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첩첩산중에 빠졌다. ‘단일대오’에 실패하면서 당대표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게 됐다. 당내에서는 이 대표의 결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회는 27일 본회의를 열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건을 무기명 투표에 부쳤다. 출석인원 297명 중 찬성 139명, 반대 138명, 기권 9명, 무효 11명으로 가까스로 부결됐다.
압도적 부결을 자신해왔던 민주당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찬성과 기권을 합쳐 민주당 진영에서만 30표가 넘는 ‘반란표’가 쏟아진 탓이다. 당내에서는 이날 표결 결과를 두고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를 향한 경고’라는 해석이 나왔다. 비명(비 이재명)계가 결집해 조직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려는 의도가 이탈표에 반영됐다는 의미다.
간신히 구속을 면했지만, 이 대표의 갈 길은 멀다. 당장 오는 3월3일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 혐의 재판이 남아있다. 이후 공판 기일이 잡힐 때마다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에 출석해야 한다. 검찰이 백현동 특혜·쌍방울 대북송금 의혹 등을 수사 중인 만큼, 또다시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추가 기소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 당헌 80조’ 논란의 불씨도 남아있다. 당헌 80조는 당원이 기소될 경우 직무가 정지된다고 규정한다. 친명(친 이재명)계·당 지도부는 이 대표가 기소되더라도 ‘정치적 탄압’이라는 예외 조항을 들어 대표직을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비명계는 당헌 80조를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고 압박해왔다. 당헌 해석을 둘러싼 내분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내에서는 총선 전 내분 조짐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친명과 비명계 간 갈등이 전면화하는 모습이다. ‘개딸’로 불리는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은 표결 직후부터 이탈표 색출 작업에 나섰다. 비명계 의원들에게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이란 의미의 은어) 인증 제대로 했네요” 등 문자 테러도 감행했다. 일부 의원이 “부결에 투표했다”며 강제로 해명에 나서는 일도 벌어졌다. 일부 친명계도 “이 대표가 대선을 이겼으면 자기가 가장 공이 크다고 하고 다녔을 사람들이 오늘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당내 분열을 계기로 이 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대표적 비명계인 이상민 의원은 2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예상보다 많은 이탈표가 나온 것을 두고 “겉에 나온 숫자는 빙산의 일각이다. 그것(기권·무효표)도 (체포동의안) 찬성이라고 봐야 한다”라며 이 의원은 “‘방탄 국회’ 비판이나 이 대표 스스로 대선 당시 공약한 ‘불체포특권 폐기’를 뒤엎는 데 불편해하는 의원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 거취 문제를 앞서 언급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어떤 조치가 필요한 것은 틀림없다”라며 이 대표 사퇴를 우회적으로 압박했다. 이 의원은 “이 대표가 억울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문제로 당에 부정적 이미지가 덧씌워지는 데 책임이 있는 건 틀림없지 않나”라며 “그냥 설렁설렁 넘어가거나 ‘별일 없겠지’ ‘다시 또 얘기해 보면 되겠지’ 등 완만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리더십 공백이나 혼란이 당분간 있을 수는 있지만, 민주정당에서 특정인에만 의존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명계로 분류되는 강병원 민주당 의원은 전날 표결 이후 기자들과 만나 “당이 체포동의안을 계속 방탄할 수 없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그런 표시가 아니었을까”라며 “국민들이 보기에 ‘방탄 정당’으로 회복할 수 없는 이미지로 낙인찍히는 건 막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됐다”고 말했다.
이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쉽게 물러서지 않고 있다. 오는 3월부터 다시 지방 곳곳을 도는 경청 투어를 진행할 계획이다. 원내에서는 김건희 여사 주가 조작 의혹과 대장동 50억 클럽에 대한 쌍특검 추진 등 대여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민생·쌍특검’ 투트랙 행보를 통해 국면전환에 나서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민생 드라이브를 거는 동시에 특검을 앞세워 지지층 결속을 다지려는 모양새다.
신율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대표가 자진해서 사퇴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의혹이 알려진 상태에서 국회의원과 당대표 출마를 감행했던 사람”이라며 “절대로 당대표직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대여 공세를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