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익’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근육질 남성 두 명이 경기장으로 들어선다. 주인공은 ‘사랑이 아빠’로 유명한 이종 격투기 선수 추성훈과 후배 선수이자 ‘소방관 파이터’인 신동국. 육중한 두 신체가 둔탁한 파열음을 내며 힘 대결에 나선다. 지켜보는 이들은 “짐승 대 짐승의 격투” “멋있다” “연장전 갑시다”라며 마음을 졸인다. 승부가 갈라지고, 패자가 존경을 표하며 절을 하자 승자도 맞절한다. 지난 1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피지컬: 100’ 4화 속 한 장면이다.
최강 신체를 가졌다고 자부하는 운동인 100명의 서바이벌 대결을 담은 ‘피지컬: 100’의 인기가 뜨겁다. 7일 넷플릭스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은 공개 이후 넷플릭스 비영어권 시리즈 7위에 올랐다. 한국, 캐나다, 영국, 싱가포르, 홍콩 등 총 33개국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쇼 비영어 부문에도 이름을 올렸다. 세계 스타 그룹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도 온라인 생방송에서 ‘피지컬: 100’을 소개했을 정도다. 프로그램을 만든 이는 MBC 교양국 소속 장호기 PD. 그는 2021년 10월 넷플릭스 쪽에 기획안을 보내 ‘피지컬: 100’ 제작을 성사시켰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오가고 싶었습니다.” 이날 서울 명동1가 한 라운지에서 만난 장 PD는 이렇게 말했다. 특공대 출신인 장 PD는 피트니스 센터에서 ‘베스트 보디’(Best Body) 우승자 명단을 보다가 ‘피지컬: 100’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는 “각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몸을 가진 분들이 모여 다양한 게임을 하면서 완벽한 피지컬(신체)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담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최종 우승자는 상금 3억원을 손에 넣는다. 탈락자는 자기 몸을 본뜬 조각상을 부순 뒤 현장을 떠나야 한다. “탈락이 곧 죽음인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시청자에게 통렬한 자극을 주려면, 참가자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 넣은 장치다.
출연진 면면이 화려하다. 추성훈을 비롯해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윤성빈, ‘도마 황제’ 양학선, 특수부대 출신 유튜버 에이전트H 등 운동에 도가 튼 이들이 모였다. 장 PD는 “후보 1000명에서 추리고 추려 100명을 선발했다”면서 “한눈에도 다양한 사람들을 섭외하려고 했다. 키가 2m를 넘는 사람, 150㎝ 정도인 사람, 몸무게가 130㎏인 사람 등 다양한 신체를 대표하는 분들을 모시고 싶었다”고 말했다. 직업도 다채롭다. 운동선수는 물론, 농부, 댄서, 치어리더, 산악구조대원 등 몸 깨나 쓴다는 사람들을 한 데 불렀다.
장 PD는 ‘피지컬: 100’을 연출하면서 “몸에 관한 편견이 깨졌다”고 했다. “‘여성의 몸은 이럴 것이다’ ‘특공대원의 몸은 이럴 것이다’ 같은 편견이 모두 사라졌어요.” 사람의 몸이 얼마나 가지각색으로 강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고도 했다. 실제 ‘피지컬: 100’은 근력뿐만 아니라 순발력, 지구력, 균형감각 등 신체가 가진 다양한 힘을 조명한다. 장 PD는 “처음엔 우승하겠다고 포부를 밝힌 출연자들도 ‘세상엔 이런 몸도 있다’ ‘덩치가 커도 날렵할 수 있다’ ‘마른 몸도 강할 수 있다’ 등을 보여주겠다고 열정을 불태웠다”면서 “제작진 역시 세상엔 다양한 신체가 있고, 완벽한 신체라는 개념 또한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만 논란도 있었다. 남성 격투기 선수 박형근이 여성 보디빌딩 선수 춘리를 몸싸움 상대로 골라 온라인에서 도마 위에 올랐다. 춘리는 방송 이후 비방과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다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장 PD는 “프로그램을 떠나 젠더 갈등을 부추기고 악성 댓글을 다는 일은 문제”라며 “춘리를 향한 비난도 멈춰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출연자의 부상을 막기 위한 경기 규칙이 필요하다는 지적에는 “방송에 나온 것 이상으로 세세한 규칙에 따라 경기를 진행하고 있다. 심판도 여러 명 둬서 반칙이 벌어지면 경기를 일시 중단한다”고 설명했다. 방송은 9부작으로 매주 화요일 오후 5시 두 편씩 공개된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