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양시의회에서 지방의원 정당공천제를 다시 본다

[시론] 고양시의회에서 지방의원 정당공천제를 다시 본다

지방의회 무용론 속에서 폐단 많은 제도라면 폐지에 나서야
정당과 국회의원의 뜨거운 감자이지만 대승적 차원 결단 필요

기사승인 2023-01-27 14:24:43

경기도 고양특례시의회를 통해 한국 선거제도의 해묵은 숙제인 지방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론을 다시금 생각한다, 고양시의회의 최근 행태를 지켜보면서 지방의원 정당공천제의 폐단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지방의회 무용론(無用論)이 비등한 상황에서 지방의회 자체를 없애는 게 최선이지만 그게 정 어렵다면 차선으로 정당공천제만이라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고양시의회는 새해 첫 임시회를 열어 고양시의 2023년 본예산 심의를 하면서 볼썽사나운 상황을 연출했다. 예산결산위원회 회의 도중 국민의힘과 민주당이 티격태격하다 국민의힘 소속 예결위원장이 돌연 사임하고 자리를 뜨자 민주당 주도로 새로운 위원장을 뽑아 예산안을 전격 의결했다.

지난 20일 열린 임시회 본회의에서 최종 확정된 예산안 내용도 가관이다. 고양시 역점사업 및 업무추진비는 대부분 삭감하는 대신 시의회 의장단의 업무추진비와 시의원 해외연수 출장비는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얼른 봐도 이동환 시장을 비롯한 집행부에 대한 반감과 불만을 잔뜩 담은 민주당의 ‘역작(力作)’이다.

이에 대한 고양시의 반발은 당연지사였다. 이동환 시장은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기자회견을 열어 “시의회가 일방적이고 폭력적으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원칙과 상식에 어긋나는 의결이며 명백하게 시민과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분개했다.

고양시의회는 직전에도 시민들의 애를 태우며 빈축을 산 적이 있다. 2022년 말까지 새해 예산안을 의결하지 않으면서 법정처리기한을 넘겼던 일이다. 그때도 시의회 민주당 측은 고양시 비서실장의 언행을 문제 삼아 본회의 참석을 거부하며 국민의힘과 기싸움을 벌였다.

이 대목에서 이런저런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기초의회에 정당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소속 정당이 의정활동에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것이다. 차라리 그들에게 소속 정당이 없다면 이런 추태가 줄거나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의문까지 든다.

지방의원은 자기 지역에서 주민들의 복리를 증진시키고 살림살이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 일하는 생활정치인이다. 그런 지방의원에게 정치권력의 획득이나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정당이 소용없다는 사실은 불문가지다.

지난해 연말 고양시청 앞에 내걸린 시의회의 예산안 심의를 촉구하는 현수막

그래도 이까지는 봐줄 만하다. 지방의원의 정당공천으로 인한 부작용이 만만찮다는 것이다. 지방을 중앙정치권에 예속시켜 지방자치를 저해하고, 편가르기 선거로 지역사회의 분열을 조장시키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방의원의 자질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사실이다.

유력 정당의 공천이 당선으로 연결되는 ‘묻지마 투표’의 선거제도에서는 필연적으로 자격미달 혹은 자질부족의 의원들이 숱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자는 민선 8기 지방의회 시작 즈음 ‘지방의원 아무나 한다’(쿠키뉴스 2018년 7월 1일자)는 제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유력 정당 공천만 받으면, 지역위원장 비위만 잘 맞추면 누구나 지방의원을 할 수 있는 구조에 대해 썼다.

이것저것 따질 필요도 없다. 세간에서는 지방의원을 일컬어 지역위원장의 ‘심복’ ‘심부름꾼’이라고 한다. 심지어 공천을 두고 이뤄지는 둘 사이의 ‘갑을(甲乙) 관계’를 빗대어 ‘졸개’ ‘따까리’로 부르기도 한다.

하기야 ‘공천=당선’이라는 확고한 등식 앞에서 지방의원 지망자라면 그런 호칭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해 6·13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울의 한 초선 구의원은 “아무리 공천을 좌우한다고 하지만 위원장 수족 노릇을 하는 것도 이젠 지겹다”면서 재선을 포기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해 지방선거 때 고양시에서도 시의원 공천과 관련한 잡음이 적지 않았다. 한 지역에서는 당원들이 부당한 공천이라며 격렬하게 저항하기도 했다. 한 시의원은 비교적 훌륭한 의정활동을 인정받고도 지역위원장에 밉보여 공천에서 탈락, 주위 사람들의 아쉬움을 샀다.

어쨌든 지방의회 정당공천제 폐지의 당위성에 토를 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광역의회는 보류하고 일단 기초의회만이라도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건 정설처럼 됐다. 지난 2009년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가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86%가 기초의회 정당공천제 폐지에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어느 설문조사에서는 기초의원들의 약 70%가 정당공천제 폐지를 지지했다. 정치권에서도 어느 정도 합의는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9대 국회의 경우 정당공천제 폐지 법안을 6차례나 냈다.

중앙정당이나 국회의원 입장에서 볼 때 지방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는 뜨거운 감자다. 자당을 위해 표를 끌어모을 수 있는 제도를 포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위해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제도를 외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지방자치의 발전과 정착을 위해선 대승적인 차원에서 결단을 해야 한다.

이제 다시 고양시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이 시장은 시의회 민주당 중심의 집행부 발목잡기 예산안 의결을 수용하지 못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자신에게 건너온 공을 다시 시의회에 넘기려는 모양새다.

이에 반응할 고양시의회의 귀추가 주목된다. 시의회는 2023년 예산안이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의결됐는지 살펴볼 기회를 맞았다. 34명의 시의원은 저마다 소속 정당을 떠나서 오직 고양시와 시민들 입장에서 숙고해볼 기회를 맞았다. 시민들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고양=정수익 기자 sagu@kukinews.com
정수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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