에게 수면제까지 먹이면서 소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보호자가 얼마나 많은 줄 아세요. 아이도 부모도 벼랑 끝에 몰려있어요” 발달 장애인 부모가 겪은 상처를 담담히 풀어내던 서은우 장애인보호센터장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여전히 센터 한쪽에는 약봉지가 놓여있다. 영수씨를 비롯한 발달 장애인들은 다시 약을 삼키며 하루를 끝낸다. 언제쯤 이들은 이웃의 웃는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