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작은 아씨들’은 촘촘한 드라마다. 출발지가 달랐던 세 자매는 여러 관계와 상황이 맞물리며 한 지점에서 모인다. 가장 낮은 곳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가장 정교한 형태로, 가장 높은 곳을 향해 착실히 달려가고 있다. ‘작은 아씨들’의 세계를 보여주는 수많은 장치는 곳곳에 심어져 있다. 대사도 그렇다. 오인주(김고은), 오인경(남지현), 오인혜(박지후) 세 자매가 내뱉는 말들엔 이들의 정체성이 오롯이 담겼다. 이들이 무엇을 목표하고 무엇을 배척하는지, 가난을 어떻게 대하는지,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는 어떤지… 정서경 작가가 설계한 세계에서 세 자매는 보다 더 입체적으로 생동하며 변화한다.
부모의 가난은 어디로 향할까
‘작은 아씨들’에서 세 자매를 옭아매는 건 자본이다. 이들은 가난하다. 세 자매에게 부모는 기댈 대상이 아닌 가난을 초래한 근원이다. 인주와 인경이 인혜의 수학여행비를 마련하기 위해 불철주야 돈을 모아도, 이를 빼돌린 어머니(박지영)의 야반도주에 금세 무력해진다. 인주는 “어떤 사람들은 엄마가 되지 않는 게 더 나은데, 그게 하필이면 우리 엄마”라며 자조하고, “무능한데 착한 게 어디 있어? 무능한 거 자체가 나쁜 건데”라는 말로 능력 없는 부모를 조소한다. 인경은 술에 의존하는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빠를 닮은 게 아닐까 생각하며 자책한다.
세 자매에게 가난은 죽음의 공포와도 직결됐다. 인혜는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가 택한 건 효린(전채은)을 따라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것. “난 이 집에서 언니들처럼 사는 것보다 효린이네서 하녀로 살고 싶다”고 하는 인혜를, 인주는 차마 말리지 못한다. 돈이 없어 치료조차 받지 못한 채 죽은 동생 인선이 죄책감으로 남아서다. “난 아버지가 도둑질을 해서라도 집에 돈을 가져왔으면 했어. 우리가 먹고, 살고, 죽지 않게. 사람은 가난하면 죽으니까.” 인주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돈을 얻을 궁리를 한다면, 인경은 가난한 가족의 얼굴을 돌아보기 위해 맹목적으로 뉴스를 찾아다닌다.
가난을 대하는 세 자매의 얼굴들
세 자매는 각기 다른 모습으로 가난을 대한다. 사경을 헤매다 죽은 인선의 환영을 본 인혜는 언니들에게 말한다. “그 애, 쓰러져 죽을 때마다 나한테 그랬어. 우리 집에서 도망가지 못하면 언젠간 나도 죽는다고.” 인주는 동생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싶다. 인주는 인경에게 “돈으로 가족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 인혜가 배울 게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한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싱가포르에 숨겨진 비자금 700억원을 지키려 한다. “사랑은 돈으로 하는 거야. 돈이 없으면 이 정도는 삼켜야지. 난 얼마든 삼킬 수 있어. 그렇게 못 하면 내가 우리 부모랑 뭐가 달라?” 부모가 대물림한 가난을, 인주는 어떻게든 넘어서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인경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가난은 괜찮아. 하지만 가난해서 도둑이 되는 건 싫어. 그건 지는 거잖아. 죽는 것보다 그게 더 싫어.” 인경은 궁금하다. 세상에 죽음보다 강한 게 있을지, 얼마나 차가운 마음을 가져야 다른 사람의 죽음을 돈으로 살지. 그래서 인경은 인주가 죽기 살기로 지키려 애썼던 20억원을 ‘단돈’으로 낮춰 말한다. 인주가 집착하는 20억과 700억은 화영(추자현)을 비롯해 원령가가 누군가의 죽음을 거쳐 만들어온 돈 아닌가. 인경은 당장의 가난을 모면하고자 그런 돈을 쓰는 것에 극렬히 반대한다. 인경에게 가난은 자긍심을 만들어 온 밑바탕이다. 그는 가난한 현실을 도피하기보단, 기꺼이 딛고 선다.
인혜는 가난에 가장 적대적이다. 인혜는 가난 속에서 피어난 언니들의 사랑이 버겁다. “넌 참 사랑을 당연하게 받는다”는 효린에게 인혜는 “사랑이란 거, 주면 다 받아야 되는 거냐”고 되묻는다. 그의 얼굴엔 피로감이 가득하다. 언니들의 애정, 그 기저에 깔린 그들의 희생을 인혜는 너무도 잘 안다. 그래서 인혜는 적극적으로 가난을 등지고 도망가려 애쓴다. 인주에게도 “부자는 다 가해자고 가난한 사람은 피해자냐. 그건 가난한 사람들의 자기중심적인 망상”이라고 쏘아붙인다. 인혜는 아버지가 살인자일까 걱정하는 효린에게 말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버지가 살인자라는 사실이 네 인생을 지배하게 둬선 안 돼.” 이는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인혜의 인생 전반은 부모의 가난에 지배받고 있다.
차단이 가리키는 곳
세 자매는 각자 다른 생각을 갖고 원령가에 뛰어든다. 이유는 달라도 목표는 같다. 가장 밑바닥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서다. ‘작은 아씨들’에서 꾸준히 나오는 이 문장은 등장인물 모두를 대변한다. 누군가를 밟아가며 가장 높고 밝은 곳으로 향하는 재상(엄기준)과 상아(엄지원). 노력을 거듭하며 높은 곳으로 올라갈 발판을 마련한 인주·인경·인혜. 이들 곁을 맴도는 도일(위하준)과 종호(강훈), 효린 모두 각기 다른 욕망을 가졌다. 부모의 애정이 고픈 효린은 가정의 평화가 절실하다. 종호는 인경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 도일은 철저히 돈을 좇는다. ‘작은 아씨들’의 인물들은 이상향으로 올라서기 위해 조용한 투쟁을 이어간다.
세 자매가 서로를 차단하는 방향은 흥미롭다. 가장 먼저 인혜가 인경을 차단한다. 인혜는 자신을 찾겠다며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던 인경에게 분노한다. “태어나서 가장 수치스러운 하루”라며 어떤 대화도 거절한다. 인혜에게 거부당한 인경은 인주를 차단한다. 단돈 20억원 때문에 스스로의 가치관을 뒤엎는 그를 이해할 수 없어서다. 가족 모두 돈 걱정 없이 살게 하겠다고 말하는 인주에게 인경은 “언니가 꼭 그렇게 해야겠다면 연을 끊자”며 망설임 없이 차단 버튼을 누른다. 인주는 부모를 차단한다. 누가 먹을지도 모르는 망고를 따느라 딸이 아파도 오지 않는 부모에게 인주는 분노하며 수신 차단을 알린다. 인혜에서 인경, 인경에서 인주, 인주에서 부모로… 가난하고 냉혹한 현실에 놓인 세 자매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주저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이들은 과연 어디까지, 어떻게 올라갈까. 그리고 그 끝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