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출생통보제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여성계의 입장이 서로 엇갈리며 제도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출생통보제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서류상 존재하지 않는 미등록자로 지내는 아동이 없도록 의료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는 제도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2022년 7월까지 사회복지시설 입소자 중 출생 등록이 안 된 아동은 269명이다.
정부는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투명인간’으로 지내는 아이들이 더는 생기지 않도록 출생통보제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지난 13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아동정책조정위원회에서 출생통보제와 함께 임신부가 병원에서 익명으로 출산한 아이를 지자체가 보호하는 보호출산제도를 병행 추진한다고 밝혔다.
출생통보제 도입을 찬성하는 국민 여론은 높다. 지난 14일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 참여자 4148명 중 87.4%(3626명)가 출생통보제 도입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 이유로는 ‘아동의 출생등록 권리 보장’이 42.6%로 가장 많았고 △보건·의료·교육 등 아동 권리 보호(34.5%) △아동학대 예방(22.5%)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법무부가 지난해 3월 출생통보제를 골자로 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하 가족관계등록법)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진전 없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의료계와 일부 여성계의 반발도 풀어야 할 과제다.
의료계는 저출산 기조와 낮은 수가로 인한 경영난이 커지는 상황에서 의료기관의 행정적 부담이 커지고 오히려 병원에서의 분만을 기피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직선제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지난 17일 성명에서 “출생통보를 의료기관의 의무로 넘기게 될 경우 의료기관은 또 다른 인력 보충과 행정적인 부담을 지게 되고, 실수로 신고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한다면 이 역시 의료기관이 책임을 지는 불합리한 일이 생기게 된다”며 “출산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의료기관에 출생 신고 의무를 부과하게 되면 병원에서의 분만을 기피하게 돼 산모와 신생아의 건강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붕괴 직전인 산부인과 병·의원에게 추가적인 의무와 규제를 부과하는 것은 너무하다”며 “출생신고는 민간 의료기관이 아닌 아동 보호 의무를 갖는 국가기관이 해결할 수 있음을 인지해 그에 따른 해결책을 강구해 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일부 여성계와 시민사회단체는 출산을 숨기고 싶은 미혼모의 경우 낙태를 선택해 결국 태아의 생명도 보호받지 못하고 여성의 출산권과 건강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이정숙 선진복지사회연구회장은 20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한순간의 실수로 임신했거나, 임신 사실을 부모에게 숨기려는 청소년들은 정식 병원에서 수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출생통보제가 도입된다면 낙태가 늘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인 측면에서 저출산 심화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반면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를 잘 병행하면 마냥 반대할 이유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전혜성 바른인권여성연합 사무총장은 “낙태를 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오히려 여성의 건강권이나 행복권,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것”이라며 “그런 측면에서 정부 정책에 찬성한다”고 했다. 전 사무총장은 “이번 정부안이 완벽한 아동보호 수단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키울 수는 없지만 다른 좋은 부모를 만나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엄마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만큼 심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조속한 입법 논의가 이뤄지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