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에 대해 격렬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힘에서는 개정 양곡법이 시행되면 재정 낭비가 심화되고 농업의 후퇴가 예상된다고 반대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윤 대통령과 여당이 대안없이 반대만 한다며 양곡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며 갈등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양곡법 개정안을 살펴보면 제16조 4항에 초과 생산량의 의무매입, ‘시장격리’에 대한 내용이 나와있다. 쌀 수요량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이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할 수 있다. 기존엔 초과 생산량이 생산량의 3% 이상이거나, 쌀값이 전년보다 5% 이상 하락하면 매입할 수 있도록 했지만, 개정안은 ‘할 수 있다’를 ‘해야 한다’로 강제하고, 정부 재량권을 늘렸다.
또한 개정안은 매입 시기를 ‘수확기’ 등 특정 시기로 조정했다. 또 현행법은 쌀을 시장격리할 때 최저가 입찰(수확기가 아닐 때)로 사도록 하는데, 개정안은 시장 가격에 사도록 변경했다.
양곡법 개정안 “소요비용 과도 VS 추정치 지나치게 과장”
이번 양곡법 개정안은 찬반 의견이 치열하게 갈리고 있다. 먼저 양곡법에 반대하는 이들은 ‘예산이 너무 많이 소모된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한 근거는 지난해 10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농경연)이 내놓은 ‘쌀 시장격리 의무화의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나오고 있다.
보고서는 양곡법이 시행돼 쌀 시장격리 조치가 의무화될 경우 올해(2023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1조443억원의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 분석했다. 이는 쌀 의무매입 영향으로 재배면적 감소폭이 둔화되면서 쌀 초과 생산량이 연평균 46만8000t으로 확대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보고서는 구체적으로 2026년부터 증가폭을 키워 2030년에 이르러서는 격리 규모가 최대 64만1000t까지 늘어나고 소요비용은 1조4000억원을 넘어설 것으로 봤다.
보고서는 개정안이 시행되더라도 산지 쌀값은 2030년에 80㎏ 기준 17만2709원으로, 지금의 18만7000만원보다 낮은 수준이 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양곡법 개정안이 시행되지 않는다면 산지 쌀값은 (시행하는 것보다) 더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반면 양곡관리법 찬성측은 해당 보고서의 내용이 과장됐다는 반박을 내놓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농경연은 2023년부터 2030년까지 생산량과 재배면적 감소율을 지나치게 과소하게 추정하여 초과공급량을 과장하고 있다. 단위 면적당(10a)당 평균 541kg이 생산될 것이라는 추정치는 최근 10년간 평균치 516kg보다 25kg이나 더 많다는 것이다.
또한 김승남 의원실에서도 분석한 결과 농촌경제연구원이 추정한 단위면적당 쌀 생산량이 10a당 531kg를 넘어선 것은 1991년 이후 △2009년 △2015년 △2016년 등 단 3번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이를 근거로 평년단수인 512kg/10a를 기준으로 농경연이 예측한 2023년부터 2030년까지 쌀 재배면적에 따른 쌀 생산량을 재분석한 결과 2030년 쌀 생산량은 약 357만톤으로 농경연이 예상한 385만5000톤보다 약 28만6000톤이 적은 것으로 확인됐다. 즉 농경연이 예측한 소요비용은 명백히 과장됐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농경연은 재차 반박자료를 냈다. 농경연은 보고서는 양곡관리법 개정 수정안이 통과된 이후에 나타나는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 쌀 수급 측면에서의 변화를 추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실련은 과거 추세분석을 통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도입 이후에도 이러한 추세가 동일하게 유지될 것으로 가정하고 연구원의 추정결과를 반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실련이 새 제도 도입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분석 결과를 토대로 논지를 전개한 것이라는 뜻이다.
농업 전문가 여·야 정쟁에 농민들 실종…진지한 타개책 모색해야
이처럼 양곡법 개정안을 두고 찬반 의견이 치열하게 갈리는 가운데 농업 전문가들은 ‘쌀’이라는 단일 품목에 지나치게 매몰되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태훈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 양곡법 개정안이 해결하고자 하는 핵심 방안은 ‘쌀의 공급과잉’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해결할 것이냐는 문제인데 사실 쌀이라는 작물은 ‘식량안보’라는 관점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작물”이라며 “생산량이 예측치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논란이 일어나고, 넘치게 되도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쌀’과 ‘농업, 농민’ 두 개념을 양곡법 개정안으로 해결하기란 어려운 문제”라며 “장기적으로 식량정책의 관점과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김 선임연구위원은 “쌀이라는 특정 품목 중심 정책에서 식량 중심 정책으로 전환하고, 벼 재배를 어떻게 할 것인가 보다는 ‘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며 “쌀이 공급 과잉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면적을 줄이고 식사를 위해 재배되는 품종 대신 가공용 쌀을 재배한다거나, 다른 작물로 전환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방안들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 선임연구위원의 주장처럼 논에서 재배되는 품종을 쌀에서 타 작물로 전환 유도를 위해 만들어진 ‘전략작물직불금’ 제도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쌀 이외의 작물) 재배 전환 인센티브가 약하다”며 “인센티브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농민들이 다른 전략작물을 농사할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쌀농가의 작목 전환 유인을 위해 주요 품목별 지원단가의 합리성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앞으로 정부의 전략작물직불제와 국회(야당 제안)의 생산조정제 예산을 통합해 타작물 재배 전환에 대한 지원단가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고물가가 지속되면서 생산단가가 높아지는 만큼 농업 생산비 지원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범진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대외협력실장은 “지난해 1헥타르당 쌀 생산비는 전년대비 7.9% 상승하는 등 농기계용 면세유를 비롯한 농사용 전기, 무기질 비료 등 필수 농기자재 가격 상승분에 대한 차액 보전도 전향적인 검토가 이뤄졌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김동운 기자 chobits3095@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