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상승과 함께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가계부채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국을 따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가 올라가면서 은행 대출금리는 벌써 8%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추가 금리 인상까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장기 경기침체 우려까지 첩첩산중이다. 가계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안심전환대출 등 민생안정 대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아 우려를 더 한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의 9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가 발표된 직후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11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추가 기준금리 인상이 단행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9월 CPI는 지난 8월(8.3%)보다는 낮아졌으나 시장 전망치(8.1%)를 웃돌았다. 특히 에너지와 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는 9월 전년 동월보다 6.6% 올라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좀처럼 잡히지 않으면서 한 번에 금리를 0.75%p 올리는 추가 자이언트스텝 시행 가능성도 제기된다. 시장에서는 올해 말 연준의 기준금리가 4.75%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1월 ‘자이언트 스텝’ 단행을 확실시하면서, 12월에도 0.75%p 인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다은 대신증권 연구원은 “부진한 경제지표로 인해 연준의 정책 전환을 기대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며 “특히, 9월 고용지표에서 보여준 노동시장 수급불균형 정도와 연준의 물가-임금 순환에 대한 우려를 감안하면 연준의 긴축 기조는 내년 1분기까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한국 경제 옥죄이는 1400조원 가계부채
금리가 급격히 올라가면서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된다.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가계부채 증가율은 약 28.9%에 달한다. 지난해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1400조원을 넘어선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꾸준히 증가해 작년 말 기준 171%로 5년 전과 비교해 약 1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가계부채의 변동금리 비중이 높다는 점은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다. 지난 8월 기준 변동금리 가계대출 비중은 78.5% 수준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기준금리가 처음 인상된 지난해 8월 당시 비중(74.4%)보다 4.1%p 높아진 수치다.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과 빚투(빚내서 투자)가 가져온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금융취약계층의 경우 금리 인상이 생계를 위협한다. 민주연구원의 보고서를 보면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대출비율이 소득분위별로 1분위 4배, 2분위 2.8배, 3분위 2.4배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모든 계층의 가계부채가 높지만 저소득층일수록 더욱 위험한 수준이라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금리 인상에도 국내 가계부채의 담보 비중이 높고, 가계의 신용도가 높아 부실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다만 가계의 늘어난 대출 이자는 결국 소비 부진으로 이어지고, 국내 경제의 한 축을 차지하고 있는 부동산의 가격 하락을 통한 자산시장 붕괴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높은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정부도 가계부채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대웅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대응 방안이 올해 7월 발표된 금융부문 민생안정 대책이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변동금리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 대출로 전환해 주는 안심전환대출을 40조원 공급하고, 낮은 금리의 전세대출 공급을 확대하는 방안을 핵심으로 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이후 금리 인상이 급격히 진행되면서 안심전환대출 공급규모를 5조원 더 확대했다.
◇불안한 정부 대응…적극적인 종합대책 필요
하지만 정부의 대응은 시행 초기부터 흔들리며 불안감을 불러온다. 주택담보 안심전환대출의 경우 주택가격 제한이 4억원으로 높아 지원 신청이 저조한 결과를 낳았다. 전국 주택종합 매매 평균 가격이 4억8880만원(KB기준)인 상황에서 주택가격을 4억원으로 제한함으로써 막상 신청할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은 결과로 분석된다. 금융위는 순차적으로 주택가격을 높여나가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정부 대응에 대한 국민 신뢰가 흔들린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국회에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안심전환대출은 처음부터 합리적 주택가격으로 공고를 해야 했다는 지적이 있다”며 “실제로 작동하지 않는다 평가가 나온다. 한 마디로 빛 좋은 개살구 아니냐”고 꼬집었다.
은행의 대출금리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한 예대금리차 공시도 미봉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예대금리차 공시로 은행의 자발적인 금리 인하를 유도하겠다는 취지이지만 금리 인상의 근본 원인을 해결 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결국 예대금리차 공시가 시작된 이후 은행권 가계대출 금리는 한 달 만에 최대 0.7%p 올라가며 제도의 한계를 드러냈다.
저금리 전세자금 대출 공급도 당장 대출을 받아 이용하고 있는 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 특히 전세자금 대출의 경우 20~30대 청년층이 절반(61.6%)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리의 가파른 인상으로 청년층이 과도한 빚 부담을 떠안아 부실화하지 않도록 전세자금 대출 대환 등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해 더 적극적인 자세의 종합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취약차주 장기상환 지원, 청년·자영업자 전환대출과 비소구대출(유한책임대출) 확대, 사전 부채 조정, 자동면책 기간 단축과 파산절차 중지명령제 도입 등을 주장하며 “빚을 진 채로 보릿고개를 넘을 수는 없다. 금리 인상이 경제위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을 국회와 정부의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