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돈 30만원만 빌려줬으면...연말이 더 추운 사람들 ①

단돈 30만원만 빌려줬으면...연말이 더 추운 사람들 ①

금리인상과 함께 앞으로 신용불량자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이들의 재기를
지원하는 국내 사회의 미비점을 살펴봤다.

기사승인 2022-12-29 13:00:02
쿠키뉴스DB

연말 한파 속에 단돈 30만원을 빌릴 곳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금융권은 물론 정부의 지원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이다. 이들은 ‘신용불량’이라는 낙인을 지우고 재기를 위해 발버둥 치지만 사회와 대중의 눈길은 싸늘하다. 특히 코로나19와 고금리 충격 속에 생존을 위한 이들의 목소리는 묻혀버리기 일쑤다.

쿠키뉴스가 만난 1973년생 이모씨는 자영업자인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는 30대 청년일 때 갚지 못 한 카드값으로 20년 넘게 신용 회복 중이다. 그는 2000년 초 카드 사태 당시 신용불량에 빠졌다. 은행이나 정부 모두 현재 그에게는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카드 대란이 발생했을 때 저도 신용불량에 빠졌어요. 그 당시 30대 후반으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카드로 필요한 돈을 빌려 장사를 확장했어요. 그때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인데 소상공인 지원 정책이라면서 돈을 지원해 줄 것처럼 말했죠”

“그래서 장사가 잘되면 번 돈으로 빚을 갚고, 안되면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아 빚을 갚을 생각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참 순진했던 것 같아요. 지원금을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고 장사를 했는데 완전히 박살이 났죠. 정부 지원도 없었어요”

30대 장사를 하다 실패한 그에게 새겨진 신용불량이라는 낙인은 이때부터 그의 인생을 뒤바꿔 놓았다. 그는 ‘파산’이라는 마지막 수단 대신 빚을 모두 갚아나가겠다는 선택을 내렸다. 몇 년만 고생하면 수천만원의 빚은 충분히 갚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때는 길어도 4~5년이면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을 걸로 생각했어요. 또 내 빚을 탕감 받는데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30대의 치기 같고, 후회되기도 해요”

“그런데 제가 신용이 정상일 때와 비정상일 때는 상황이 정말 달랐어요. 전에는 물건값이 부족하면 카드로 메울 수 있었는데 이제는 현금만 써야 하고, 현금은 항상 부족했죠. 여기에 애가 둘이라 애들까지 돌보다 보니 생활은 점점 어려워졌어요”

이씨는 스스로 빚을 갚아나가기 위해 이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빚을 갚다 보면 30~40만원씩 모자랄 때가 있어요. 돈은 부족하고 애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오면 진짜 누가 30만원만 빌려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정부에서도 자기들이 제시한 조건을 맞춰야만 돈을 빌려줘요, 신용 회복하는 중간에는 사실상 돈을 빌릴 때가 아예 없었어요”

“그러면 하다못해 택배 물류 일을 하러 갔죠. 천안에 가면 택배 물류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짐 싣고 내리는 일을 했어요. 논밭 한가운데에 있는 물류센터인데 너무 힘들어서 새벽에 도망가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래도 거기에서는 바로 현찰을 줘서 갔죠”

그는 긴 시간을 고생하며 당초 올해 빚을 모두 상환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고금리와 함께 찾아온 경기 둔화는 새로운 변수로 작용했다.

“지금은 온라인 홈페이지 제작을 중심으로 일을하고 있는데 코로나때 나름 영업이 잘 됐어요. 그래서 올해 남은 빚 500만원 정도를 다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금리가 올라가고 경기가 안 좋아 질 거라는 말이 나오면서 일이 뚝 끊겼어요. 아마 내년에 정리할 수 있겠죠”

청년 시절의 실패와 빚을 정리하는데 20년 넘는 기간을 소모한 그는 마지막으로 재기하기 위한 과정의 서러움을 다시 토로했다. 그러면서 오랜 시간 어려움 속에거도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워낸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정말 10만원, 20만원이 필요할 때 진짜 서러움이 많이 들었어요. 진짜 눈물이 막 날 정도로 서럽더라고요. 내가 정말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나 하는 생각도 들고,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라는 생각도 났어요. 저는 빚을 갚았지만 다른 사람이 물어본다면 빚을 끝까지 안고 가지 말라고 할 것 같아요. 버티려고 하면 더 힘들어진다고”

“사실 제일 먼저 애들을 챙기다 보니 더 일할 수도 있었는데 못한 것도 있어요. 그게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이제 초등학교 들어갔는데 건강한 모습 보면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용정보원에 따르면 국내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는 총 77만5485명(2021년, 6월말 기준)에 달한다. 더욱이 코로나대출 만기 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조치가 종료될 경우 앞으로 신용불량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 신용불량자들의 재기 지원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의 필요성이 커지는 시점이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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