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전해지는 정치권 소식을 보고 듣다 보면 ‘이건 왜 이렇지’ ‘무슨 법에 명시돼 있지’ 등등 많은 궁금증이 생깁니다. 정치와 관련된 소소한 이야기부터 이해하기 어려운 법조문까지. 쿠키뉴스가 쉽게 풀어 설명해 드립니다. 일명 ‘쿡룰(Kuk Rule)’
우리나라는 삼권분립 국가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권력을 나눠 가지면서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입법부인 국회는 법을 만들고, 행정부인 정부는 법을 집행, 사법부인 법원은 법에 따라 사법적 판단을 합니다.
그런데 행정부인 정부도 법령(法令)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수 있단 사실 알고 계셨나요. 바로 시행령을 통해서입니다. 최근 정치권에서 화두이기도 한 시행령 도대체 뭘까요.
이 세상은 너무 변화무쌍한 일들이 많습니다. 따라서 국회서 만드는 법이 모든 걸 담아내 규정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각종 법률에 구체적인 내용 하나하나 담아서 규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죠.
예를 들어 국회에서 A법을 제정해 자동차에 환경세를 추가 부과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이 경우 어떤 차량에 얼마의 금액을 부과해야 하는지 국회 차원에서 정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자동차도 승용차부터 SUV, 트럭, 특수차량 등등 종류가 다양하죠. 국회가 이런 구체적인 것까지 따진다면 국회 본연의 업무를 하기 쉽지 않고 국회에 많은 권한이 집중되는 현상까지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회는 환경을 위한 자동차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식의 개괄적인 내용만 규정하고 나서 행정부가 구체적인 내용을 정합니다. 헌법에서 정하지 못한 걸 법률에서 정하고 법률이 정하지 못한 걸 대통령령, 대통령령에서 정하지 못한 구체적인 것들을 총리령·부령 등을 통해 규정하는 식입니다. 특히 대통령령은 시행령이라고 부릅니다. 총리령·부령은 시행규칙입니다.
시행령은 국회를 거치지 않고 법적 효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상위 법률이 정한 범위 내에서만 정할 수 있죠. 법률이 정하지 않은 내용은 규정할 수 없습니다.
지난 5월 10일부터 임기를 시작한 윤석열 정부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국정운영이 쉽지 않자 시행령 정치를 개시했습니다. 시행령 정치란 국회 소관인 법률 제정 없이 시행령 개정만으로 정부가 원하는 국정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국정과제들은 특별법을 만들거나 기존의 법률을 개정해 법적 근거를 만들고 행정절차까지 이어지는데 입법기관인 국회의 동의와 협력이 중요합니다. 매 정권이 국회와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가 시행령 정치를 선언하면서 현재 정국이 급속히 얼어붙었습니다.
취임 한 달을 넘긴 윤석열 정부에서 보인 대표적인 시행령 정치는 법무부 내 인사정보관리단 신설입니다.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에서 담당하던 공직자 인사검증 업무를 이관했는데 정부조직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이뤄냈습니다. 최근에는 시행령 개정 등의 방식으로 행정안전부가 경찰을 직접 통제하는 방안도 추진 중입니다. 해당 사안 모두 야권에서는 검경의 권력의 사유화를 이유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시행령 개정으로 자신들이 바라는 국정과제들을 이어나가자 야당인 민주당은 ‘국회패싱’이라면서 강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시행령을 간접 통제하는 법안까지 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국회와의 협치 없이 시행령을 통한 정치 행보를 이어나간다면 정부 견제를 위해서라도 발의된 법안이 통과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시행령을 통해서 국정운영을 한다는 것은 국회와의 협치 없이 정부의 의지와 생각대로만 국정을 운영해나가겠다는 독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협치가 중요한 민주주의에서 바람직한 모습은 결코 아닙니다. 일각에서는 ‘법 아래 시행령’이 아닌 ‘법 위 시행령’이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또 행정부에 맡겨진 시행령 등 행정입법을 국회가 하나하나 법 취지에 맞는지를 따져 묻겠다는 모습도 좋지는 않습니다. 언제쯤 협치하는 정치를 볼 수 있을까요.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