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만 23년간 누린 ‘특권’ 깰까… 면허취소법 손질 어떻게

의사만 23년간 누린 ‘특권’ 깰까… 면허취소법 손질 어떻게

정부·여당, 법안 시행 전 재개정 검토… “면허 취소 과도하다”
변호사·회계사도 ‘결격사유’인데… 의사만 2000년부터 제외
의협 회원도 절레절레… 박호균 변호사 “결격사유 외려 강화해야”

기사승인 2023-05-19 06:00:12
사진=박효상 기자

‘철통 면허’라 불리던 의사의 면허 결격사유가 확대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금고 이상 형을 받은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내용의 법안을 공포하면서다. 그러나 여당과 의사단체에선 ‘과잉 입법’이라며 재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면허 결격사유가 축소될 가능성도 열려있다.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여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의사면허취소법(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법 재개정 방안을 검토 중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의료인이 모든 범죄에 금고 이상의 형을 받는 경우 면허를 취소한다는 것은 과도하다는 여론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관련 법 개정 방향과 관련해 당정협의를 진행하겠다”고 설명했다.

의사면허취소법이라 불리는 의료법 일부 개정안은 의료인 면허 결격사유를 확대하는 것이 골자다.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 이상 실형을 선고받아 면허가 취소된 뒤 또다시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을 경우 면허 취소와 함께 10년간 재교부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사들은 이를 두고 ‘과잉 입법’이라며 법안 손질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성범죄 등 반인륜적·반사회적 범죄에 대한 의료인 면허 취소에는 공감하지만, 업무 연관성이 없는 교통사고·금융사고 등과 같은 민·형법상 과실로 인해 면허가 취소될 수 있다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이다.

업무상 관련 없는 일반 범죄로 의사면허를 제한하면 많은 의사들이 적용돼 의료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또한 직무 관련성이 없는 범죄를 결격사유로 규정하는 것은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란 이유를 들기도 했다.

의사들은 법안이 시행되기 전 국회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17일 “국무회의 전후로 정부와 여당이 밝혔던 계획대로 의료인 면허취소법은 위헌 소지를 없애고, 국민 정서에도 부합하는 수준으로 재개정안이 마련돼 국회에 상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범죄→중범죄’ 중재안 중심 재개정될 듯

여당이 의사단체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의사면허취소법 재개정안은 앞서 제시했던 ‘중재안’ 내용을 중심으로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이양수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지난 3일 쿠키뉴스에 “당에선 당초 제시한 중재안을 중심으로 법을 개정하길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재안은 의사단체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정부·여당이 지난달 11일 민·당·정 간담회에서 제시한 의료법 중재안은 ‘모든 범죄에 대한 금고 이상의 형’ 부분을 ‘의료 관련 범죄와 성범죄, 강력 범죄에 따른 금고 이상의 형’으로 범위를 축소했다. 현행 행정 기본법 제16조 2항이 규정한 결격사유와 충돌한다는 이유에서다. 면허 재교부 역시 10년에서 5년으로 수정했다.

“타 직역 형평성 위배… 의사도 ‘금고형 이상’ 면허 취소해야”

그러나 일각에선 23년간 이어진 ‘특혜’를 이젠 깨야 한다고 지적한다. 의사도 다른 전문 직종과의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1999년까진 의사 역시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변리사, 법무사 등 다른 전문 직종처럼 범죄의 구분 없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 받은 경우 면허를 취소했다. 그러나 정부가 의료법을 개정하면서 2000년부터 면허취소 대상 범죄의 범위를 ‘허위진단서 작성 등 형법상 직무 관련 범죄와 보건의료 관련 범죄’로 좁혔다.

의사 출신이자 의협 회원인 박호균 변호사(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대표)는 “그간 다른 전문직이나 선진국과 비교해도 자격요건은 현저히 미달되는 수준이었다”면서 “23년 만에 법이 개정된 것에 대해 다소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법안이 처리된 건 바람직하다고 본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건 의사 면허 결격사유를 확대해야 한다는 국민 정서를 고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개정이 필요하다는 의사들의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도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무엇이 중범죄인지에 대한 기준이 없다. 형법상 어떤 범죄가 중범죄인지 의료법에 모두 명시해야 하는데, 현실성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직무 관련 범죄에 대해서만 면허를 정지해야 한다는데, 그럼 변호사들은 아무 관련 없는 범죄에 대해 자격을 규제하는 것이 타당한가. 그렇게 따지면 이 경우도 부당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개정을 하더라도 업무상 과실치사를 포함해 결격사유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의료사고로 숨진 고(故) 신해철 씨 유족을 변호한 박 변호사는 “현재 개정안은 고 신해철 씨 집도의처럼 아무리 많은 사람을 사상케 하더라도 의사면허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건데, 말이 안 된다”며 “업무상 과실치사도 포함해 다시 손봐야 한다”고 했다.

우발적 실수로 인한 교통사고 때문에 면허를 잃을 수 있다는 의사들의 걱정이 기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금고형 이상은 의사들의 주장처럼 단순 실수로 받는 가벼운 범죄가 아니다. 고의로 반복해서 범죄를 저지를 때 금고형까지 가는 것이지, 우발적 실수로 인한 교통사고로 금고형이 나오진 않는다”며 “다른 전문 직종도 금고형 이상의 형으로 자격이 제한된 경우가 극히 드물다. 많은 의사들의 면허가 취소돼 의료현장에 혼란이 빚어질 것이란 의사들의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일갈했다.

실제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과 경실련이 최근 5년간(2018년~2022년) 공인회계사, 변리사, 공인노무사, 관세사, 가맹거래사의 전체 등록자 대비 금고형으로 인한 면허제한자 수와 비율을 산출한 결과, 연간 평균 1.4명의 자격이 제한됐다. 전체 등록자 대비 금고형 면허제한 비율은 0.01%에 불과했다.

다만 처벌이 과도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정혜승 대표변호사(법무법인 반우)는 “교통사고라도 피해자가 사망하는 경우 실형 선고가 나온다. 피해 규모에 따라 금고형이 나올 수도 있다”며 “이번 개정안은 선고유예를 받아도 면허가 취소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는 균형에 맞지 않은 과도한 처벌이라 재개정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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