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에 의하면, 교육청에 쓸데없어 잠자는 돈이 21조원이나 된다 한다. 지난 15일 국회예산정책처와 기획재정부는 2022년말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의 「통합재정안정화기금」과 「교육시설환경개선기금」 등의 적립금 규모가 21조1,792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교육청 기금의 증가는 최근 몇 년 간의 초과세수(超過稅收) 덕분에 지방교육재정교부금(내국세의 20.79%)이 커졌기 때문이라 한다. 제도개선 없이는 이런 상황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넘쳐나는 여윳돈을 주체하지 못해 학생들에게 입학지원금이나 간식비 지원, 태블릿PC 무상지급, 심지어 소풍비 등 온갖 명목의 선심성사업으로 탕진하고 있다니 그저 안타깝기까지 하다.
노인복지영역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이 그저 참담하기만 하다. 노인복지분야의 핵심정책인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2008년 7월에 도입되어 15주년을 맞았지만, 여전히 갈팡질팡이다. 제도적인 미비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종사자들의 처우는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가 상징하듯 처참하다.
여러 가지 여건이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 도입을 위해 민간에 손을 내밀었던 정부가 인제 와서는 ‘요양시설의 서비스 품질과 공공성’을 운운하며 ‘공립요양시설 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작 민간 법인요양시설 종사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필요한 재원마련에는 뒷짐을 진채 온갖 꼼수를 동원해 민간시설을 억압하는 건보공단의 처사를 모른 체하는 정부가 얄밉다.
정부는 제1·2차 「장기요양기본계획」에서 ‘재정누수를 방지하겠다’며 건보공단으로 하여금 요양시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다시피 하며 지원적·촉진적 기능보다는 억압적 관리의 명분을 제공하는 우(愚)를 범했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노인복지중앙회 등 관련 단체의 문제 제기에 귀 막고 눈 감은 채 오히려 현지조사와 환수 등의 폭거적 요양시설 관리를 조장해 왔다.
또 2017년의 제2차 「장기요양기본계획」에서는 ‘국가지원 확대 및 추가재원 확충’을 명시했지만, 현재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오죽하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2022.5.3.)에 장기요양분야 교수들이 “예상보험료의 20%까지 국고지원 수준을 인상해야 한다”고 지적했겠는가?
그저 단견적(短見的) 소견으로 ‘교육청의 남는 돈을 노인복지에 쓰자’는 것이 아니다. 열악한 처우와 높은 노동강도 등으로 요즘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렵다. 자격증을 취득한 요양보호사 194만의 24.8%인 불과 48만명만이 활동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을 정도다. 게다가 재직 중인 요양보호사의 85.8%가 50대 이상인 이대로 지속된다면, 5년 내지 10년 후면 장기요양제도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NO老케어’(老老케어) 이다.
이런데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여전히 ‘복지부동(福祉不動)’이며, ‘강건너 불구경’이다. 차라리 정부가 그냥 보고만 있는 게 더 낫지 싶다. 요양시설 종사자 12개 직종 중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간호(조무)사, 물리(작업)치료사 등 일부 직종만을 ‘장기요양요원’으로 규정해 장기요양요원지원센터 및 지자체로 하여금 지원 및 처우개선비를 지급하게 해 나머지 종사자들은 ‘따돌림’을 받게 해 종사자들간 차별의식까지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노인복지분야에 대한 국가의 재정지원을 줄이려는 ‘꼼수’에 다름 아니다. 지난해 9월 이기일차관은 장기요양위원회 위원장에 선임되면서 “장기요양제도를 설계한 사람으로 제도 발전에 적극 나서겠다”고 공언(公言)한 바 있다. 그의 말이 공언(空言)이 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조규홍장관은 1988년 행정고시 합격 후 재정관리관으로 마친 2018년까지 30여 년간 기재부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경제관료다. 어쩌면 윤석열대통령이 그를 복지부장관에 앉힌 배경은 “기재부 경력을 살려 곳곳의 잠자고 있는 재원을 찾아 복지영역에 투자하라!”는 나름의 전략(?) 아니었을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장·차관을 비롯한 보건복지부 관료들이 일치단결해 제도설계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기를 촉구한다. 또한 30년 베테랑 경제관료의 식견과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 2025년으로 전망되는 초고령사회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는 사명감으로 장기요양제도를 살릴 수 있는 계기를 조속히 마련하기를 촉구한다. 교육청 기금과 같이 잠자는 재원부터 끌어 모아 노인복지, 장기요양제도를 살리는 방안을 강구하도록 권면(勸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