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만에 쏟아진 기록적인 폭우로 수도권 곳곳이 혼란에 빠졌다. 서울·경기 지역에서 8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다. 751채에 달하는 주택과 상가 곳곳이 물에 잠겨 재산 피해도 속출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오전 11시 기준 잠정 집계된 인명 피해는 사망 8명, 실종 6명, 부상 9명이다. 직전 집계치인 오전 6시 기준 사망 7명, 실종 6명, 부상 9명보다 사망자가 1명 더 늘어났다. 추가 사망자는 이날 오전 4시27분 경기 화성시에서 발생한 산사태로 숨졌다.
서울 관악구에서는 반지하 주택에 살던 일가족이 침수로 고립돼 사망했다. 사망자 2명은 46세, 1명은 13세다. 40대 여성 두 명은 자매 관계이며 13세 어린이는 이 자매 중 한 명의 딸인 것으로 알려졌다. 침수 신고를 했지만, 경찰과 소방 당국이 도착했을 땐 반지하로 물이 가득 들어찬 상황이었다.
타지역에서도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동작구에서는 쏟아진 비로 쓰러진 가로수 정리 작업을 하던 60대 구청 직원이 감전으로 사망했고, 주택 침수로 1명이 숨졌다. 경기 광주시에서는 버스 정류장 붕괴 잔여물 밑에서 1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도로 사면 토사 매몰로 다른 1명이 사망했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 실종 사고도 잇따랐다. 서울 서초구에서는 지하상가 통로, 음식점, 하수구 인근에서 4명이 물길에 휩쓸려 실종됐다. 경기 광주시에서도 하천이 범람하면서 급류에 휩쓸려 2명이 실종됐다.
재산 피해도 크다. 서울과 인천, 강원·경기에서 751채의 주택과 상가가 물에 잠겼다. 옹벽 붕괴 4건, 토사유출 5건, 차량 파손 2건, 차량 침수 8건, 제방유실 2건, 사면 유실 5건 등의 재산 피해가 접수됐다. 이재민은 107세대 163명에 달한다. 이들은 대부분 학교, 체육관 등에 머무르고 있다.
하천 범람·산사태 경보가 발령돼 주민들이 대피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서울 관악구는 밤까지 계속된 폭우에 도림천이 범람하고 있다며 대피 공지를 내렸다. 관악구 재난안전대책본부는 전날 오후 9시26분 “저지대 주민은 신속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 달라”고 했다. 관악구는 밤 11시께 “산사태 위험이 있다”며 일부 지역에 대피령을 내렸다.
지하철 역사 곳곳에서는 물난리가 나면서 운행에 차질을 빚었다.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이 침수되면서 1호선 하행 운행이 전면 중단했다. 경인선 오류동역, 1호선 금천구청역 등에서도 신호 장애 및 열차 지연이 발생했다. 지하철 7호선 이수역은 오수가 유입돼 무정차 통과 조처가 내려졌다. 승강장 천장 일부 패널이 빗물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무너지는 아찔한 상황도 벌어졌다. 지하철 9호선 동작역도 폐쇄됐다.
누수 피해도 잇따랐다. 강남 고속버스터미널 고속버스터미널 일부 매장과 일대가 물에 잠겼고, 삼성동 코엑스 내 도서관에 누수가 발생했다.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 롯데시네마에서는 천장 누수로 시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도로는 사실상 마비됐다. 저지대인 강남과 서초 지역은 강물이 들어찬 듯 도로가 물에 잠겼다. 강남구 테헤란로, 서초구 잠원로, 동작구 사당로 일대를 중심으로 차량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 강남역 신분당선 부근에서는 하수 역류 현상이 발생해 인도까지 물이 넘쳤다. 서초구 일대에서는 차량이 물에 잠겨 운전자가 차량 위로 대피하기도 했다.
귀가하지 못하고 침수된 도로에 발이 묶인 시민들도 속출했다. 강남구에서 재직 중인 김모(30)씨는 밤 10시가 넘어선 폭우에 퇴근을 못 하고 사무실에 갇혔다. 김씨는 지인들에게 침수 상황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공유하며 “살다 살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다. 재난 영화 같다”고 했다.
귀가 방법을 찾지 못한 시민은 급하게 숙박업소로 발길을 돌렸다. 서초구에 직장이 있는 송모(25)씨는 “서초역 인근에서 꼼짝도 할 수 없어 결국 인근 숙소를 예약했다”며 “밤 10시 무렵 숙박업소 플랫폼에 호텔·모텔 등이 대다수 만석이었다. 가장 비싼 가격을 내고 간신히 남아 있는 방을 구했다”고 말했다.
밤사이 내린 폭우로 인해 아침에도 출근길 혼란이 빚어졌다. 주요 도로 곳곳이 침수되고 지하철 운행이 정상화하지 않은 탓이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이수역과 2호선 신대방역, 7호선 천왕~광명사거리 구간은 이날까지 일시적으로 운행이 멈췄다. 침수된 9호선 역시 노들에서 사평 구간의 운행을 중단했다가, 이날 오후 2시부터 전 구간 운행을 재개했다.
도로 통제도 이어졌다. 서울교통정보센터(TOPIS)에 따르면 오전 11시 현재 서울 도시고속도로 가운데 양방향 교통 통제가 이뤄지는 구간은 총 3곳이다. △반포대교 잠수교 △ 올림픽대로 여의하류∼여의상류 △올림픽대로 염창IC∼동작대교 등 서울 주요 간선도로 곳곳이 통제되고 있다.
이날 공공기관은 대부분 출근 시간을 오전 11시로 조정했다. 민간기관·단체 등에도 상황에 맞게 출근시간을 조정하도록 요청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전날 9시30분 풍수해 위기경보를 ‘경계’로 상향 발령하고 중대본 대응 수위를 2단계로 높였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호우대처 긴급상황회의’를 열고 관계기관 대책과 함께 서울시의 피해 현황과 지원 필요사항 등을 논의했다.
폭우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는 더 커질 수 있다. 기상청은 9일까지 수도권과 강원도, 서해5도에 100~200㎜(많은 곳 300㎜), 강원동해안·충청권·경북북부·울릉도·독도 30~80㎜(많은 곳 강원동해안, 충청북부 150㎜ 이상), 전북북부 5~30㎜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상했다.
기상청은 “지역에 따라 시간당 50~80㎜의 강한 비가 내리는 곳이 있겠다”며 “저지대 침수와 하천, 저수지 범람, 급류에 각별히 유의해야겠다”고 밝혔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