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초안에 포함돼 있는 제한적 초진 허용 대상자를 보면 아쉬움이 남죠. 고령자, 장애인의 경우엔 환자의 상태를 눈으로 보고 촉진(환자의 몸을 손으로 만져 진단)하는 것이 꼭 필요합니다.”
이상범 재택의료학회 대외협력이사(서울신내의원 원장)가 쿠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매주 월·화·목 주 3회 하루 5명에서 많을 땐 12명까지, 환자의 집으로 찾아가 방문진료를 하는 왕진의사로서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다음달 1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19 위기단계가 하향되면서 법적 근거가 사라진 비대면 진료에 대해 시범사범 형태로 공백 없이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시범사업 초안에 따르면 대면 진료 경험이 있는 재진 환자가 주요 대상이다. 제한적으로 초진도 허용한다. 65세 이상 고령자,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섬, 벽지 같은 의료 취약지 거주자에 한해 비대면 진료로 첫 진료를 볼 수 있도록 열어뒀다.
이 이사는 “방문 진료를 하는 의사 입장에서도 비대면 진료 기술이 발전되고 활성화되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반겼다. 그는 “비대면 진료도 재택의료의 일부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며 “시간적·물리적으로 의사가 환자를 자주 보기 어렵기 때문에 대면 진료의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환자의 집에 찾아가 아픈 환자를 돌보는 왕진의사 입장에서 우려되는 부분도 존재한다. 이 이사는 비대면 진료로만 장애인, 고령자의 진찰을 볼 경우 제대로 된 의료적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현재 발전된 수준의 기술이나 기기로는 의사가 직접 환자를 보는 정도의 정보를 얻기 어렵다”며 “환자나 보호자, 요양보호사가 전화·화상 기기를 통해 의료 정보를 의사에게 전해주는 건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고령자, 장애인들에게 흔히 발생하는 욕창이 대표적이다. 욕창은 한 자세로 계속 오래 앉아있거나 누워있을 경우 피부와 피부조직에 손상(궤양)이 유발된 상태를 말한다. 이 이사는 “욕창은 진물이 얼마나 나는지, 깊이는 어느 정도인지, 속에서부터 살이 차오르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비대면 진료로만 증상을 보면 아무리 화상 기기의 화질이 좋다고 해도 제대로 된 의료적 판단이 어렵다”며 “의사가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비대면 진료를 초진부터 허용한다면 오진 가능성이나 의료의 질 저하를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는 “의사가 직접 보는 것이 무엇보다 환자 안전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면서 “가령 산소포화도 수치 등 객관적 지표를 의사가 확인할 수 있다면 보다 제대로 된 진료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런 의료 기기들을 집집마다 지원하는 것도 한계가 있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이 병원까지 가기 어렵다면, 의사가 직접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 진료’를 통해 초진을 하자고 제언하기도 했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 시범사업 등 보건복지부가 기존에 시행되고 있던 재택의료 서비스를 이용해 초진은 대면으로 진료하자는 의견이다.
이 이사는 “고령자와 장애인을 초진 허용 대상으로 넣은 이유는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 아닌가”라며 “이들을 대상으로 방문 진료라는 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다. 초진은 방문 진료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기록하고, 그 다음부턴 환자의 편의를 위해 비대면으로 진료를 하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 한다”고 제안했다.
환자와 가족들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대면 진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이사는 “방문 진료를 가면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많이 듣는 이야기가 ‘안심이 된다’는 것”이라며 “비대면 진료 특성상 오진율을 무시하기 어려울 텐데, 첫 진료부터 비대면 진료를 한다면 의사와 환자 간 라포(신뢰관계) 형성이 어렵다. 또 환자와 보호자들도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재택의료 시범사업도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이 이사는 “재택의료 시범사업으로 인해 달마다 의사가 한 번, 간호사가 두 번 정기적으로 방문해 환자 상태를 보게 되니 큰 병으로 악화되기 전 중간에 개입해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초고령 사회가 다가오며 병원에 가기 어려운 고령자가 많아지는 만큼, 정부가 지원을 강화했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이 이사는 “올해 ‘동반인력 수가’가 신설되면서 재택의료에 대한 지원이 늘어난 게 현장에서도 체감이 된다”면서도 “다만 일본 등 외국에 비해선 아직 수가가 낮다. 의사 개인의 사명감에 기대기보다 정부 차원의 지원을 늘리면 왕진 가방을 드는 의사들이 더 늘어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