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고양시 시청사 이전 딜레마 어찌할꼬… 해법은 ‘절차’다

[시론] 고양시 시청사 이전 딜레마 어찌할꼬… 해법은 ‘절차’다

기사승인 2023-02-27 14:07:53
고양시 덕양구 주민들이 지난 7일 고양시청 앞에서 시청사 백석동 이전에 반대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미국 애틀랜타한인회가 한인회관 입구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하려다 보류한 적이 있다. 민주사회에서 꼭 필요한 의사결정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한인동포 전체의 자산인 한인회관에 상징적 조형물을 세우면서 한인사회의 의견을 묻지 않은 절차상 잘못을 인정했던 것이다.

이처럼 민주주의에서는 절차를 중요시한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용어가 널리 통용되고 있다. 그런 절차의 규범으로는 흔히 토론, 관용, 다수결, 비판 및 타협 등이 거론된다.

이 절차의 중요성은 행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행정상 절차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 행정의 결과는 바로 주민들의 권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1996년 행정절차법을 제정해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다.

칼럼을 시작하면서 뜬금없이 절차에 대해서 거론하냐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요즘 경기도 고양특례시의 혼란스러운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꾸만 절차의 중요성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서다.

고양시가 시청사 이전 문제로 전에 없이 혼란스럽다. 새로 옮겨갈 시청사 행선지를 놓고 시민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백석동이냐 주교동이냐 우열을 따지면서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시내 곳곳에 현수막이 내걸리고 시위나 집회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이해관계가 걸린 이들은 서로 편을 갈라 치열하게 갈등하고 있기도 하다. 지역에서 단일 문제로 언제 이리 심하게 시민들이 분열하고 다퉜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단언컨대 고양시는 지금 딜레마에 빠졌다.

이쯤 되면 뭔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혼란을 수습하기 위한 방편을 모색해야 한다. 이 상태로 계속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한정 시민사회의 에너지를 소모할 수 없지 않는가. 잘못되면 인구 110만을 바라보는 대도시가 만신창이로 전락하지 않을지 걱정까지 든다.

그런데 어떤가.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다. 문제 해결의 주체인 고양시도 손을 놓고 있다. 혼란이 시작된 지 2개월여 흘렀건만 마냥 방치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서글픈 현실이다.

이제는 나서야 한다. 문제를 풀 수 있는 단초를 찾아야 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워낙에 많은 시민들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복잡다단한 사안이다. 하지만 아무리 복잡한 실타래라도 실마리만 잘 찾으면 풀어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앞에 언급된 절차의 중요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지금의 혼란상과 절차 사이의 인과관계를 따져보자는 것이다. 시청사 이전 결정에 절차의 정당성이 확보됐는가를 짚어보자는 것이다.

이동환 시장이 고양시청 신청사로 발표한 백석동 요진와이시티 업무빌딩 

고양시 혼란상은 연초에 나온 이동환 시장의 깜짝 발표에서 비롯됐다. 요진건설로부터 기부채납 받은 백석동 요진와이시티 업무빌딩으로 시청을 이전하겠다는 내용이다. 전임 시장 때 만들어진 주교동 신청사 건축계획을 완전히 뒤엎은 그 발표는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누군가의 말마따나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실무담당 공무원들조차 사전에 인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 시장 스스로 “여건상 미리 알려드리지 못한 점 양해 바란다”면서 절차상 흠결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게 그럴 수 있는 사안인가. 시청사 이전은 고양시로서는 더없이 중차대한 일이다. 먼 미래를 바라보고 지역발전에 가장 적합하고 유리하게 결정돼야 한다. 그리고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진행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한인회관 앞 상징물 하나를 설치하는 데에도 한인동포들의 의사를 반영하는데 굳이 말할 필요조차 없다. “민주적 절차로 진행했다면 결정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고양시 고위 공직자의 말은 궤변이다.

그래서 내놓는 제언이다. 상황을 2개월 전으로 되돌려 필요한 절차를 밟자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시민들의 폭넓은 의견 수렴과 전문가들의 면밀한 검토 과정을 거치자는 것이다. 형식만이 아닌, 시민들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내용의 행사를 열자는 것이다. 실제로 지역의 일부 시민단체가 토론회 개최를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다고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필요한 절차는 밟는 게 옳다. 그러는 과정에서 적정한 해답을 찾을 수도 있다.

이제 좀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크게 흥분된 지금의 지역사회 분위기는 무서울 정도다. 시청사와 관련해 무슨 말을 하다가 몰매 맞을까 겁난다는 이들까지 있다. 특히 시청사 주교동 존치를 주장하는 시민들의 거친 언행은 시민사회의 분열을 가중시킬 수 있다.

내친김에 지역 정치인들에게 신중한 언행을 요구하고 싶다. 국회의원이나 당협(지역)위원장서부터 시도의원들까지 앞장서 시민들의 분열을 부추기는 듯한 언행은 영 볼썽사납다. 전임 시장까지 나서서 가타부타하는 것도 탐탁지 않다. 오로지 정략과 표심만 의식하고 그들이 풍겨내는 인기영합의 냄새는 시민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서두에 절차의 규범으로 토론, 관용, 다수결, 비판 및 타협 등을 거론했었다. 고양시장과 시민들에게 이 말의 의미를 곱씹어보자 권하고 싶다. 누가 뭐래도 고양시는 발전의 여지가 많은 희망의 도시다. 그런데 현재 지역의 혼란스러운 모습은 너무 안타깝다. 필요 없이 소모되는 시민사회의 에너지가 참으로 아깝다.

이제 결론적인 이야기를 하자.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다. 아무리 급하고 중요한 일이라도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다. 아무려면 바늘허리에 실을 묶어 바느질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바늘귀에 실을 꿰는 차원에서 고양시 시청사 딜레마의 해법을 절차를 통해 찾아보면 어떨까.

고양=정수익 기자 sagu@kukinews.com
정수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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