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종의 한 고등학교의 교원평가 서술형 문항에 원색적인 모욕과 성희롱 발언 등을 남긴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인 가운데 교사 10명 중 3명이 비슷한 경험을 겪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8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교원평가 자유서술식 문항 피해사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6~7일 이어진 조사에서 응답자 6507명(남 12%·여 88%) 가운데 30.8%가 성희롱 등의 ‘직접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한 ‘동료 교사의 사례를 본 적이 있다’는 응답이 38.6%였다. 전체 교사의 69.4%가 직·간접적인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피해 경험이 없다’는 응답은 30.6%로 집계됐다.
이날 전교조는 교사들이 받은 교원평가 자율서술 답변 중 문제가 되는 내용들을 일부 공개했다.
학생 또는 학부모로 보이는 이들은 교사에게 “몸매 지린다” “쓰레기 아들 낳아라” “X페미” “XX 실제로 실습해달라” “지방대 출신이 운 좋게 선생이 됐다” “너무 못생겼다” 등 충격적인 성희롱 글과 모욕, 비하, 저주하는 글을 적었다.
이같은 피해를 경험해도 교사 대부분(98.7%)이 피해를 참고 넘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요구를 한 경우는 1%에 불과했고, 성고충심의위원회 개최 요구나 고소·고발 등 소송을 진행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교육부가 최근 내놓은 ‘필터링 강화’ 대책에 대해선 응답 교사 94.4%가 ‘효과가 없다’고 답했다. 효과가 있다고 응답한 교사는 5.6%에 불과했다.
교육부가 지난해부터 도입한 자유서술식 평가 필터링이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73.7%가 ‘전혀 효과가 없다’고 답했다.
실제 최근 세종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불거진 교원평가 사태에서 교육부의 필터링 시스템이 무력화된 바 있다. 교육부는 금칙어가 포함된 답변은 교사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자동 필터링하는 시스템을 적용했지만 학생들이 단어 사이 숫자 등을 끼워넣는 방식으로 악플을 달았다.
전교조는 “필터링을 강화해도 우회 단어를 사용해 피해갈 수 있고 걸러도 가리는 것에 불과해 교사를 우롱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교원평가가 교원의 전문성 신장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부정응답은 98.1%에 달했다. 교원평가를 폐지해야 한다는 응답도 98.1%였다. 교육부는 이번 세종시 교원평가 사태에서도 평가 시스템의 순기능을 강조한 바 있다. 2010년 도입 이래 교원 전문성 신장과 교육활동 만족도 향상에 기여해온 제도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 있는 교사는 공감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응답 교사 중 96.5%는 교사의 인권과 교육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교사들은 ‘익명성을 앞세운 막말과 점수 테러에 자괴감이 든다’ ‘연예인도 익명 악플 문제로 댓글 창 막아두는데 학생 악플에 무방비로 노출된 교사 인권은 어디 있나’ ‘교원 전문성 신장이 아닌 사기 저하만 가져오는 교원평가는 폐지해야’ 등 교원평가로 인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교육부는 필터링 시스템을 개선해 교원의 피해를 예방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교육부는 일련의 사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면서 “서술형 문항 필터링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개선해 이러한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교원의 전문성 신장 및 공교육 신뢰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교원평가는 교사들에게 합법적으로 성희롱과 인격모독을 할 수 있는 창구가 됐다”며 “(교육부는) 필터링 강화가 대책이라며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교육부의 발표를 교사들은 ‘성희롱도 인격모독도 그저 참고 견디라’는 메시지로 읽는다”며 “교사들은 국가가 교사를 절대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원평가는 교원의 전문성 신장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불필요한 업무를 늘려 행정력을 낭비하게 할 뿐 아니라 범죄를 부추기는 장이 되고 있다”며 교원평가 폐지를 촉구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