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의 발언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그간 절제된 발언으로 신중함을 유지했던 그가 최근 논란이 될만한 발언들을 연달아 내면서 이슈를 선점하려는 모습이다. ‘키워드’ 정치를 통해 크게 주목받던 경기도지사 시절을 연상시킨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사건으로 민주당이 수세에 몰린 가운데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일반적이나, 그간 언급을 피했던 김건희 여사를 향한 공세 발언까지 내놨다는 점에서 정부 여당을 향해 전면전을 선포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이 대표는 최근 며칠 사이 주목할만한 발언을 연달아 내놨다. 지난 24일 송 전 대표의 기자회견을 묻는 취재진의 질의에 “김현아 전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수사는 어떻게 돼 가고 있느냐”고 반문했으며, 다음 날인 25일에는 송 전 대표의 출국금지 조치에 대해 질의하자 “박순자 전 의원 수사는 어떻게 돼 가나. 관심이 없으신가 보다”라고 말했다.
평소 취재진의 질의에 묵묵부답하던 이 대표가 짧지만 강력한 발언을 내놓자 크게 주목됐다.
기본적으로는 당내서 최근 불거진 ‘돈봉투 의혹’ 사건에 따라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하기 위한 차원의 발언 가능성이 크다. 야당에게만 가혹한 검찰의 편향적인 수사 행태를 지적하면서 여론을 바꿔보려는 의도인데 반성과 쇄신없이 부정 이슈를 프레임 전환하려는 점에서 비판도 받고 있다.
주목할 점은 지난 24일과 25일 연이은 반문 화법에 이어 26일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는 김건희 여사를 겨냥한 깜짝 발언을 폈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장경태 최고위원이 최근 경찰에 김건희 여사 조명 논란과 관련해 송치된 것에 대해 “제가 봐도 조명 같은데 저도 고발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장 최고위원이 준비한 김건희 여사의 캄보디아 프놈펜 방문 당시 심장질환 아동을 방문한 현장 영상을 두 차례 시청한 후 나온 발언으로 다소 이례적이었다.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에 국정 운영에 대한 강한 비판들은 있었지만, 김건희 여사를 향한 공세는 없었기 때문인데 의도가 담긴 메시지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사흘 연이어 ‘키워드’를 활용한 발언을 하면서 그동안 감춰뒀던 정치력을 발휘해 반격의 카드로 쓰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쿠키뉴스와 통화에서 “김현아·박순자 전 의원에 대해 되묻는 것은 민주당의 곤궁한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면서도 “다만 언급을 잘 안 했던 김건희 여사를 직접 공격한 것은 이제 제대로 정부 여당과 한 판 붙어보겠디는 의미일 것”이라고 말했다.
데이터 전문가이자 정치평론가로 활동 중인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소장도 “전면전의 선언”이라고 비슷하게 해석했다. ‘돈봉투 의혹’으로 궁지에 몰린 이 대표가 전면전 기조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배 소장은 “최근 ‘돈봉투 의혹’과 관련된 빅데이터를 분석해보면, 그 주목도가 송영길 전 대표보다 이재명 대표 쪽으로 넘어가 버렸다”며 “(돈봉투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송 전 대표를 쳐내야 하지만, 이는 결국 이 대표 스스로 쳐내야 한다는 의미이기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중도층·무당층·MZ세대에서 반발 부정 심리가 많이 작동하는 대상이 김건희 여사”라며 “이를 이용해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경기도 대변인을 지낸 정치평론가 김홍국 경기대 교수는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야당에게만 불리한 현재 검찰 수사 상황에 대한 항변이자 호소”라며 전면전 의도는 아니라고 봤다.
김 교수는 “검찰 권력을 통해 야당의 잘못은 크게 침소봉대하면서 여권 인사에 대한 수사는 잘 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지적하는 것”이라면서 “특히 김 여사에 대한 발언은 임기 1년이 가까워지는 가운데 대통령실에 대한 언론과 검찰의 검증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짚은 것이고, 여야 모두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봐달라는 일종의 메시지”라고 강조했다.
황인성 기자 his1104@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