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 목소리 높아도 ‘여가부 폐지’ 고집하는 윤석열

반대 목소리 높아도 ‘여가부 폐지’ 고집하는 윤석열

여성단체‧국제시민단체 등 한목소리로 “폐지 반대”
김현숙 여가부 장관 후보자, 과거엔 ‘여가부 강화’ 주장
인수위 “김 후보자, 지금은 폐지에 100% 공감” 

기사승인 2022-04-21 06:30:07
서울정부청사 내 여성가족부 전경.   사진=곽경근 대기자

“용기내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성범죄 피해자들이 털어놓을 수 있는 곳이 여성가족부의 여성 상담소입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은 많은 피해자의 용기를 무너트리고 있습니다.”

자신을 성폭력 피해자라고 소개한 이안나씨는 여가부 폐지 공약을 철회하라며 이같이 호소했다. 지난 16일, 27개 회원단체로 구성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서울 혜화 마로니에공원에서 ‘여가부 폐지를 막는 이어말하기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윤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 공약이 정치적 선거 전략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성차별적 구조가 실재하는 상황에서 여가부 폐지보다는 더 많은 인력‧예산을 가진 부처로 확대 개편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여가부 폐지를 막아서는 사람은 이들 뿐만 아니다. 지난 14일에는 전국여성연대‧불꽃페미액션‧한국YWCA 등 11개 단체가 참여한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 공동행동’이 서울 종로구 인수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윤 당선인은 지금 당장 여가부 폐지를 철회하고 성평등 정책 전담 부처 및 추진체계 강화 방안을 모색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 시민단체들도 나섰다. 여성주요그룹(Women's Major Group), 국제여성연합(International Alliance of Women) 등 해외 여성·인권시민단체 115개는 지난 4일 ‘한국 대통령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 공약 철회 요구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한국은 경제 지표에선 선진국이지만, 여성인권 측면에 있어서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고 지적하며 “여가부 폐지 공약을 철회하고 권한과 역할 강화를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학계에서는 여가부를 폐지하고 그 기능이 다른 부처로 이관될 경우 젠더 관련 정책이 주변화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보냈다. 가령 여가부가 맡고 있던 청소년 업무를 교육부로 이관할 경우 ‘청소년=학생’이란 전제로 정책을 시행해 학교 밖 청소년들은 지원 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19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주최한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여성가족부 조직개편 방안 토론회’에서 “여가부의 업무를 타 부처로 이관해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여성과 청소년, 아동과 가족 전반의 복지와 안전을 위협하고 삶의 안정성과 질을 저하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다수의 국민들도 여가부를 폐지하기 보단 확대 개편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권인숙 민주당 의원실이 13일~15일 1139명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여성가족부 개편 방향에 대해 묻자 무려 74.5%가 ‘부처를 확대해야 한다’고 답했다. ‘부처 존치’도 19.5%로 나타났다. ‘부처 개편’은 3.6%, 부처 폐지는 0.4%에 불과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여성위원회 회원들이 지난달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사무실 인근에서 ‘윤석열 당선자는 구조적 성차별을 없애고 성평등한 노동환경을 만들라는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라’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김현숙 여가부 장관 후보자 내정… 인수위 “여가부 폐지는 그대로” 

이러한 반대 여론에도 윤 당선인 측은 “여가부가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는 이유로 폐지를 못 박고 있다. 다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여가부 폐지를 새정부 출범 이후로 미루고 우선 여가부 장관 후보자를 내정했다. 지명된 김현숙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통령 당선인 정책특보로서 여가부 폐지, 저출산·고령화 관련 정책 부분을 담당해 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장관 임명 자체가 여가부 폐지를 철회했다는 뜻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보수성향 여성단체인 ‘찐(眞)여성주권행동’은 13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당선인은) 여가부 장관에 김현숙을 임명하는 것으로 여가부 폐지 공약을 지지했던 많은 국민들의 등에 칼을 꽂았다”며 “여가부 장관 후보 지명은 여가부 폐지는 물 건너갔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후보자의 과거 발언이 조명되며 인수위의 여가부 폐지 기조가 바뀔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김 후보자가 과거 여가부 폐지가 아닌 ‘권한 강화’를 외친 인물인 탓이다. 

김 후보자는 2013년 3월 당시 조윤선 여가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남성연대 분들이 여가부를 폐지해 달라는 얘기를 굉장히 많이 한다”며 “여가부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어떤 식으로 극복할지에 대해 듣고 싶다”고 물었다. 

또한 “실제 여가부가 하는 일들이 단지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양성평등을 위해 노력하고 대한민국의 여성과 남성 모두, 그리고 가정의 행복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으로 자리매김할 때 그런 부분들이 불식될 수 있을 거라고 확신을 한다”고도 말했다. 

아울러 19대 국회의원 시절 여가부 장관의 자료 제출 요구권을 강화하는 성별영향분석평가법 개정안, 지역구 선거 여성 30% 공천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의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다만 윤 당선인은 여가부 폐지를 그대로 추진할 계획이다. 최지현 인수위 수석부대변인은 20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여가부 폐지 방침엔 변함이 없다”며 “여가부는 역사적 소임을 다했다. 여가부는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고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김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서는 “여가부가 원래 맡은 소임을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많은 세월이 지난 만큼 김 후보자의 생각도 바뀌었다. 여가부를 폐지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점에 100% 공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는 여가부 폐지 반대 목소리가 높아진 만큼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직 개편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윤 당선인은 시민단체들의 요구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여가부가 그동안 잘해왔기 때문에 폐지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여가부가 젠더 관점에서 정책을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부서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은 성별, 장애 여부 등에 따른 구조적 차별이 여전한 나라다. 이런 상황에서 여가부 폐지를 고집하는 것은 차별을 받고 있는 국민들을 배제하겠다는 태도와 다를 바 없다. 여가부 폐지 방침이 확고하더라도 반대 측 목소리를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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