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방식으로 ‘제3자 변제’를 택한 것을 놓고 정치권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여권에서는 국익을 위한 차선책이라는 평가가 나온 반면, 야권에서는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윤 대통령은 8일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에서 한일 관계 복원을 재차 피력했다. 그는 “국제관계 역시 빠르게 정상화해야 한다”며 “무너진 한미동맹을 재건하고 한일 관계를 빠르게 복원하는 것은 우리의 생존과 국익뿐 아니라 헌법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와 직결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최근 결정된 일본 강제징용 판결 해법을 의식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세계적 복합 위기, 북핵 위협을 비롯한 엄혹한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미일 3국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반드시 직시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우리의 미래는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다”며 “기득권의 집요한 저항에 부딪혀도 미래 세대를 위한 길, 나라의 혁신을 위한 길을 결코 포기하거나 늦춰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홍준표 대구광역시장도 정부의 징용 피해자 배상 해법 방안을 옹호했다. 홍 시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해법은 북핵과 안보가 엄중한 상황에서 한·미·일 자유주의 동맹을 공고히 하기 위한 고육지계(苦肉之計·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해 꾸며내는 계책)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홍 시장은 “한미 FTA체제 당시에도 민주당은 나를 이완용에 비유했고 제2의 을사늑약이라고 공격했다”며 “민주당은 이번에도 똑같은 논리로 공격하지만 미래 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해서 우리가 어른스럽게 한발 물러서는 것도 차선의 방책이 될 수가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어 “미 로스앤젤레스 법원은 2차 대전 종전 후 미군 포로가 학대를 이유로 일본을 제소했을 때 우리와는 달리 그 아픔은 이해하지만, 종전 협상으로 청구권이 소멸하였다고 판시 한 바도 있다”고 짚었다.
선친이 징용 피해자라고 밝히기도 했다. 홍 시장은 “저의 선친도 일제 강점기 징용 피해자였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과 대만간의 양안 문제로 세계 정세가 어지러운 판에 이번 한일관계 해법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윤 대통령의 고육지계로 이해한다”고 거듭 정부 방침을 감쌌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정부의 일제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에 대해 “일본의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었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석열 정권은 이러한 역사와 정의의 전진을 거꾸로 거스르며 일본의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었다”며 “115년 전 여성노동자들의 외침이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해 달라’는 존엄의 절규였듯 강제동원 문제는 보편 인권과 직결된 문제다. 따라서 더더욱 보편적 가치에 기초해 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가해자의 반성과 사죄도 없이 5년짜리 정권이 함부로 면죄부를 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이미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신 위안부 할머니,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계시다. 존엄과 명예를 회복해 드릴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며 “민주당은 역사의 피해자를 저버린 정권의 망동을 좌시하지 않겠다. 위안부 할머님들의 용기를 본받아 역사 퇴행에 결연히 맞설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도 정부를 향해 “독도도 내줄 것 같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진 교수는 지난 7일 오후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일본은 한일관계든 독도 문제든 (그대로) 놔두고 계속 카드를 들고 있다. 언젠가 자기들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때가 오고 우리 정부는 (그때마다) 급한 대로 보상을 해 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정확하게 ‘빵셔틀’이고 일본은 일진”이라며 “사람들이 되게 나이브하게 ‘우리가 양보했으니까 도덕적 우위에 선다, 그다음에 일본의 호응을 기대한다’고 하지만, 일본이 호응하겠냐”고 반문했다.
진 교수는 정부의 제3자 변제안에 대해 “일본 입장에서는 가장 좋은 안이다. 일본 정부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외교적으로 참패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정신세계가 대한민국 극우 판타지에 사로잡혔다”며 “참모들이 다 반대했는데 자기(윤 대통령)가 역사적 결단, 실존적 결단, 일종의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굉장히 위험한 상태”라고 주장했다.
앞서 외교부는 지난 6일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 입장 발표문’을 발표했다. 지난 2018년 대법원 확정 판결에서 일본 전범기업(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에 승소한 강제동원 피해자 총 15명(생존자는 3명)을 대상으로 행정안전부 산하 공공기관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판결금(1인당 1억원 또는 1억5000만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할 계획이라는 내용이다.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판결금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 제3자를 통해 마련한다. 일본제철·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들은 일단 재단의 판결금 재원 조성에 직접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는 피해자 측이 요구해온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일본 전범기업들의 배상 참여와는 상반돼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