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을 ‘명예 당대표’로 추대한다는 보도를 놓고 여권 내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정진석 위원장은 15일 오전 국회에서 외교통일위원회에 참석하는 길에 취재진을 만나 “명예 당대표 얘긴 처음 듣는다”면서도 “매주 국무총리와 대통령실 비서실장·정무수석, 당 비대위원장·원내대표가 만나 고위 당정회의를 하는 이유는 능률과 효율을 높이기 위해 책임진 여권으로서 충실히 일을 다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행정부와 입법부라는 게 견제와 균형의 관계라고 해서 집권여당과 대통령실이 분리되는 게 옳다고(만은) 볼 수 없다”며 “우리는 늘 같은 책임을 지고 같은 목적을 향해서 가는, 같은 배에 탄 우리 일원”이라고 강조했다.
친윤(친윤석열) 인사로 꼽히는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도 윤 대통령의 ‘명예 당대표’ 추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내 공부모임 ‘국민공감’ 강연 직후 기자들과 만나 “대선 때 대선 후보와 당권을 가진 당 대표가 분리돼야 한다는 취지로 ‘당정 분리론’이 나왔던 것이지, 집권 여당이 대통령과 다른 목소리를 내면 집권당이라 말할 수가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최근 장제원 의원 등 친윤 핵심 인사들이 강조하는 ‘당정일체론’에 힘을 싣기 위한 취지로 보인다.
이 의원은 “선거 당시에 (당정 융합을) 국민들께 약속했다. 그것은 후보 개인의 약속이기도 하지만 당의 공적 약속”이라며 “그런 공약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대통령과 우리 당이 같은 방향을 보고 나갈 수 있도록 함께 소통하자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겠다”고 부연했다.
반면 주호영 원내대표는 “대통령과 당이 어떤 관계를 맺을지는 이제 새 지도부가 들어서면 당원의 뜻을 모아 결정할 일”이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주 원내대표는 당정 관계에 대해 거듭 의견을 묻는 취재진에게 “개별적 의견을 얘기하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도 “당정 관계가 협력 관계기도 하고 건강한 긴장 관계도 유지해야 하지만 너무 일체가 돼선 건강한 비판 기능도 없어질 수 있다, 모든 것은 중도가 필요하다”고 봤다.
비윤(非윤석열)을 자처한 이준석계에서는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준석 국민의힘 전 당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윤 대통령을 겨냥 “dictator perpetuo(로마 공화정의 ‘종신 독재관’)보다는 princeps(수장, 제1인자 등을 지칭한 라틴어)를 지향해야 할 텐데”라고 저격했다.
천하람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는 이날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명예 당대표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이라고 하는 것은 대통령보다 스펙트럼이 오히려 넓어야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입법부의 역할은 행정부와 협력하는 것도 있지만 감시하고 견제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라며 “여당을 또 ‘용산 출장소’로 만들 건가”라고 질타했다.
이준석 지도부 청년최고위원을 지낸 김용태 최고위원 후보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누가 대통령실과 싸우자고 했나. 집권여당이 정부와 건설적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문재인 정부 때 민주당처럼 거수기 역할을 하지 말자는 게 잘못된 건가”라며 “‘당정일체’를 외치는 분들의 속내는 궁극적으로 ‘대통령의 총선 공천 개입’을 바라는 것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대통령과 집권여당 대표 겸직의 역사는 故(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2000년 1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맡은 것이 마지막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임기를 9개월 여 남기고 2002년 5월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했다. 이후 역대 대통령들은 당원 신분은 유지했지만 명시적으로 당 대표나 당 총재와는 일정 거리를 두며 당의 독립적 운영을 보장했다. 과거 사례를 감안했을 때, 오는 3월 당 대표 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일각에서 거론되는 대통령의 ‘명예대표’ 겸직 구상에 대한 논란은 더욱 확산할 전망이다.
앞서 한 언론에 따르면 최근 윤 대통령은 사석에서 책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당정 융합’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에 당내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을 명예 당 대표로 추대하는 방안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이 명예직을 겸임할 수 있고 당이 국정운영을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는 당헌에 따라 명예 당 대표를 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