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VB사태에 윤석열표 특화은행 도입 ‘급제동’

SVB사태에 윤석열표 특화은행 도입 ‘급제동’

SVB 파산 원인, 미 연준 긴축발 업계 자금난
특정 영역 여·수신 집중, 외부 충격에 취약

기사승인 2023-03-14 06:00:11
SVB 폐쇄를 알리는 안내문.  SVB 홈페이지.

윤석열 대통령의 은행 경쟁촉진 지시에 따라 특화은행 도입이 검토되는 가운데 SVB사태로 특화은행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美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으로 특화은행의 건전성이 외부 충격에 얼마나 취약한지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은행 경쟁촉진을 위한 신규 플레이어 유입 방안의 추진동력이 쇠퇴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은행 경쟁촉진을 위해 ‘스몰라이센스 및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다양한 전문가들과 업계 관계자들로 구성된 은행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와 실무작업반을 꾸리고 해당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지난 2일 열린 첫 실무작업반 회의에서 새로운 은행이 설립될 수 있도록 스몰라이센스 및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 방안이 주요 과제로 논의됐다. 이는 은행이 수행 중인 업무범위를 세분화하여 특화은행을 설립하는 방안이다. 이날 논의 과정에서 도입 모델로 제시된 곳이 미국의 SVB다. 금융당국은 SVB가 별도 인가를 받은 특화은행은 아니지만, 사실상 고위험 벤처기업만을 고객으로 상대한다는 점에서 특화은행으로 구분했다. 

SVB는 자산기준 미국 내 16위, 실리콘밸리 내 1위 은행이다. 벤처기업·임직원의 예적금을 받아 다시 유망 벤처기업에 대출해주는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기술력은 있으나 경영역량이 부족한 벤처기업에 각종 컨설팅, 행사유치, 보고서작성 등 다양한 비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벤처기업 특화 은행으로 평가된다.

국내 금융당국이 도입 모델로까지 검토한 SVB는 지난 10일(현지시간) 파산했다. SVB의 파산은 미 연방준비제도가 급격한 긴축 행보를 보이면서 주요 고객들인 벤처기업들의 자금력이 악화된 영향이 주요했다. 자금난에 빠진 벤처기업들이 대규모 예금인출에 나서고, SVB가 고객들의 예금 인출에 대비해 보유하고 있던 채권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금리의 영향을 받아 대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그레그 베커 SVB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8일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기준금리 인상과 높아지는 예금 인출 수요에 대비해 채권 등 약 210억달러(약 28조원)를 팔아 18억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설명했다. SVB는 이후 22억5000만달러 규모의 증자 계획을 발표했지만 불안 심리가 확산되면서 뱅크런에 결국 문을 닫았다. 

자산규모 미국 16위 은행이 대규모 부실사태 없이 미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만으로 문을 닫은 것이다. 이는 은행의 예금과 대출이 특정 영역에 국한된 문제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화은행의 이러한 문제는 국내 실무작업반 회의에서도 동일한 우려를 불러왔다. 1차 회의에서 여신이 특정 부문에만 집중된 은행은 해당 부문의 자산건전성 충격을 다른 부문의 여신을 통해 흡수하기 어려워 더 높은 수준의 자본적정성이 필요하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SVB 사태로 특화은행 도입은 은행 경쟁 촉진 방안에서 탈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재 당국이 살펴보고 있는 방안들은 여러 문제에도 은행 경쟁촉진을 위해 재검토에 들어간 방안들”이라며 “SVB사태로 특화은행의 건전성 우려가 커져 이를 국내에 도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종 결정권을 쥐고 있는 당국에서 향후 논란이 될 수 있는 방안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키움증권 김유미 연구원도 “이번 사태는 전체 은행 시스템과 연계는 제한적이지만 직접적인 노출이 있는 일부 지역 은행에 영향을 미칠 여지는 있다”며 “소규모 은행 재무 건전성에 대한 신뢰 상실, 규제 강화와 투자자 회의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신규 은행 인가 방안의 추진 동력 자체가 떨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은행 경쟁 촉진으로 은행산업의 전반의 수익성과 건전성이 악화될 경우 제2의, 제3의 SVB사태가 국내에서 발생할 수 있어서다. 특히 금리가 하락하고, 경기가 침체하는 상황에서 은행들의 건전성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두고 우려가 높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업에 신규 플레이어 진입을 위해 그나마 가능성이 높았던 방안이 소규모 특화은행 도입과 지방은행 신설이었지만 이번 SVB사태로 두 방안 모두 가능성이 낮아졌다”며 “지방은행은 충청은행 도입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충청은행 도입모델이 SVB였던 만큼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한편 SVB 사태가 윤 대통령이 강조한 은행의 공공재 주장에는 설득력을 보탰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SVB 파산에 미 정부가 SVB의 모든 예금을 보호하는 결정을 내렸다”며 “이는 공적자금 지원을 거론하며 은행의 공공재 성격을 강조한 윤 대통령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라고 평가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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