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국회의장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를 추모하며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정치개혁을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23일 오후 경상남도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진행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도식에 참석해 “요즘 저는 대통령님께서 남기신 정치개혁의 유업을 떠올리는 날이 많다”고 운을 띄었다.
김 의장은 지난 2003년 참여정부 출범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고, 참여정부에서 경제부총리와 교육부총리를 역임한 바 있다.
김 의장은 “대통령님께서는 지역주의 극복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으셨다. 지역구도를 깨는 선거법만 동의해주면 권력의 절반, 내각구성 권한까지 넘기겠다고 하셨다”며 “서로 발목잡기에 몰두하는 낡은 정치를 끝내기 위해 진영을 초월한 대연합의 정치를 구상하기도 하셨다”고 했다.
김 의장은 “우리 정치가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메어온다”며 “그 일로 진영 내부에서 많은 공격을 당하기도 하셨으나 그건 정파의 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참으로 노무현다운 충정이었고, 절절한 호소였다”고 했다.
아울러 “대통령께서는 책임정치에 충실하고 국정의 연속성을 높이기 위해 4년 연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하자는 제안도 하셨다”며 “그러나 대통령님이 떠나신지 14년이 다 되도록 우리는 그 유업을 이뤄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2004년 탄핵의 광풍이 몰아치던 무렵 대통령님을 지키고, 힘을 드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정치의 길에 들어섰다”며 “이제 저도 정치 인생을 마무리할 시간이 머지않았다. 저는 대통령님이 남긴 정치개혁의 유업을 완수하는 것이 제가 풀 마지막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거듭 “지역주의와 승자독식, 진영정치와 팬덤정치를 넘어 우리 정치를 능력 있는 민주주의로 바로 세우겠다”며 “대통령님께서 저 하늘에서 활짝 웃으시며 ‘야, 기분 좋다’ 하실 수 있도록 간절하게, 온 정성으로 정치개혁의 유업을 이루겠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 의장의 추도사 전문
대통령님, 노무현 대통령님.
잘 계신지요? 그곳에서는 평안하신지요?
손꼽아 세어보니 저는 대통령님을 6년 동안 모셨고,
떠나보내고 또 14년을 살았습니다.
이제, 모신 시간보다 떠나보낸 시간이 곱절을 넘어섰습니다.
그런데도 해마다 찔레꽃 필 무렵이 되면 대통령님이 그리워지고,
불쑥불쑥 가슴이 저려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모든 분들이 그런 마음으로
차마 대통령님을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2003년 1월이던가요?
그날, 대통령님께서는 요즘 도통 잠을 못 이루신다며
성공한 대통령이 되자면 무엇부터 해야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제가 경제밖에 모르긴 합니다만, 다른 걸 다 잘해도
경제에 실패하면 성공한 대통령으로 평가받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하고 말씀드렸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또 그 얘기입니까? 이미 OECD 국가고,
성장만 보고 달려왔는데 언제까지 경제 하나만 매달려야 합니까?"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경제를 성공시켜 국민에게 사랑받은 클린턴 대통령 사례를 들며,
국민의 소득과 교육수준이 높아질수록
경제의 중요성이 높아진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대통령님은 한참을 생각하시다가
"인정합니다. 그럼 경제를 잘하자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대통령님.
저는 지금도 그때 벅차오르던 그 심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날, 저는 객관적 사실 앞에서는
필생의 소신까지도 기꺼이 접을 줄 아는
산처럼 큰 용기를 지닌 정치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경제를 잘하자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시던 그 질문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말씀이 되었습니다.
그날, 인재를 널리 찾아야 한다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성문 밖에 살던 사람이 성문을 열고 들어가 나라를 경영하자면
성문 안팎에서 사람을 두루 찾아야 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대통령님은 지방 출신의 비주류 정치인, 성문 밖 사람이셨지요.
저는 평생을 공직자로 살아온 성문 안 사람이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성문 안팎을 가리지 말고
정부 주요 직책에 임명할 수 있는 인재풀을
적어도 3배수 이상 충분히 만들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때 그 결정이 참여정부 5년을 이끈 든든한 힘이 되었습니다.
그즈음, 선거 때 한 공약을 다 지키지 못할 것 같아
괴롭다는 말씀도 꺼내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100대 국정과제를 뽑아서
예산과 일정 등 상세한 추진계획을 세운 다음,
국민에게 있는 그대로 자세히 보고드리면
혹 임기 안에 추진하기 어려운 지역공약이 있더라도
우리 국민께서 충분히 납득하실 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대통령님께서 무릎을 치며 활짝 웃으셨습니다.
마음의 짐을 벗고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시던 대통령님을 보면서
저는 속으로 '우리 국민이 참 솔직한 대통령을 만났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일요일 밤, 대통령님 내외분께서
인수위원회 사무실을 찾아오셨던 일도 생각납니다.
그날, 대통령님께서는 "밥은 먹고 일해야지요" 하시며
손수 사 온 초밥을 꺼내셨습니다.
그때, 내외분이 나눠 끼고 오신 금가락지가 눈에 띄어서
누군가 '커플링을 하셨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수줍어하는 여사님의 만류를 물리치고
가락지를 나눠 낀 사연을 들려주셨습니다.
독학으로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대통령께서 녹음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사님께서 결혼패물을 팔아 녹음기를 사오셨습니다.
그때, 대통령님께서 꼭 다시 패물을 사주겠노라 다짐하셨고,
그날 문득 그 생각이 나서 가락지를 나눠끼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얘기를 하는 대통령님 얼굴에
가족에 대한 미안함 또 고마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두 분이 낀 그 가락지가
제 눈에는 세상 무엇보다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대통령님은 사람 사는 세상과 정치개혁을 갈망하셨습니다.
여의도 높은 담벼락 안에 있던 우리 정치를
평범한 시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동분서주하셨습니다.
그렇게 사랑방 정치, 제왕 정치의 막을 내리고
시민이 중심이 되는 새 정치시대의 문을 여셨습니다.
돈 안 드는 새로운 정치, 정당 민주화.
대통령님이 있었기에 우리 정치가
세계 보편의 선진 민주주의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님과 함께 경제 번영과 교육개혁, 정치개혁을 위해
마음껏 일할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습니다.
요즘 저는, 대통령님께서 남기신
정치개혁의 유업을 떠올리는 날이 많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지역주의 극복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으셨습니다.
지역구도를 깨는 선거법만 동의해주면
권력의 절반, 내각구성 권한까지 넘기겠다고 하셨습니다.
서로 발목잡기에 몰두하는 낡은 정치를 끝내기 위해
진영을 초월한 대연합의 정치를 구상하기도 하셨습니다.
우리 정치가 얼마나 안타까웠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생각할수록 가슴이 메어옵니다.
그 일로 진영 내부에서 많은 공격을 당하기도 하셨지요.
그러나 그건 정파의 이익보다 국민의 이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참으로 노무현다운 충정이었고, 절절한 호소였습니다.
대통령께서는 책임정치에 충실하고 국정의 연속성을 높이기 위해
4년 연임제 원포인트 개헌을 하자는 제안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대통령님 떠나신지 14년이 다 되도록
우리는 그 유업을 이뤄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저는 2004년, 탄핵의 광풍이 몰아치던 무렵,
대통령님을 지키고, 힘을 드려야 한다는 심정으로
정치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제 저도 정치 인생을 마무리할 시간이 머지않았습니다.
저는 대통령님이 남긴 정치개혁의 유업을 완수하는 것이
제가 풀 마지막 숙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거를 앞둔 여야가 목전의 유불리를 고심하다
이번에도 정치개혁에 실패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권력의 절반을 내주는 한이 있어도 꼭 정치개혁을 이루고자 했던
대통령님의 간절한 그 마음으로 임하겠습니다.
지역주의와 승자독식, 진영정치와 팬덤정치를 넘어
우리 정치를 능력 있는 민주주의로 바로 세우겠습니다.
대통령님께서 저 하늘에서 활짝 웃으시며
'야, 기분 좋다' 하실 수 있도록
간절하게, 온 정성으로 정치개혁의 유업을 이루겠습니다.
대통령님, 노무현 대통령님.
내년 봄, 봉하 들판에 찔레꽃이 피면, 그때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그립습니다. 사랑합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