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여자가 있다. 가난하게 자랐지만 인정받고 싶었던 여자, 자신은 특별하다는 믿음이 산산조각 난 여자, 결핍과 욕망을 동시에 가졌던 여자. 쿠팡플레이 오리지널 드라마 ‘안나’는 걷잡을 수 없이 거짓말에 빠져든 여자 이유미(수지)의 이야기를 그린다. 정한아 작가가 펴낸 소설 ‘친밀한 이방인’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공개 직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구고 있다. 원작 소설도 인기다. 예스24에 따르면 ‘안나’ 1, 2회가 공개된 지난 달 넷째 주 ‘친절한 이방인’ 판매량이 전주보다 7배 넘게 늘었다. 켜켜이 쌓인 거짓 속에서 진실을 파헤치는 두 작품을 쿠키뉴스가 비교했다.
안나가 되다 VS 안나를 추적하다
‘안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에 가깝다. 안나가 이유미였던 어린 시절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그에게 새겨진 허기와 욕망을 가까이서 보여준다. 시청자들이 이유미의 대담한 거짓말을 감히 옹호하진 못하더라도 그를 비난할 수 없게 만드는 장치다. 반면 소설은 작가 겸 번역가인 ‘나’가 이유미를 추적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우연히 6개월 전 실종된 남편을 찾는 여자 선우진을 알게 된다. 선우진은 남편이 사실은 여자였으며 거짓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고 털어놓는다. 선우진이 찾는 사라진 남편이 바로 이유미다. 원작 역시 이유미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반복해서 상기시키지만, 독자와 이유미 사이의 감정적 거리가 드라마만큼 가깝지는 않다. ‘안나’의 이유미가 연민을 자아낸다면, 소설 속 이유미는 모호하고 미스터리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두 인생을 살다 VS 네 인생을 살다
‘안나’에서 이유미는 이현주(정은채)의 신분을 훔쳐 안나가 된다. 도둑질한 학력으로 미술 교습소에 취직하고, 평생교육원 강사가 되고, 대학 강단에도 선다. 한 인물이 두 인생을 사는 셈이다. 원작에선 이유미의 삶이 더 자주 출렁인다. 가짜 경력서로 피아노 학원에 취직하고 평생교육원 강사를 거쳐 대학 강단에 선다는 점은 드라마 속 이유미와 비슷하지만, 소설의 이유미는 이후에도 신분과 직업을 자주 바꿨다. 대학에서 거짓 경력을 들킨 뒤에는 요양원에서 의사 행세를 했고, 그 뒤에는 가짜 소설가가 됐다. 세 남자의 아내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도 살았다. 드라마 속 이유미가 더 광택 나는 삶을 쟁취하려 분투하는 과정에 집중한다면, 소설 속 이유미는 가짜 삶을 이어갈수록 공허함에 허덕인다.
안나가 거짓말을 한다 VS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
‘안나’에서 거짓말하는 이는 이유미가 유일하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현주는 감정을 속일 줄 모른다. 분노도 사랑도 투명하게 드러낸다. 이유미의 남편 최지훈(김준한)은 특권의식을 드러내는 데 거침이 없고 부끄러움도 없어서 혐오감이 들 정도다. 반면 소설에선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 이유미와 이유미의 아버지, 이유미의 마지막 배우자인 선우진, 심지어 이유미를 추적하는 ‘나’와 ‘나’의 부모마저도 자신을 감추고 남들을 속인다. 드라마가 가짜 인생을 지탱하려 애쓰는 이유미를 통해 긴장감을 불어넣는다면, 소설은 스스로를 숨기고 부정하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진실한 삶이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정한아 작가는 ‘친밀한 이방인’에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라고 물으며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라고 썼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