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20대,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

내 나이 20대, 장기를 기증하기로 했다

20대 기증희망등록자 급증…전체 등록자 중 비중 가장 높아
가족 반대에도 신청…“한 번 사는 인생, 남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정부, 기증자 예우 개선 위한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 개정 속도

기사승인 2022-12-03 06:00:08
임모씨의 장기희망등록증. 그는 “장기기증 신청은 20대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인생 살면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독자 제공

“20대가 되자마자 장기기증 신청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를 살리는 일이잖아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있나요.” 

장기기증은 문자 그대로 사람의 신체 내부 또는 외부 조직 중 일부분을 기증하는 것을 말한다. 죽음을 맞이했을 때 자신의 신체 일부를 꼭 필요한 환자에게 전달함으로써 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장기기증은 신체를 떼어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오해들로 오랫동안 외면 받아왔다. 

다행히도 지난 5년간 장기이식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1년 장기 등 기증희망등록자는 17만5889명으로 2017년 대비 40.6%가 증가했다.

특히 20대 신청자 수가 눈에 띄게 많았다. 국립장기기증혈액관리원에 장기기증희망등록을 한 사람 중 20대 비중은 2020년 35%, 2021년 31%로 타 연령대에 비해 높은 편이었다. 또한 올해 들어 10월까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장기기증희망등록을 한 2만3548명 중 20대는 전체의 26.1%(6142명)를 차지해 가장 많았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예전에는 40~50대가 많았는데 2019년부터 20대 등록자가 급속히 늘어나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며 “온라인, 매체, 캠페인을 통해 장기기증 정보를 많이 접하면서 관심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긍정적으로 인식이 바뀌어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근 2030세대에서는 버킷리스트로 ‘장기기증 신청’을 손꼽는 사람도 있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를 신청한 청년들은 저마다 나름의 ‘정의감’을 갖고 장기기증 신청을 결정했다.

박모씨의 장기기증희망등록증. 그는 “나의 20대 마지막에 정말 의미 있고 뜻깊은 일을 한 것 같아 뿌듯하다”며 자신있게 사진을 보내왔다.   독자 제공 


“장기기증, 어떻게 결심하게 됐나요?” 


간호사를 꿈꾸는 늦깎이 대학생 임모씨(31세·여)는 어릴적 TV 방송프로그램을 접한 뒤 20대가 되면 무조건 장기기증을 하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당시 MBC ‘눈을 떠요’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장기이식대기자에 비해 기증자 비율이 현저히 적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는데, 임씨는 그것을 보며 “사람은 죽으면 흙이 되는데, 죽을 때라도 한사람에게 도움이 돼야겠다”라고 결심했다고 한다. 

20살이 되던 해, 확고했던 결심만큼 가족들과는 논의하지 않고 장기기증희망등록자를 신청했다. 이후 신청한 사실을 알렸지만 주변과 가족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그들은 결정을 존중해준다면서도 같은 결정을 권유했을 때 긍정적인 답변을 피했다. 

임씨는 “장기기증 이후 사후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보도를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도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것 같았다”며 “최근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의 드라마를 통해 인식이 많이 바뀐 것 같다. 이런 좋은 사례들이 더 많이 공개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요즘 어느 과로 취업을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답을 찾은 것 같다”며 “장기기증을 결심했던 그때처럼 한 사람의 삶의 마지막 순간을 간호하는 호스피스 간호사가 돼야겠다”며 웃음 지었다.

취업준비생인 박모씨(29세·여)는 20대 마지막 목표를 장기기증희망등록자 신청으로 장식했다. 박씨는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한 친구가 최근 세상을 떠나면서 장기기증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장기기증을 해야겠다고 맘을 먹었다. 

하지만 가족 모두에게 얘기할 순 없었다. 언니에게 먼저 말을 했지만 ‘대우도 안 좋다는데 왜 했느냐’, ‘어머니가 좋아할 리 없다’ 등 걱정 어린 꾸중만 들었다. 결국 어머니에게는 말을 하지 못했다.  

박씨는 “여전히 장기기증과 관련된 부정적 기사들이 존재해 아예 걱정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다. 그래도 조금씩 법이 개선되는 만큼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한다”면서 “한 번 사는 인생 후회 없이 살고, 표현도 잘하는 삶을 살고 싶다. 장기 기증을 신청한 것도 이런 마음을 담고 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게 될 때 나로 인해 누군가 새 삶을 살게 된다면 정말 뜻 깊은 일이 아닐까. 주변에도 장기기증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고 전했다.

정부, 지속적 인식 개선 노력…기증자·유족 추모 및 예우사업 개정 속도

국내는 아직도 장기기증에 대한 오해와 부정적 인식, 까다로운 장기기증절차, 유족에 대한 예우 등으로 인해 장기기증자가 감소하는 추세다. 장기기증희망등록자는 늘었지만, 장기이식대기자에 비해 실질적 기증자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장기 등 이식대기자는 2021년 기준 4만1332명인데 반해, 장기기증자는 442명에 그친다.

특히 2017년 기증된 시신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다는 등 유족 예우에 대한 문제점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장기기증에 대한 대중의 불안감이 높아졌다. 앞선 사례처럼 가족 혹은 보호자가 반대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런 인식에서다. 

이에 정부도 기증자 예우에 대한 지침 필요성을 파악하고 법률 개정 및 지침 제작에 나섰다. 먼저 장기 및 조직 구득기관인 한국장기조직기증원과 협력기관인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에서는 기증자 및 유가족 예우에 대한 표준 가이드를 제작했다. 가이드에는 장제지원서비스, 장례절차 동행서비스, 유가족 정서 지지상담, 근조 화환 제공과 같은 정서적 지지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지난 11월29일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도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번 개정안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장기 등 기증자와 유족에 대한 추모 및 예우사업을 한국장기조직기증원에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즉, 기존에는 기관과 협약을 맺지 못한 병원의 장례식장을 이용할 경우 제대로된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지만, 이번 개정으로 어떤 병원에서 기증을 하던 지자체와 원활히 연결해 장례 전문인력과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한다. 이외에도 장기기증자와 장기이식자 간 서신 교환 등 교류활동 사업을 시행하는 등 예우 강화를 목표로 한다. 

복지부는 이와 관련해 국가가 위탁할 수 있는 사업의 범위 등 내용을 담은 시행령을 오는 12월 중순 발표할 계획이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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