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에서 중심으로’…작은 학교의 이유있는 반전

‘변방에서 중심으로’…작은 학교의 이유있는 반전

특색있는 교육 찾아 학생들이 자유롭게 선택
지난해 작은 학교로 661명 학생 유입 '활력'
지속가능성 있도록 제도적인 시스템 마련해야

기사승인 2022-08-15 16:19:17
작은 학교학구제 운영중인 안동 풍산중 학생들이 과학실험을 하고 있다.(경북교육청 제공) 2022.08.15.

인구절벽과 지방소멸이 가속화되면서 지역의 농촌 현실이 위태롭다.

유엔 인구기금(UNFPA)의 '2022년 세계 인구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1.1명으로 조사 대상 198국 중 최하위다.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이 공개한 ‘2021년 국토조사보고서’에서도 경북은 최근 3년 인구 소멸 위험이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500m 격자 단위에 5인 이하 거주하는 인구과소 비율이 경북은 2018년 34.34%에서 2021년 36.49%로 2.15% 늘었다. 전국 시·도·구별 인구과소 비율 역시 평균 21.99%에 비해 15% 더 높다. 

경북의 지방소멸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는 지표다. 이런 현상은 학령인구 감소로 이어지며 농어촌지역에서 폐교가 속출하고 있다. 

실제 경북에서는 최근 5년간 22개교가 문을 닫았다. 여기에다 41개교가 학생 수 10명 이하로 폐교 위기에 놓였다.
학교가 문을 닫는 것은 곧 마을이 소멸한다는 의미다.  

지역공동체에서 학교의 상징성은 남다르다. 모든 생활이 학교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학교와 마을이 상생 발전하는 관계인 셈이다.   

때문에 경제적 효율성만 내세워 추진하는 폐교나 통폐합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런 가운데 경북교육청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작은 학교 살리기 정책’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포항 흥해서부초의 작은학교자유학제 모습(경북교육청 제공) 2022.08.15.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하는 ‘작은 학교 학구제’


경북교육청의 ‘작은 학교 살리기 정책’의 핵심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학교를 선택할 수 있는 ‘작은 학교 학구제’다.

이 제도는 임종식 교육감의 공약사항으로 지난 2019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큰 학교 학생들이 주소이전 없이도 작은 학교로 전입이 가능한 일방향 학구조정 정책이다. 

소규모학교의 열악한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지역실정에 맞는 특색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해 학생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소규모 학교를 통합하기 보다는 학교를 살려 마을 공동체와 공생하자는 취지다.

대상은 읍·면 지역의 전교생 60명 이하 학교 가운데 증축 없이 보유교실을 수용할 수 있는 학교다. 시·읍에 위치한 200명 이상 학교의 학생은 이들 소학교를 선택하면 전학이 가능하다.

경북교육청 정책혁신과 송영호 주무관은“저출산과 고령화, 도시 집중화 현상에 따라 농어촌 학력인구가 급속도로 감소하면서 교육환경 여건이 열악해지고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라면서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학교 통폐합 보다는 작은 학교 살리기에 역점을 두고 정책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상주 낙동초 학생들이 다이음 체험 교실에서 지역화 체험활동을 하고 있다.(경북교육청 제공) 2022.08.15.

‘작은 학교의 반전’, 지난해 661명 학생 유입..시행 3년 만에 정착

‘작은 학교 자유학구제’는 연차별로 도입기(1단계)-정착기(2단계)-확산기(3단계)-안정기(4단계)로 추진된다.

시범운영으로 진행된 1단계는 초등학교 29개교로 출발했으며, 2020년 108개교(초 97개교, 중 11개교), 2021년 144개교(초 123개교, 중 20개교) 확대됐다. 안정기에 접어든 올해는 158개교(초 137개교, 중 21개교)를 운영하고 있다.

이 기간 큰 학교에서 작은 학교로 유입되 학생은 2019학년도 134명, 2020학년도 460명, 2021학년도 661명에 이른다.

대표적으로는 안동 풍천중학구 학생 54명이 인근 풍산중학교로 진학해 과밀학급 해소는 물론 교육여건이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학생이 고스란히 풍천중으로 입학할 경우 학급당 평균 학생수는 29명으로 읍면 학급당기준 24명을 초과하는 과밀학급이 되는 상황이었다. 

풍산중학교는 매주 금요일 45분간 독서활동을 실시하는 사제동행 독서프로그램 ‘학이사위주(學以思爲主)’ 운영을 통해 학생들의 능동적인 사고력을 키워주고 있다.  

이밖에 작은 학교인 포항 장기중에 22명, 포항 죽전초와 영주 이산초에 각각 19명의 학생이 유입되는 등 지난해 작은 학교 11교에서 12개 복식학급이 감소되는 효과를 거뒀다. 

포항 장기중학교는 2020년 작은학교 자유학구제 시범학교로 지정된 후 ‘사군자(四君子)’ 교육 프로젝트를 통해 1인 2악기 연주하기, 1인 1스포츠 특기를 가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또 죽천초등교는 꿈끼 육성활동, 꿈끼 페스티벌 등 외부 전문가를 초빙해 직업체험 학습을 실시하고 있다. 

영주 이산초교는 돗밤실 둘레길 걷기, 한과만들기, 김장나눔, 사제동행 천연염색체험 등  지역과 연계한 다양한 체험학습과 학생이 주도하는 동아리활동을 통해 창의성, 인성, 감성을 담아내는 교육을 펼치고 있다.    

포항 청하중학생으로 구성된 관송윈드오케스트라가 합주 연습하고 있다.(경북교육청 제공) 2022.08.15.

특색 프로그램, 학생, 학부모 90% 만족

‘작은 학교 자유학구제’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의 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북교육청이 지난 4월 26일부터 5월 7일까지 12일 간 실시한 ‘작은 학교 자유학구제 운영’만족도조사에서 ‘매우 만족’ 844명(63.13%), ‘만족’ 358명(26.78%) 등 응답자 90%가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반면 ▲불만족 45명(3.37%) ▲매우 불만족 8명(0.60%)으로 나타났다. ‘보통’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13%(82명)다. 

작은 학교 자유학구제 운영의 좋은 점으로 ▲특색 있는 방과 후 프로그램 운영 ▲특기 및 적성 계발 ▲특색 있는 현장 체험학습 ▲교육 여건 개선과 교육격차 해소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 운영 ▲과대 학교와 과밀학급 해소 등을 꼽았다.  

이에 반해 ▲통학 시 안전 문제 ▲상급학교 진학 문제 ▲교우 관계 ▲시설물의 노후화 ▲교원의 업무량 증가와 생활지도의 어려움 등을 보완해야할 과제로 대답했다.

이밖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시간 확대 ▲통학 차량 지원 ▲운영에 필요한 충분한 예산지원 등을 요구했다. 

울진 노음초가 야외 수업을 실시하고 있다.(경북교육청 제공) 2022.08.15.

상급학교 진학 문제 등 개선과제도 남아

‘작은 학교 자유학구제’ 운영 과정의 한계도 있다.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통학 시 안전 문제, 상급학교 진학 문제, 교우 관계, 시설물의 노후화, 교원의 업무량 증가와 생활지도의 어려움 등은 당장 현실적인 상황과 맞물려 있어 시급하게 개선해야할 과제다.

여기에다 작은 학교의 경우 기존 학교와 달리 스포츠 등 단체수업을 하기에는 학생 수가 여전히 부족한 점도 숙제도 남는다.   

교직원들 역시 복식수업으로 인한 부담과 과다한 공문처리 등으로 수업의 질 하락을 걱정하고 있다.

특히 작은학교살리기 사업이 지속가능하기 위해 학생 수만 늘리는데 그치지 않고 인구 증가와 경제적 효과를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도 고려해야 한다. ​

이를 위해 이주민들이 마을에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문제, 생활 인프라 개선 등 행정과 교육청이 협업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  

임종식 교육감은 “이번 현장 만족도 설문조사 결과를 통해 작은 학교 자유학구제의 안정적인 정착과 활성화를 도모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도농 간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농산어촌의 작은 학교 활성화에 만전을 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은 학교의 장점은 극대화하고 단점은 보완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 아이들이 마음껏 꿈을 키울 수 있도록 적극지원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작은 학교 자유학구제를 운영 중인 칠곡 낙산초가 '제3회 낙산가족 챔버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를 가졌다.(경북교육청 제공) 2022.08.15.

안동=노재현 기자 njh2000v@kukinews.com
노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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