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전세사기 피해자를 위해 경매 유예 및 자금지원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지원을 펼치고 있다. 금융당국도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해 총력전에 나선 상황. 다만 금융권의 지원을 두고 전세사기의 한 이해당사자로서 최소한의 책임 이행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과 상호금융권이 전날부터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주택에 대한 경매를 유예했다. 이는 정부 요청에 따른 것으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8일 국무회의에서 전세사기 피해 관련 경매 일정의 중단 또는 유예 등 대책 시행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19일 전 금융권과 함께 전세사기 피해자의 거주 주택의 경매와 매각을 6개월 이상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전날 진행 예정이었던 경매 32건 중 28건이 연기, 4건이 유찰됐다. 유찰된 4건은 부실채권(NPL) 매입기관이 보유한 채권이다.
금융권의 전세사기 피해자 자금지원도 시작됐다. 우리금융그룹은 전날 전세 사기 피해 문제 해결을 위해 그룹 차원에서 5300억원 규모의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우리은행을 중심으로 전세대출(2300억원), 주택구입자금대출(1500억원), 경락자금대출(1500억원) 등을 저리에 공급하는 방안을 내놨다.
은행권은 앞서 전세 피해를 본 피해자를 대상으로 1억6000만원까지 연 1%대 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전세피해 임차인 버팀목전세자금 대출’을 지원하고 있었다. 우리금융의 이번 지원방안은 지원 범위를 주택구입과 경략자금으로 확대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금융공공기관도 전세사기 피해 지원에 적극적이다. 주택금융공사는 전세자금 보증을 받은 피해자의 대출 상환이 어려울 경우 채무자 특례채무조정을 시행하기로 했다. 여기에 피해자들이 피해 주택을 경매에서 낙찰 받을 수 있도록 특례보금자리론을 낮은 금리에 공급하기로 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 사이에서는 금융권의 이같은 역할을 당연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권이 전세사기 피해에 일정 책임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분별한 전세대출이 전세사기가 성행하는 원인으로 작용했고, 금융권이 이를 차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참여연대는 이에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무분별한 전세대출 거품과 과도한 보증한도를 방치해 전세사기와 깡통주택을 대규모로 양산했다며, 두 기관에 대한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실제 은행권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2012년 23조원 규모에 불과했으나, 2016년 이후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해 2019년 100조원을 넘어섰으며, 2021년 말에는 180조원까지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역대급 실적을 올린 금융권이 ‘기금’을 조성해 전세사기 피해자를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고 있다. 또한 전세피해 임차인 버팀목전세자금 대출의 지원 자격과 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민간 금융권에서는 전세 피해자 지원에 공감하면서도 금융 책임론이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전세사기 지원과 관련한 금융권에 대한 요구가 점점 커지는 것 같다”며 “금융권에서는 금융위원장 출신이 회장으로 있는 우리금융이 5300억원의 지원 방안을 발표한 것을 두고 정부에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기금조성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어 부담이 늘어나고 있다. 따지고 보면 금융권도 피해자”라며 “대출이 부실화되고 담보가 경매에 넘어가면 금융권의 손실도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금융권 특성상 한 곳이 나선 만큼 나머지 금융사들도 따라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저리 대출 지원에 나설 것 같다”고 말했다.
조계원 기자 chokw@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