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역대급 불수능’으로 꼽힌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다소 쉽게 출제된 것으로 분석됐다. 상위권과 중·하위권 간 변별력을 갖췄으나 초고난도 문제가 줄어 최상위권 변별력은 떨어진다는 평가다.
특히 지난해 수능이 예년보다 많이 어려웠던 데다가, 이번 수능 응시자 중 졸업생 비중이 높은 점, 올해 고3이 고교 3년을 모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함께 보내 기초학력이 떨어졌을 수 있다는 점 등이 변수로 꼽힌다.
국어 “작년보다 쉽지만…물수능은 아냐”
국어영역의 경우 표준점수가 역대 두번째로 높았을 정도로 난도가 심했던 지난해 수능보다는 다소 쉬워진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대입 상담교사단은 17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제 경향 분석 브리핑에서 “상대적으로 난도가 높았던 2022학년도 수능에 비해 조금 쉽게, 지난 8월31일 실시한 9월 모의평가와 유사한 수준으로 출제됐다고 본다”고 밝혔다.
지난해 수능 국어 영역의 경우 어려웠던 시험으로 꼽히면서 표준점수 최고점도 149점으로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표준점수는 원점수가 평균 성적과 얼마나 차이 나는지 나타내는 점수다. 평균이 낮으면 최고점이 높아지고, 평균이 높으면 최고점이 낮아진다. 9월 모의평가의 국어 영역 표준점수 최고점은 140점으로 전년 수능보다 9점 낮았다. 교사단은 “이번 수능 최상위권 분포도 비슷할 것으로 추정한다”고 했다.
국어 영역은 EBS 연계율이 높고 대체로 수험생에게 익숙한 문제 유형이 출제된 것으로 평가됐다. 특히 초고난도 문항 수준이 작년 수능보다 쉬워 최상위권의 국어 변별력이 하락할 전망이다. 대교협 대입 상담교사단의 김창묵 서울 경신고 교사는 “중상위권에선 변별력이 예년과 비슷하겠지만 최상위권에선 예년보다 다소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입시업체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어렵게 출제된 통합수능 1년차보다는 쉽게 출제됐다”면서도 “다만 변별력 없는 물수능 수준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메가스터디교육 입시전략연구소도 “전년 수능 대비 다소 쉽게 출제하려는 노력이 보였다”고 했다.
선택과목에 따른 유불리 현상은 작년보다 심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작년 수능에서 ‘언어와 매체’ 응시생의 표준점수 최고점은 149점, ‘화법과 작문’은 147점이었다.
수학 “작년만큼 어려워”
수학 영역은 지난해 수능과 난이도가 유사해, 어려웠던 것으로 분석됐다. 초고난도 문항이 줄어든 대신 중간 난도 문항이 늘었다. 최상위권 변별력은 다소 하락하겠지만 중상위권 학생들에 대한 변별력은 갖췄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수능은 표준점수 최고점이 147점으로, 그 전해(137점)보다 10점이 뛰었을 정도로 어려운 시험으로 꼽힌다.
김창묵 서울 경신고 교사는 “지난해에 비해서 평이한 문제였지만, 그렇다고 쉽다는 것은 아니다”라며 “최상위권 변별력은 다소 하락하는 경향성이 보일 것 같다”고 밝혔다.
수항 영역은 선택과목(확률과 통계, 미적분, 기하)보다 공통과목(수Ⅰ, 수Ⅱ)이 대체로 어렵게 출제된 것으로 분석된다. 공통과목 중 극한 개념을 활용한 14번, 각각의 경우를 나눠 수열의 항을 구하는 15번, 함수 최소값을 이용해 3차 함수의 함수값을 구하는 22번 문제가 고난도 문제로 꼽혔다.
선택과목 중 ‘확률과 통계’, ‘기하’에선 새로운 유형의 문제가 등장했지만 ‘미적분’은 신유형이라 볼 만한 문제가 없었다. ‘확률과 통계’에선 신유형인 29번과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함수의 개수를 구하는 30번이 고난도 문항으로 꼽혔다. ‘기하’는 벡터의 내적을 이용해 특정 점의 위치를 찾는 29번, 수학적 추론으로 그림에 나온 좌표를 찾는 30번에서 수험생들이 어려움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 ‘미적분’은 28번·29번·30번이 고난도 문항으로 꼽혔지만 예전에 비해 난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어려운 수학 난이도 때문에 지난해처럼 정시 전형에서도 수학이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과목이 될 전망이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정확한 계산이 필요한 중상 난도의 문항이 다수 출제돼 시간이 부족했던 학생에게는 체감 난도가 높았을 것”이라며 “중상위권에서는 변별력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영어 “작년 수능보다 쉬워” VS “다시 불수능”
영어 영역은 지난해 수능보다 다소 쉽게 출제됐지만 올해 9월 모의평가보다는 어려웠던 것으로 나타났다.
윤희태 서울 영동일고 교사는 “구체적인 1등급 비율 수치를 밝히긴 쉽지 않다”며 “보는 학생의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어 “지난해보다 쉽게 내려 노력했고 9월 모의평가보다 (1등급이) 많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출제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신유형 문제는 출제되지 않았고, 어휘도 어려운 편은 아닌 것으로 분석됐다.
영어 영역은 지난 2018학년도 수능부터 절대평가로 실시됐다. 100점 만점에 90점을 넘으면 1등급을 얻는 방식이다. 1등급을 획득한 학생 비율을 통해 수험생들이 느낀 난도를 가늠한다. 지난해 수능에서 1등급 수험생 비율은 6.25%였으나 지난 8월31일 실시된 9월 모의평가에서는 15.9%였다.
다만 9월 모의평가 때보다 문단과 문장의 길이가 길어져 9월 모의평가 기준으로 시험을 준비한 수험생들은 다소 어려웠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까다롭게 생각하는 어법 문제인 29번의 경우 평이하게 출제된 것으로 평가됐다.
전기홍 경북 무학고 교사는 고난도 문항으로 어법 문항인 29번과 빈칸추론 34번, 글 순서를 묻는 37번, 문장 빈칸 넣기 39번 문항을 꼽았다. 전 교사는 34번 문항에 대해 “내용이 추상적이고 고도의 추론 능력이 필요해 상위권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37번과 39번은 지문의 소재가 수험생들에게 친숙하지 않아 어려웠다며 중위권과 상위권을 가를 문항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수능은 지난 해보다 1791명 줄어든 50만830명이 지원(원서접수자 기준)했다. 이중 졸업생과 검정고시생을 합한 비율이 31.1%로 1997학년도(33.9%) 이후 26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1교시 결시율은 10.8%로, 실제 응시자수는 45만477명으로 집계됐다.
평가원은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21일까지 5일간 문제 및 정답에 대한 이의신청을 받아 29일 정답을 확정 발표한다. 성적은 다음달 9일 통지한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