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세대, 오늘도 ‘약게팅’ 도전합니다 [지금 인기는 약과]

MZ세대, 오늘도 ‘약게팅’ 도전합니다 [지금 인기는 약과]

기사승인 2023-02-26 06:05:02
한 시민이 카페에서 약과를 고르고 있는 모습. 오늘 한과

# 2월22일 오전 10시. 문을 열기도 전에 경기도 한 카페 앞에 사람들이 줄을 늘어섰다. 오픈 후 줄은 더 길어졌다. 40분이 지나자, 카페 직원이 준비된 제품을 모두 소진했다고 안내한다. 마지막까지 줄 선 사람들은 입장도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 2월24일 오후 4시57분. 컴퓨터 앞에 앉은 A씨 표정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그의 손가락이 4시59분59초부터 바빠졌다. 이른바 ‘광클’(빛의 속도로 클릭하는 것)을 시작한 것. 1분 동안 광클했지만, 결국 화면엔 ‘품절’ 표시가 떴다.

약과 열풍이다. 지난해 잠시 반짝하고 말 것 같던 약과의 인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명절에만 먹던 과거와 달리, 약과는 이제 ‘약게팅(약과+티케팅)’에 성공해야 먹을 수 있는 인기 간식이 됐다.

명절에 먹던 약과 인기, 이 정도라고?

요즘 인기 약과를 사려면 줄부터 서야 한다. 요즘 경기 포천시, 의정부시, 춘천시 등에 위치한 유명 약과 브랜드 판매점에 가면, 오픈 전부터 약과를 사러 온 구매자들이 줄지어 기다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한 약과 판매점에선 약과 150개와 파지 400개가 오픈 30분 만에 ‘완판’됐다. 1인당 2개 제품만 구매할 수 있는 방침 때문에 이날 약과 구매에 성공한 사람은 75명에 불과했다.

온라인에선 치열한 ‘약게팅’이 펼쳐진다. 24일 오후 5시 직접 약과 티케팅에 도전했지만, 1분 만에 품절돼 구매할 수 없었다. 10분 동안 새로고침을 반복해도 여전히 품절이었다. 20분 후 “금일 판매가 종료됐다”는 안내 글이 올라왔다. 일주일에 세 번 열리는 이 판매점의 온라인 판매에 “2주 동안 매번 도전했지만 실패했다”는 후일담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중고거래를 통해 웃돈을 주고 유명 브랜드 약과를 사기도 한다. 24일 오후 한 중고거래 카페에 ‘○○약과’를 검색하자, 92건의 게시글이 나왔다. 매장에서 5500원에 판매하는 파지 약과는 1만5000원~5만5000원에 중고거래 가격대가 형성됐다.

약과의 인기는 온라인 쇼핑몰과 편의점, 마트로 이어졌다. 이커머스 G마켓은 지난달 1일~25일 약과 판매량이 전년 대비 200% 급증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BGF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CU는 147%, GS리테일이 운영하는 GS25는 181% 약과 매출이 올랐다. 이마트24 자체브랜드(PB) ‘아임e 이천쌀로 만든 미니약과’는 지난달 매출이 45% 증가했다.

식품업계도 약과 공략에 나섰다. 알코리아가 운영하는 던킨은 ‘허니 글레이즈드 약과’를 출시했다. 12일간 한정 출시했으나 무려 20만개를 판매한 뒤 상시 판매로 전환했다. 노티드도 궁중 병과 브랜드 ‘만나당’과 협업해 ‘약과 스콘’을 선보였다.

‘오늘 한과’에서 판매 중인 약과.   사진=임형택 기자

MZ세대, ‘할매니얼’에 빠지다

약과 인기의 중심에는 1020세대가 있다. 약과를 좋아한다는 조은영(21)씨는 “유명 유튜버의 ‘약과 먹방’을 보고 호기심에 약게팅에 도전했다”며 “유명한 브랜드는 너무 빨리 품절돼 못 구한다. 살 수 있는 곳에서 약과를 주문해서 먹는다”고 말했다. 조씨 말처럼 유튜버들도 약과를 주목하고 있다. 약과 ‘꿀조합’을 추천하는 한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 25만을 기록 중이다. 약과와 생크림, 아이스크림을 곁들여 먹는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 52만을 넘겼다.

MZ세대에게 약과는 단순 유행을 넘어 일상 속 간식이 됐다. 조씨는 “원래 약과는 명절에만 먹었다. 하지만 이제 일상 속 디저트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며 “일반 과자와 다른 맛과 식감 때문에 인기가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전에는 친구들과 과자 얘기를 했다면, 이제는 약과 얘기를 한다”며 “서로 구매 방법을 알려주고 어떤 곳의 약과가 맛있는지 친구들과 공유하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약과의 인기엔 MZ세대가 뉴트로에 빠진 영향도 크다. 최근 MZ세대들은 이전 세대 문화를 새롭게 해석해 즐긴다. ‘할매니얼(할머니와 밀레니얼의 합성어)’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다. 주로 중장년층이 선호한다고 알려진 전통음식도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조유경(24)씨는 “원래도 약과를 좋아했지만, 약과가 유행하며 쉽게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이어 “유명 약과 약게팅에도 도전했다. 요즘엔 중고거래를 통해 종종 약과를 사 먹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늘 한과’에서 판매 중인 약과.   사진=임형택 기자

약과가 쏘아 올린 공… ‘전통 간식’ 수요↑

약과를 전문으로 하는 카페도 생겼다. 지난 23일 오후 방문한 서울 등촌동 ‘오늘 한과’에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약과를 구매했다. 이날 ‘한과 구디백(한과 간식 선물 세트)’ 4개 구매한 배모(27)씨는 “지나가다 한과 카페가 있길래 들렀다”며 “매장에서 낱개로 판매하는 약과를 먹었더니 맛있어서 선물용으로 추가 구매했다”고 밝혔다.

이날 세 번째 방문이라는 백모(50대)씨는 “평소 한과를 좋아하지만, 마트나 시장에선 대량으로 팔아서 평소 자주 먹지 못했다. 한과 카페는 낱개로 팔아서 종종 구매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백씨는 “오늘 1만2000원 정도 구매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3개월 전 ‘오늘 한과’ 카페를 오픈한 김혜지 브랜드포럼 이사는 “한과, 약과, 유과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해 카페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오픈을 준비할 때만 해도 약과를 좋아하는 MZ세대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며 “가게를 오픈할 때는 어르신들이 편히 방문하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밝혔다. 결과는 처음 예상과 달랐다. 김 이사는 “오픈 한 달 만에 주 방문 연령대가 3040세대, 지금은 2030대로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약과의 인기는 전통 간식으로 확장되는 분위기다. ‘오늘 한과’ 측은 약과 못지않게 유과도 많이 판매된다고 했다. 전통 간식에는 유과 외에도 한과, 오란다, 쌀강정 등이 있다. 김 이사는 “많이 파는 날은 하루에 약과와 유과를 합쳐 500개 정도 판매한다”고 밝혔다.

조유정 기자 youjung@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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