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야 성향 시민언론 ‘더탐사’와 ‘민들레’가 유족 동의 없이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 논란인 가운데 여야 정치권 모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명단을 공개하자는 주장을 먼저 냈던 민주당은 민심의 역풍 조짐 때문인지 화들짝 놀라 진화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시민언론 ‘더탐사’와 ‘민들레’는 14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유족 동의 없이 공개했다. 유족 동의 없는 공개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고는 했지만, 국민적인 공감이 없는 전격 행보에 국민 여론은 차갑다.
명단 공개 주장을 가장 먼저 제기한 민주당은 싸늘한 민심에 해당 매체와는 확실히 선 긋기에 나섰다. ‘유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맞지 않다’는 기존 의견을 재차 강조하면서 명단 공개가 당론이 아니라고 못 박았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15일 아침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직접 출연해 “민주당 차원에서 (희생자 명단을) 공개하는 게 맞다고 논의된 바가 전혀 없다”고 현 상황을 일축했다.
조 의원은 “국민의 알권리라든가 그 어떤 것을 갖다 대도 참담한 사건으로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것보다 더한 대의명분은 없다”며 “유족들의 명시적인 의사가 중요하다”고 더탐사·민들레의 명단 공개에 대해 사실상 부정 의견을 피력했다.
이어 그는 “더 나아가서 법적인 분쟁으로까지 번졌을 때 문제뿐 아니라 정쟁으로 옮겨졌을 때 세월호 때처럼 ‘지겹다, 이제 그 얘기 좀 그만해라’라는 소재로 쓰일까 봐 걱정”이라고 부연했다.
민주당 내에서 희생자 명단 공개 여론이 나오기 시작한 건 지난 7일 문진석 의원의 휴대 전화 메시지가 한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이후부터다. 당시 문 의원은 이연희 민주연구원 부원장으로부터 ‘참사 희생자의 전체 명단·공개되는 것은 기본, 모든 수단 동원해서라도 희생자 명단·사진·프로필 확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다.
당시에도 이태원 참사를 정쟁 또는 당리당략으로 이용하려 민주당 내 전략이 노출된 거라는 비판이 나왔지만, 민주당에서는 꾸준히 명단 공개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아울러 이재명 당 대표가 9일 최고위 회의에서 “유족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한다”고 발언하고 나서는 당내에서 점차 여론화되기 시작했다.
유족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전제를 두긴 했지만 당 대표 발언의 무게 때문인지 야권에서는 명단 공개에 힘이 실렸다. 결국 친야 성향 매체가 정치권에 앞서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다.
물론 당내 반발도 있었다. 명단 공개가 의원총회 등을 통해 공식적인 논의는 없었지만 언론과의 인터뷰나 개인 SNS를 통해 일부 의원이 명단 공개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지난 9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문 의원의 문자 파동과 관련해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전략기획위원장한테 이렇게 저렇게 제안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공식적으로는 그런 걸 논의할 주체가 아니다”며 “역사, 민심을 무섭게 알아야지 잔꾀와 술수로 정치하려는 태도는 민주당 안에서 동의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5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명단을 공개한 측의 의도를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이재명 대표가 희생자 명단 공개의 필요성을 언급한 다음 명단 공개가 된 만큼 국민은 이를 오버래핑해 받아들일 수 있다”며 “결국 사람들은 명단 공개를 본질보다는 정치적으로 바라볼 가능성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가 정치적인 논쟁으로 번지게 되면 결국 민주당에게는 이로울 게 없다”고 부연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명단 공개에 대한 당내 여론의 움직임은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주당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명단 공개를 주장하는 이들은 희생자들의 이름이 알려지면 과거 세월호 참사 때처럼 국민이 들고 일어서 결국 촛불로 정부를 심판할 수 있을 거란 착각을 하고 있다”며 “이번 이태원 참사는 세월호 참사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만큼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해서는 자중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