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채원 의장 “가치투자 철학, 행동주의로 극대화” [행동주의 펀드 전성시대③]

이채원 의장 “가치투자 철학, 행동주의로 극대화” [행동주의 펀드 전성시대③]

기사승인 2023-02-04 13:01:02
<편집자주> 한때 ‘먹튀’ ‘기업 사냥꾼’이라는 오명을 들었던 행동주의 펀드가 최근 자본시장 관행을 개선하는 ‘다크호스’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이후 개인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기존 상장 기업들의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서다. 

실제 국내 주식시장은 주주가치 제고 보다는 기존 지배주주 이익을 대변해 왔다는 비판을 꾸준히 받아왔다. 국내 토종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이러한 반작용이 일정부분 영향을 미쳤다. 물론 한계도 명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배주주 중심인 국내 상장기업의 구조적 한계, 높은 상속세, 상법개정안 없이는 주주가치 환원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가치 제고 보다는 주가 상승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행동주의 펀드를 통해 국내 자본시장의 한계, 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분석해 다뤄보도록 한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대표

이채원 의장 “가치투자 철학, 행동주의로 시너지” [행동주의 펀드 전성시대③]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시대적 화두로 급부상하고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주주행동주의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내 기업도 이 같은 사회적 변화에 발맞춰 ESG 경영을 도입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전통적인 가치투자와 ESG가 융합한 새로운 행동주의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성장성은 높지만 저평가된 회사에 투자해 가치를 높이는 방식이다. 기존의 적대적 방식의 투자가 아닌 기업과 함께 하는 동반자 역할을 주 목적으로 한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우호적 행동주의’를 표방하는 투자를 표방하고 있다. 그는 국내 가치투자 1세대 대가로 유명한 펀드 매니저로, ‘이채원 키즈’라는 수많은 가치투자 매니저들을 양성하기도 했다. 강대권 라이프자산운용 현 대표(전(前) 유경PSG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 등이 그의 투자 철학을 물려받은 가치투자 2세대다. 

그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가치투자 펀드인 ‘밸류 이채원 펀드’를 개발 운용했고, 2000년부터 2006년까지 6년 간 무려 435%의 수익률을 달성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간 성장주 중심의 기업들이 시장에 주목을 받으면서 가치투자는 시장에서 외면받기도 했다. 

이에 이 의장은 기존의 가치투자에서 보다 진화한 방식을 택했다. 저평가된 성장 종목을 투자해서 마냥 기다리는 것이 아닌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주주가치를 끌어올리는 전략으로 선회했다. 

이 같은 시도는 현재 성공적이다. 한국예탁결제원과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이 운용하는 ‘라이프한국기업ESG향상1호’ 사모펀드는 지난해 사모펀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익률(0.9%)을 기록했다. 국내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 주가가 1년 새 마이너스(-) 15.69%을 감안하면 안정적인 이익을 낸 것이다. 쿠키뉴스는 이 의장과 인터뷰를 통해 최근 행동주의 펀드의 동향, 한국 자본시장의 개선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시대적 변화, 행동주의 펀드 호응 이끌다”  

과거 행동주의 펀드는 ‘먹튀’ 논란 혹은 ‘적대적 인수합병’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최근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주주 행동주의는 호응을 얻고 있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우선 국내 주식시장이 과거 보다 성숙해졌고, 최근 ESG 경영이 사회적 흐름으로 대두되면서 기업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동안 기피해 왔던 기업의 내부 문제에 대해서도 인식이 달라지고 있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행동주의 사모펀드라고 하면 칼 아이칸, 엘리엇매니지먼트 같은 외국계가 주류였으나 최근 토종 행동주의(국내 운용사)가 자본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면서 먹튀 논란은 해소됐고, 개인 투자자의 신뢰도 얻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21년 법 개정으로 감사위원 분리 선출이 재도입되면서 행동주의 펀드 활동에 힘이 실렸다. 이 의장은 “과거에는 행동주의 펀드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장부 열람이나 감사선임 정도로 한정됐다. 하지만 지난 2021년 법 개정으로 ‘3%룰’이라는 감사위원 분리 선출이 가능해졌다. 이는 오는 3월 주주총회에 본격적으로 적용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의 입장도 변화한 것”이라고 말했다.

‘3%룰’로 불리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는 최대주주의 의결권이 3%로 제한되는 것이다. 개별 주주가 아무리 많은 지분율을 소유한다고 해도 감사위원 선임 시에는 의결권 지분율이 3%에 불과하다. ‘3% 룰’을 적용하면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일부 기업에서는 표 대결이 치열해질 수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여전…주주 이익 위한 제도적 장치 도입해야”

한국 자본시장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으나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한다. 주주가치 보다는 지배주주(오너) 이익에 편중된 기업들이 많아서다. 이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본질적 원인이라고 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국내에 본사를 둔 기업이 실제 가치에 비해 주가가 저평가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채원 의장은 오너 일가의 이익 편취, 상속 문제 등을 개선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가 도입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의장은 “공정거래법이 강화되면서 오너 일가들의 이익을 위한 계열사 일감몰아주기나 비상장 자회사를 활용한 자금 편취는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결국 상장기업 오너들의 돌파구는 증여를 하거나 대출(상속세 납부)을 하는 방식 밖에 없다. 문제는 주가가 쌀 경우가 아니라면 소액주주의 이해관계와 상충한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의장은 지배주주와 일반주주들의 비례적 이익을 위해 △대주주에 대한 높은 상속세 부과 완화 △상법 382조 3항 개정안 도입 △인수합병 시 시가합병배정이 아닌 공정가로 합병 적용 △의무공개매수제도 강화 등이 도입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재 상법 382조 3항 ‘이사회 충실의무’에서 ‘이사는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를 바꿔 말하면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주더라도 회사의 이익을 위한 것이면 법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채원 의장은 “현재 상법 382조 3항에 명시된 내용을 ‘회사와 주주를 위해 일한다’라고 조항을 바꾸면 주주의 비례적 이익 보호가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서 M&A(인수합병)을 추진할 때에도 시가합병배정이 아닌 공정가로 합병해야 한다. 시가 합병의 경우 대주주에게 유리하게 합병비율을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회계법인 2곳에 의뢰해 공정가치로 합병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주주의 경영권 프리미엄 이익의 독점을 줄이기 위한 ‘의무공개매수제도’ 역시 기존 50%가 아닌 (경영권 프리미엄이 포함되지 않은 시가) 100%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무공개매수제도는 M&A 목적으로 주식을 사들일 때 일정 비율 이상의 매수를 의무화하는 제도다. 금융위원회는 내년부터 상장사 주식을 25% 이상 보유한 최대주주가 될 때 잔여 주주를 대상으로 공개매수의무를 부과하기로 했다. 경영권 변경 지분을 포함해 총 50%+1주 이상을 지배주주 지분 매수 가격과 동일한 가격으로 사야 한다. 반면 미국과 유럽이 적용한 의무공개매수제도는 경영권 프리미엄이 포함되지 않은 시가 100%를 적용하고 있다. 

그는 국내 기업 투자에서 지주사와 정부 지출과 관련된 인프라 기업 투자를 추천했다. 이 의장은 “지주회사는 가치 대비 저평가된 것도 있고,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가 일치한다고 본다. 회장님의 가장 소중한 주식이기에 기업가치가 피해 볼 이유는 없다”고 조언했다. 이어 “최근 경기 상황을 비춰봤을 때 소비재 보다는 인프라 관련주에 관심 가져 볼 필요가 있다”며 “정부도 올해 상반기에만 예산의 65%를 인프라에 집행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유수환 기자 shwan9@kukinews.com
유수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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