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여성 역무원 스토킹 살인사건’으로 여성가족부 폐지에 대한 재논의 주장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문재인 정부에서 여가부 장관을 지낸 인사들이 침묵하고 있다.
특히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여가부 장관을 지낸 현역 의원으로 힘주어 여가부 존속을 외쳐야 함에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젠더 이슈와 연결되는 것을 회피하려는 모습이다.
그동안의 정치 이력과 달리 젠더 문제에 대해 소극적인 진 의원의 행보에 일부 여성들은 의문을 품는가 하면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22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진선미 의원이 21대 국회에서 낸 여성·가족 관련 법안은 단 5건뿐이다. 가장 최근에 낸 법안은 지난 2021년 1월 12일에 낸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이다. 또 최근에는 젠더 이슈와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진 의원은 올해 1월 초 한 언론사와의 방송 인터뷰를 끝으로 여가부 폐지에 대해서는 발언을 아끼고 있다. 진 의원은 개인 SNS에 최소 이틀에 한 번꼴로 다양한 주제의 글을 올리고 있지만 여성 이슈에 대한 발언은 찾아보기 힘들다. 여성 가족 전문가라는 이력이 무색하다.
일부 여성은 의례적인 모습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젠더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한 30대 여성은 21일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여가부 폐지 문제에 대해서 민주당 자체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을 안 하는 것 같다”며 “진선미 의원뿐 아니라 이재명 당대표도 후보일 때는 박지현 위원장을 영입하면서 여성 이슈에 관심을 가질 듯하더니 선거가 끝나니 외면하는 것처럼 보여 분노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진 의원은 디지털 성범죄 관련해 N번방 처벌법 등의 법제화에 공헌했고 호주제 폐지로 정치권에 입문한 분이기에 진정성을 의심하진 않으나 이런 국면에 좀 더 강하게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여가부 장관을 지낸 이들 중 유일하게 현역 의원으로 활동 중인 진선미 의원이 여성 문제 등을 회피하려는 모습은 결국 정치 전략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숨기면서 중도층을 지지층으로 흡수해 차기 총선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최요한 평론가는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국민의 사랑과 선택을 받아 그 자리에 선 정치인이라면 국민적 관심이 쏠린 사안에 대해 대안을 내놓지는 못하더라도 한마디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며 “특히 전직 여가부 장관이 여가부 폐지나 신당역 사건 등에 대해 아무런 발언을 내놓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비겁한 처사”라고 일갈했다.
이어 최 평론가는 “아마 내후년 총선 출마하려고 하면 특정 집단의 지지만으로는 어렵기 때문에 다양한 지지를 모으기 위한 관리 차원이라고 봐야 한다”며 “특히 젠더 이슈 등 민감하고 까칠한 문제는 전혀 개입하지 않겠단 의도이자 전략”이라고 부연했다.
다만 그는 “전략적으로만 다가가는 정치인은 결코 큰 정치인이 될 수 없다”며 “여가부 장관을 지낸 진 의원이라면 정치권에서 남성과 여성의 갈라치기로 만들어진 젠더 문제를 정면승부하는 게 더 맞다”고 강조했다.
진 의원의 소극적 행보와 달리 문재인 정부의 첫 여가부 장관을 지냈던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교육자이자 전직 장관으로서 여가부 폐지에 대한 강력한 반대 의견을 냈다. 현재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진 않지만 자신의 위치에서 소신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여성사학회 6월호에 ‘여성가족부 폐지를 둘러싼 논란과 그 사회적 의미’란 제목의 비정규 논문을 기고했다. 정 전 장관은 기고문에서 윤석열 정부가 추진코자 하는 여가부 폐지 시도가 결국 여성·청소년·아동·가족의 안전과 복지를 위험에 빠뜨리고 삶의 질을 떨어뜨릴 거라고 경고했다.
한편 쿠키뉴스는 해당 사안에 대한 진선미 의원 입장을 직접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질 않았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