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0만명 예상했지만 ‘경찰 배치도’ 한 장 없었다

[단독] 10만명 예상했지만 ‘경찰 배치도’ 한 장 없었다

기사승인 2022-11-03 06:01:02
29일 밤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150명 이상이 사망하는 대규모 압사 참사가 났다.   사진=최은희 기자

핼러윈 기간 동안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10만명이 몰릴 것이란 예상에도 시민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 대책은 사실상 없었다.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는 사고 취약 구역에 대한 경찰력(경력) 사전 배치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3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은 이태원 핼러윈 행사를 대비한 경력 배치도를 마련하지 않았다. 사전 경력 배치도는 대규모 군중이 밀집돼 있을 때 우려되는 돌발사고를 막기 위한 일종의 관리 가이드라인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이번 이태원 핼러윈 기간에는 자발적으로 인파가 몰려든 것”이라며 “이런 경우, 특정 구역·위치를 일일이 정해 경력을 배치하지 않는다. 사전 경력 배치도 역시 없다. (현장 경찰이) 각자 역할에 맞게 행동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사전 배치도는 이태원동을 관할하는 용산경찰서가 상황에 따라 마련할 수 있다”라고 부연했다.

참사 당일 부실대응 비판을 받고 있는 용산경찰서는 쿠키뉴스 취재에 당초 경력 배치도 존재를 인정했다가 서울경찰청 측 입장을 전달받은 후 “미리 예정된 집회나 행사에만 서울경찰청과 조율해 사전 배치도를 준비한다”며 “서울청 답변과 동일하다. 드릴 답변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주최 측이 명확하지 않은 행사에는 지자체의 요청 여부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전 배치도를 만들기도 한다는 타 지역 경찰청 관계자의 전언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경찰이 이번 행사에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상황을 충분히 예측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용산경찰서는 지난 27일 보도자료에서 “올해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된 이후 처음 맞이하는 핼러윈으로, 클럽 등 영업 제한이 해제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축제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온라인상 핼러윈과 이태원을 단어로 한 검색량이 폭증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고 취약 지점도 인지하고 있었다. 용산구가 지난 2019년 10월 작성한 ‘이태원 지구촌축제 결과 보고서’를 살펴봤다. 지난 2002년부터 개최된 이태원 지구촌축제는 핼러윈 축제보다 2주가량 앞서 열린다. 주최는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이며, 용산구와 서울시가 후원한다. 보고서에는 주요 문제점으로 ‘관람객 대비 (좁은) 행사장 규모로 보행 불편 및 안전 문제 발생’이 제시됐다. 집중 단속이 필요한 구역으로는 “가장 혼잡한 메인지역에 위치한 한국·세계 음식 부스”를 지목했다. 이번 핼러윈 참사도 이 인근 골목길에서 발생했다. 

이태원 압사 참사가 발생한 사고 현장을 31일 경찰이 통제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대책은 미흡했다. 사고 당일 배치된 경찰력은 범죄 예방이나 대로변 차량 통제에 초점을 맞췄다. 참사가 발생한 골목길 일대가 집중 단속 구역이었지만, 경찰은 없었다. 보행 경로 관리나 압사 사고 예방을 위한 인원 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경력 대다수가 대규모 인파 관리에 대한 경험이 없었다는 점도 문제다. 서울경찰청은 사고 당일 이태원에는 경찰 137명을 배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수가 마약·성폭력 단속이 전문인 외사·형사 담당 사복 경찰로 확인됐다. 정복을 입은 경찰관은 58명뿐이었다. 대응 매뉴얼도 부재했다. 홍기현 경찰청 경비국장은 31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이태원 압사 참사처럼) 주최 측이 없는 다중 인파 사건에 대응하는 경찰의 관련 매뉴얼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참사 전 골목길 등에서 경찰을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참사 당일 오후 7시까지 주변 상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김모(20)씨는 “이태원역 인근에는 경찰이 있었지만 10명도 채 되지 않았다. 일했던 골목 근처에서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참사 당일 이태원을 방문한 이모(25)씨도 “대로변에만 경찰들이 있고 골목길에서 시민을 인솔하는 경력은 아예 없었다”라고 토로했다.

경찰들이 대로변 중심의 교통 통제에만 주력하며 골목길에 인파가 더욱 몰렸다는 주장도 나왔다. 일정 구역을 나눠 경력이 사전 배치되지 않아, 참사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다. 이씨는 “대로변이 통제되자 해밀턴호텔 골목길 쪽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미리 경찰이 주둔했으면 골목길로 들어갈 사람들이 대로변으로 나왔지 않겠나. 그런 조치가 있었다면 희생자가 줄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사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06년 3월 서울 롯데월드 무료 개방 행사 때 지하 통로 매표소에 11만여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35명이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2000년 12월31일 서울 보신각 타종행사에서 인파에 깔려 1명이 숨지고, 9명이 다쳤다. 당시 보신각 주변에는 6만명이 몰렸다.

쿠키뉴스는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시민과 함께 슬퍼합니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언론이 해야 할 일을 하겠습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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