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LF사태로 이어진 금감원과의 소송전에서 승소하면서 리스크에 벗어난 우리은행이 횡령과 외환 이상거래 정황이라는 악재를 연이어 맞이하면서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가 주시하는 가운데 검찰까지 수사에 들어가면서 우리은행의 위기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8년간 8차례, 700억원 횡령…횡령금액 늘어나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700억원대 횡령 사건이 발생한 우리은행 관련 검사 결과를 발표했다. 금감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은행 본점 직원 A씨는 2016년 6월부터 2020년 6월까지 8년간 8차례 모두 697억3000만원을 빼돌렸다. 지난 5월 횡령이 발견된 이후 드러난 금액보다 약 83억원 이상 늘어난 횡령액이다.
이번에 추가로 파악된 횡령금액은 A씨가 우리은행이 보유하던 주식을 빼돌리면서 발생했다. A씨는 지난 2012년 6월 우리은행의 출자전환 주식 42만9493주(당시 시가 23억5000만원)를 몰래 인출했다. 팀장의 열쇠를 훔쳐 금고를 열고 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OTP)를 꺼낸 뒤 관련 서류를 몰래 결재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또한 2014년 8월부터 2020년 6월까지 출금 요청 허위 공문을 발송하는 수법으로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천공장 매각 계약금 등 59억3000만원을 빼돌렸다.
이와 함께 A씨는 2019년 10월부터 2020년 11월까지 1년 넘게 무단결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은 금감원 검사 결과 전까지 이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금감원은 우리은행이 사고예방을 위한 내부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직원이 10년 이상 동일 부서에서 동일 업체를 담당하고, 이 기간 중 명령휴가 대상에 한 번도 선정되지 않았다.
또한 금감원은 확인된 사실관계 등을 기초로 엄밀한 법률검토를 거쳐 사고자 및 관련 임직원 등의 위법·부당행위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악재는 겹쳐서 온다…우리은행서 수상한 외화거래 ‘1조6000억’
횡령사고 뿐 아니라 우리은행은 현재 수상한 외화거래 정황으로 인한 조사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금감원이 거액의 이상 외화송금 거래가 발생했다고 신고한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을 대상으로 현장 검사에 나선 결과, 당초 알려진 2조원을 훌쩍 상회한 4조원 규모의 이상거래가 발생한 것을 확인했다.
금감원이 27일 발표한 ‘거액 해외송금 관련 은행 검사 진행상황’에 따르면 우리은행에 2021년 5월3일부터 지난 6월9일까지 5개 지점에서 931회에 걸쳐 총 1조6000억원 규모의 이상 외화송금이 이뤄졌다. 이는 당초 우리은행이 신고한 9000억원보다 2배에 살짝 못미치는 규모다.
이 중 일부 거래는 일반적인 상거래를 통해 들어온 자금이 있지만, 많은 금액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로부터 흘러 들어온 자금으로 파악됐다. 자금이 이동한 수법을 보면 이상 송금거래 대부분이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이체된 자금에서 시작됐다. 거래소에서 이체된 자금이 국내 모 무역법인 대표이사 등 다수의 개인을 거쳐 해당 무역법인 계좌로 집금된 후, 수입대금 지급 명목으로 해외법인에 송금하는 수법이 이용됐다.
이같은 수법에 금감원은 ‘김치프리미엄(한국에서 특정 가상자산이 더 비싸게 거래되는 현상)’을 이용한 ‘환치기(대표적인 불법 외화유출 방법)’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서울중앙지검 국제범죄수사부도 대검찰청으로부터 받은 수사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갈 전망이다.
금감원, 우리은행 엄중 질책…관련자 처벌 가능성↑
우리은행으로선 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인 상황이 됐다. 최근 우리은행은 DLF 중징계 취소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사법리스크를 해소하나 싶었지만 두 가지 문제가 연이어 생기면서 다시 처벌 위험성이 생겨났기 때문.
지난 22일 재판부는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받은 중징계를 취소해달라며 금융당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금감원은 DLF의 불완전 판매가 있었다고 판단해 지난 2020년 우리은행에 제재를 가했다. 금융당국은 당시 은행장이었던 손태승 회장에게는 내부통제의 책임을 물고 문책경고 조치를 내렸다. 문책경고 이상의 중징계를 받으면 연임과 금융기관 취업이 제한된다.
하지만 손 회장과 우리은행 측은 당국의 중징계 처분에 불복해 2020년 3월 집행정지와 함께 본안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8월 1심에서 승소했다. 1심은 손 회장의 징계사유인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 5건 가운데 1건만을 징계사유로 인정했다. 이번 2심에서는 5개 징계사유 모두 징계사유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이처럼 중징계의 덫을 피해간 경영진은 다시 한 번 제재를 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에서 우리은행 경영진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언급했기 때문.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지난 26일 브리핑에서 “이번 사고의 관련자는 팀장, 부서장이 될 수도 있고 임원, 행장, 회장까지 갈 수도 있다”며 “관련자 범위를 어디까지 확대할 수 있을지는 법적인 검토가 끝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준수 부원장은 “외환업무 취급 및 자금세탁방지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 은행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등을 기초로 관련 법규 및 절차에 따라 엄중히 조치할 방침”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말하긴 어렵지만, 사안별로 상황이 다를 수 있어서 제재할 부분은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 부위원장은 “(은행들이) 서류 확인하고 문제 없는지 확인하려는 노력은 했다. 은행으로서 할만큼 했다고 본다. 더 교묘하게 송금되는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본다”며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자금흐름 추적 못하니까 자체점검 만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울 수 있을 거 같다”고 덧붙였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