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의 ‘주69시간’…국정 신뢰 빨간불? [여의도 고구말]

불통의 ‘주69시간’…국정 신뢰 빨간불? [여의도 고구말]

尹대통령 “MZ 의견 면밀히 들어 보완 검토하라”
총리는 “합리적 제도” 딴소리
野, 69시간제 재검토에 “대통령은 말로 때우고, 정부여당은 우왕좌왕”

기사승인 2023-03-16 06:00:15
‘여의도 고구말’은 국회가 있는 여의도와 고구마, 말의 합성어로 답답한 현실 정치를 풀어보려는 코너입니다. 이를 통해 정치인들이 매일 내뱉는 말을 여과 없이 소개하고 발언 속에 담긴 의미를 독자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사진=임형택 기자

 정치권이 윤석열 대통령의 노동시간 유연화 법안 재검토 지시를 두고 종일 혼선을 빚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고용노동부가 최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과 관련해 “법안 추진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청년층을 중심으로 ‘주 최대 69시간’ 근무에 강한 반발이 쏟아진 탓이다.

앞서 고용부는 지난 6일 주 52시간제 근무제 틀은 유지하되, 연장근로 단위를 ‘월·분기·반기·연’으로 다양화하는 내용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을 내놨다. 주 52시간으로 제한됐던 근로시간이 최대 69시간까지 조정 가능하도록 유연화하는 것이 골자다. 정부는 다음 달 17일까지 입법예고를 거쳐 오는 6~7월 국회에 입법안을 제출할 계획이었다.

노동계에서는 정부안이 장시간 노동을 부추긴다는 성토가 쏟아졌다. 청년세대 역시 ‘장기간 휴가’ 선택권이 생긴다는 정부 논리에 대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윤석열 정부 노동정책 기조에 긍정적이던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일명 MZ 노조)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비판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근로자들의 여론을 세밀하게 청취한 뒤 방향을 잡겠다고 물러섰다. 대통령실은 지난 15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69시간이란 숫자가 제시되니 숫자에 너무 매달리다 이런 (취지가 오해받는) 현상이 나타났다”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것을 기준으로 어떻게 조정할지 앞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적으로는 ‘원안 보완’에 방점을 찍으면서도, 상황에 따른 전면 백지화 가능성을 열어둔 셈이다. ‘주 최대 69시간 노동’이라는 수치가 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불통 행정’ 조짐이 포착됐다는 점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윤 대통령의 주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 보완검토 지시와 관련, 원점 재검토는 아니라며 엇박자를 노출하면서다.

한 총리는 지난 14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총회 간담회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은 획일적인 주52시간 규제를 노사 합의로 성수기, 비수기 등을 고려한 유연하고 합리적인 제도로 전환하자는 것”이라며 “정부로서는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큰 프레임은 변화가 없다. 수정을 해야 한다든지 등 생각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 법안 내용을 고칠 뜻이 없다고 선명하게 선을 그은 것이다.

아울러 윤 대통령과 직접 통화했다며 발언의 신뢰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입장과 온도차를 보이면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둘러싼 정부 내 혼선은 가중될 전망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사진=임형택 기자

여야는 입법안을 두고 연일 충돌하고 있다. 여당은 부분 보완과 함께 여론 청취, 정책 홍보를 강화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환경노동위원회는 제도 보완을 위해 오는 16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MZ 세대 노조, 정보기술(IT) 기업,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 토론회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후 현장 방문 및 세대별, 계층별 간담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반면 야당은 퇴행적인 정책을 폐기하라며 전면 철회를 촉구했다. 주 69시간제 정책에 맞서 주 4.5일 법제화를 추진하겠다며 맞불을 놨다. 김현정 대변인은 지난 15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에서 열린 ‘한국노총·민주당 고위급 정책협의회’가 끝난 후 기자들과 만나 “정부에서 주 69시간 제도와 관련해 재검토를 지시했는데 우리 입장은 재검토가 아니라 폐기”라며 “민주당은 오히려 주 4.5일제를 의제화해 입법화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도부도 공세를 펼쳤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근로시간제 개편안 보완 검토 지시에 대해 “대통령은 언제나 말로 때우기 바쁘고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 말 한마디에 우왕좌왕할 뿐,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 몫”이라고 비판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지난 14일 경기 성남에서 열린 주 69시간 장시간 노동, 크런치 모드 방지를 위한 IT 노동자와의 간담회에서 “정부의 퇴행적·반역사적인 방침들이 발표되고 있다”며 “다시 주 69시간제가 도입되면 세계 최장 시간 노동 국가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최은희 기자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