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 부정맥’ 앓는 청년, 폭등한 약값에 살길 막막

‘희귀 부정맥’ 앓는 청년, 폭등한 약값에 살길 막막

항부정맥제 퀴니딘, 공급 부족으로 약값 76배 증가
대체약 없어 복용 멈출 경우 사망 위험도
“국가 지원금 혹은 국내 생산 유도 필요”

기사승인 2022-12-14 06:01:03
13일 고대안암병원에서 만난 훤칠한 체격의 권진혁씨(29세). 희귀 부정맥을 앓고 있다고 무덤덤하게 밝혔던 권씨는 “일 구하기도 힘든데 약값 때문에 더 힘들어지네요”라고 털어놨다. 목소리만으로도 그 동안 힘든 과정을 거쳐오며 무뎌진 그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박선혜 기자

20대 한창 일할 나이, 제멋대로인 ‘심장병’에 일자리마저 구하기 어렵다. 약이 없으면 평범한 일상생활은 꿈도 꿀 수 없는데, 약을 유지하려니 생계가 힘겹다. 2주 동안 먹는 약값만 115만원. 살 길이 아득하다. 

13일 쿠키뉴스가 만난 권진혁씨(29세·남)는 18세 나이에 처음으로 심정지를 겪었다.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가 문득 눈을 뜬 권씨 앞에 낯선 병원 천장이 보였다. 4일 동안 혼수상태였지만 아무런 증상도 없었다. 찾아간 인근 병원도 원인을 모른다고 했다. 여러 검사를 했지만 ‘심근염’을 의심한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1년 뒤, 고등학교 졸업 후 술에 취해 들어온 권씨는 쓰러지듯 잠들었고 자신도 모르는 새 두 번째 심정지를 겪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대형병원으로 가서 진단받은 병명은 ‘부정맥’이었다. 결국 이식형 제세동기를 삽입하고  항부정맥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이 잘 맞지 않아 하루에 13번이나 쇼크를 겪기도 했다. 이식형 제세동기는 심장이 멈추면 자동으로 설정된 수치만큼의 전기적 충격을 가한다. 환자는 몸 속 제세동기가 작동할 때마다 심장이 떨어져나갈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 맞는 치료법을 찾을 때까지 수차례 약물과 기기를 바꿔가며 고통을 견뎌내야 했다. 9년 사이 총 8번의 심도자술과 3번의 제세동기 교체 수술, 2번의 체외막산소공급(ECMO) 기기를 달았다. 병원에서 살다시피 했던 시간들이었다.

그 과정 중에서 겨우 증상을 완화시켜준 약물이 ‘퀴니딘’이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던 이벤트(쇼크)가 퀴니딘을 복용하고는 2년 동안 단 세 번 밖에 나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일상을 되찾고, 심장병 때문에 갖기 힘들었던 직장도 들어갔다. 인생이 조금은 풀리나 싶었다. 

“퀴니딘이 공급 부족으로 내년부터는 약이 끊길 수도 있어요. 약값도 엄청나게 올랐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100알(1병)에 5만원이던 약이 380만원대까지 올랐다. 하루 2번 복용해야 하는데, 15일(30정) 동안 약값으로만 115만원어치씩 나가는 셈이다. 이제 겨우 일을 하게 됐는데, 약값에 번 돈을 모두를 부어도 힘든 상황이 돼버렸다.

권 씨는 “겨우 취직한 만큼 열심히 해서 부모님께 보탬이 되고 싶었는데, 약이 발목을 잡고 있다. 터무니없는 약값은 물론이고, 내년엔 공급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며 “내겐 창업해서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도 있다. 살아갈 의지가 있는 만큼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이 뒷받침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9년간 아들 곁을 내내 지켜오던 어머니도 절규를 토해냈다. 그의 어머니는 “집의 방문을 다 뜯어내고 매일 밤 내 아들이 살아있는지 확인했다. 쇼크로 인한 통증 때문에 부르르 떠는 손으로 나를 잡던 아들을 기억한다”며 “그런 아들에게 드디어 맞는 약을 찾았는데 이제는 그 약이 속을 썩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심장병이 있다고 취직도 안 되고, 장애지원 신청도 부적합하다고 한다. 이제 29살, 앞으로 살 날은 많은데 생계는 어렵고, 약값까지 올리면 애들보고 어떻게 살라는 건지 모르겠다”며 “살기 위해서 반드시 먹어야하는 약이다. 적어도 이런 약만은 나라에서 지원해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눈물 지었다. 

지난 11월11일 대한부정맥학회가 진행한 하트리듬의 날 기자간담회 전경. 이날 학회는 퀴니딘의 공급 부족 위험성을 알리고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시한 바 있다.

대체약 없는 부정맥 치료제 퀴니딘…“정부 지원없인 당장 해결 어렵다”

젊고 건강하던 20~40대가 갑자기 심장마비가 생겨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면 ‘유전성 부정맥’을 의심한다. 이 질환은 젊은 나이에서 생기는 희귀질환으로, 국내 급성 심장마비 사망 원인의 약 15%를 차지할 정도로 치명률이 높다.

부정맥 환자에게 유일한 치료제는 ‘퀴니딘 황산염(Quinidine, 이하 퀴니딘)’ 뿐이다. 하지만 퀴니딘은 오래전부터 수급에 어려움이 많았다. 약값이 워낙 싼 탓에 이윤이 나질 않자 전세계적으로 다수 제약사들이 퀴니딘 생산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최근 한 회사가 독점공급을 하게 되면서 공급, 가격 측면에 문제가 빚어졌다. 

먼저 공급 대비 수요가 높아지자 약값은 기존보다 76배가 뛰었고, 다량 구매가 가능했던 예전과 달리 환자가 필요한 만큼 처방을 받아 직접 한국희귀필수의약품센터에 신청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현재 센터 역시 퀴니딘 재고가 매우 부족한 상태로, 모두 소진된다면 다시 수입하기까지 최소 4주 이상이 필요하다. 하루라도 약을 먹지 않는다면 당장 생명이 위험한 부정맥 환자들에게는 이런 상황이 두려울 수 밖에 없다.

이에 대한부정맥학회에서는 의료 경제적인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 적용하는 재난적 보조 프로그램을 통해 환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복지부, 식약처에 적용 방안을 주문했다고 밝혔다. 또한 아시아권에서 제네릭으로 생산하는 곳이 있어 해당 품목의 국내 의약품 생산 품질 기준에 부합하는지 여부도 확인 중이다.

심재민 고대안암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퀴니딘을 복용하지 못할 경우 심실세동이 발생해 생명을 잃을 수 있다. 현재까지 퀴니딘만큼 효과적으로 부정맥을 억제할 수 있는 대체 약이 없다”며 “공급은 절대로 중단돼선 안 된다. 비용을 정부차원에서 보조해주는 것이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땐 국내 제약사에서 국가 보조를 받아 생산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진배 경희대병원 심장내과 교수(대한부정맥학회 정책이사) “몇 달 전부터 퀴니딘 공급 문제로 인해 희귀의약품센터와 정보 교환하며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센터에서 대만의 한 회사가 퀴니딘을 생산하고 있어 기존 가격으로 구매 가능한지 요청한 상황이다”라며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면 보건복지부 민원제기까지 생각하고 있다. 환자분들의 협조와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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