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설 명절은 잘 보내셨는지요.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로 파란 하늘이 찾아왔던 설 명절이 지나고 다시 일상이 찾아왔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설 명절 기간 어느 한 인스타그램의 글 하나가 명절 기간 조용하던 금융권을 깨우게 됐다는 사실입니다. 그 내용이란 바로 ‘3만원권’이죠.
올해 초 가수 이적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지폐’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요즘 드는 생각인데 3만원권 지폐가 나오면 좋을 듯싶다. 만원권에서 오만원권은 점프의 폭이 너무 크다”며 “1, 3, 5, 10으로 올라가는 한국인 특유의 감각을 생각해보면, 3만원권 지폐는 필시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고 주장했죠. 해당 글은 약 3주가 지난 현재 2만여명의 ‘좋아요’를 받으며 꾸준히 관심을 모으게 됐습니다.
이 3만원권에 대한 담론은 설 명절 기간 정치권에서 응답하면서 급격히 커졌습니다. 지난 22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3만원권) 국회 결의안을 발의하겠다”며 적극 나섰기 때문입니다. 하 의원은 22일 페이스북에 “세뱃돈은 우리 국민 모두가 주고받는,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전통문화”라며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한정된 사안이 아니다. 1만원 세뱃돈은 좀 적고, 5만원은 너무 부담되는 국민들이 대다수일 것이다. 3만원권 필요성은 국민 모두에 해당하고 공감 받는 문제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미국 달러도 10, 20, 50 단위가 있고 유럽의 유로도 그렇다”며 “한국은 축의금, 부조금 단위가 1, 3, 5로 커지기 때문에 2만원권보다는 3만원권이 적합할 것 같다”고 주장했죠.
그러면서 “3만원권 발행이 조속히 될 수 있도록 국회 논의를 추진해 보겠다”면서 “연휴 지나면 바로 3만원권 발행 촉구 국회 결의안을 발의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3만원권 발행이 이뤄지려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의결과 기획재정부 승인을 거쳐야 합니다. 이후 한국은행이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는 구조죠.
하지만 3만원권을 우리가 사용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을 듯 합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화폐 사용 만족도 조사 결과 2, 3만원권 신규 발행에 대한 수요는 극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한은은 3년마다 같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실제 여론이 3만원권에 대한 수요가 높지 않은 만큼 진지하게 검토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신권은 어떻게 발행되는 것일까요. 가장 최근에 도입된 5만원권은 ‘물가 상승’이 가장 큰 도입 배경이라고 합니다. 한국은행은 5만원권 도입 취지에 대해 “만원권 발행 후 물가는 12배, 국민소득은 150배 상승했는데 최고액권 만원 유지로 경제 주체들이 많은 불편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죠.
이후 한국은행은 2007년 최고액권인 10만원권과 함께 우리나라 화폐 체계에 맞는 5만원권 발행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는데요, 이후 2009년 5만원권 인물로 신사임당이 선정되고 최초로 발행이 시작됐습니다.
5만원권과 함께 도입하려 했던 10만원권 발행은 무산됐습니다. 당시 정부가 경제 여건상 발행이 시급하지 않다는 점, 물가 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죠. 5만원권의 유통 경과와 파급 효과를 지켜보면서 발행을 다시 논의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재까지도 10만원권 도입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5만원권의 도입은 한국의 ‘중심권종’을 바꿨습니다. 한은에 따르면 2017년 이후 5만원권은 1만원권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수표의 존재감도 지웠고요. 앞서 3만원권 도입의 이유로 꼽힌 ‘세뱃돈’이나 축의금 단위도 올리게 됐습니다.
다만 ‘지하경제’를 키운다는 우려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습니다. 공급한 돈이 한은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죠. 한은에 따르면 지난 2021년 기준 90~100% 환수율을 보이는 1000원·1만원권과 달리, 5만원권은 환수율이 17.4%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어찌됐건 우울한 경제전망만 나오던 금융권에서 3만원권과 같은 재미있고 금융소비자에게 직접적으로 체감될 이슈가 나온 것은 오랜만에 있는 일입니다. 정치권에서 이런 재미있고 유용한 금융권 이슈를 끌어올려 금융소비자들에게 이로운 영향을 조금 더 많이 주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