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이 친구 부모로부터 초등학교에서 강제 전학된 고학년 남학생이 학교 앞에 나타나 아이들을 괴롭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알고 지내던 3학년 아이가 놀이터 화장실 안에서 A군에게 심하게 맞았다는 이야기부터 집라인을 탄 아이의 머리를 돌로 때리려다 붙잡히거나 손소독제에 불을 붙였다가 출동한 경찰에 붙잡혔다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설마 초등학생이 이렇게까지 한다고?’ 사실 믿기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학교 앞 놀이터에 위험한 형이 있을 때는 자리를 피해 곧바로 집에 가도록 지도해 달라. 위험한 장난을 하는 것을 보고 경찰서에 협조를 요청했다”고 적힌 학교 안내문을 받기 전까지는요.
경찰에 신고해도 놀이터 평화는 잠시뿐이었습니다. A군은 촉법소년이기 때문이죠. 결국 피해를 우려한 아이들이 놀이터를 떠나야 했습니다.
늘어가는 촉법소년 범죄, 연령 하향 요구 봇물
촉법소년(만 10세~14세 미만)은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닙니다. 강력 범죄를 저질러도 성인처럼 형사 처벌받는 대신 가정법원 소년부 또는 지방법원 소년부의 보호처분(감호위탁·수강명령·사회봉사명령·보호관찰)을 받죠. 가장 무거운 처분인 ‘소년원 2년 이내 송치’가 내려져도 전과 기록이 남지 않습니다.
국민의힘 이종배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은 2017년 7896건, 2018년 9049건, 2019년 1만22건, 2020년 1만584건, 2021년 1만2501건으로 증가세입니다. 촉법소년 강력범죄 소년부 송치 건수는 2017년 6286건에서 2021년 8474건으로 35%가량 늘었습니다.
언론 보도만 봐도 범행 수법이 성인 못지않은 소년범 사건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때마다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지죠. 지금의 소년법이 1953년 제정돼 69년이란 시간이 흐른 만큼 현재 기준에 맞게 손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촉법소년 기준 연령을 만 14세 미만에서 12세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한 바 있고요.
촉법소년 범행, 연령 하향만이 답은 아니다?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내리는 것을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경험과 판단력이 미숙하고, 교화 가능성이 있는데도 형사 처벌하는 것은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입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지난 3월 성명을 통해 “이미 현행법상 10세는 최대 6개월 소년원 송치가 가능하다. 과밀 수용, 교육과 여가·문화생활 박탈은 물론, 갇혀진 시설 내부에서 위계에 익숙해지고 폭력에 더 쉽게 노출되기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해외와 비교해 우리나라의 촉법소년 연령 기준이 높은 편일까요? 독일과 일본, 오스트리아는 우리나라와 같이 촉법소년 연령 기준을 만 14세 미만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덴마크·핀란드·스웨덴은 15세, 스페인·중국은 16세 미만으로 우리나라보다 높고요. 미국은 7~14세로 주별로 차이가 있고 프랑스는 13세 미만, 캐나다·네덜란드는 12세, 영국과 호주는 10세 미만입니다.
처벌 연령이 우리나라보다 낮다고 해서 소년 범죄가 줄었다는 나라는 없습니다. 민변은 “실제로 덴마크, 조지아 등 일부 국가에서 2010년~2012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을 낮추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소년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었다는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동사법제도의 도입 이후 아동 범죄의 발생률이 실제로 감소하는 경향이 증거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소년에 대한 엄벌주의 경향이 소년의 재범률 등에 더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경험은 다수 보고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소년 범죄 사전 예방·재범 방지 위한 고민 필요
A군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지인들에 따르면 A군은 보호를 제대로 받기 어려운 가정의 아이라고 합니다. 경찰 조사를 받고 풀려나도 다시 방치되기 일쑤라고요. 자녀를 둔 부모로서 A군의 행동에 분노했지만, A군에 관심이 없던 가정과 사회에도 문제가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촉법소년의 딜레마입니다.
물론 어떠한 이유로도 범죄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잘못 뒤에는 가정과 학교, 사회의 책임도 존재합니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 필요성에 대한 논의와 함께 소년 범죄 발생에 대한 구조적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소년범에게 호통치는 모습으로 유명한 천종호 부장판사는 자신의 저서 ‘호통판사 천종호의 변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법이 내리는 판결은 서릿발처럼 엄중하다. 그러나 법에도 눈물이 있다. 그 아이들이 버려진 거리에서 그토록 황폐한 모습으로 살아갈 동안 우리는, 또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것이 어른다움이자 성숙한 사회가 마땅히 지녀야 할 품격이라고 생각한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