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쉴 권리라더니”… ‘대상 축소’ 상병수당, 저소득층 한정되나

“아프면 쉴 권리라더니”… ‘대상 축소’ 상병수당, 저소득층 한정되나

오는 7월 2차 시범사업 ‘소득 하위 50%’ 제한
이주노동자·사회보험 미가입자 배제 그대로
“제도 취지 보편성 잃어… 기준 두고 지원 넓혀야”

기사승인 2023-06-09 06:00:05
게티이미지뱅크.

상병수당 2차 시범사업이 대상 범위를 변경해 오는 7월 시행될 예정인 가운데, 보편성을 잃어가는 제도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1차 대상 범위에서 배제됐던 사람들을 아우르지 못한 채 오히려 범위를 더 좁혔기 때문이다. 

상병수당은 근로자가 업무 외 질병, 부상으로 인해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경우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제도다. 대기업이나 공무원과 달리 병가를 제공받지 못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건강권을 되찾기 위해 만들어졌다. ‘아프면 쉴 권리’가 중심 취지인 셈이다.

상병수당 1차 시범사업은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전국 5개 자치구에서 진행됐다. 당시 대상자 기준은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이거나 건강보험 지역가입자, 피부양자 중 근로·사업 소득이 확인되는 고용보험 또는 산재보험 가입자, 자영업자 중에서도 15세 이상 65세 미만 대한민국 국적자로 정했다. 

이번에 시행될 2차 시범사업은 ‘소득 하위 50%’ 취업자로 대상을 한정했다. 기준중위소득 120% 이하이면서 가구 재산은 7억원 이하여야 한다. 1차 시범사업 지원자 가운데, 소득 하위 50%인 경우가 70% 이상을 차지한 점을 반영했다. 대상자는 줄이되 신청자가 상병수당을 빠르게 지원받을 수 있도록 대기 시간을 줄이겠다는 의도다.

근로자들 사이에서는 더 좁아진 제도 관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택배·배달 업무를 겸하고 있는 초단기 노동자 김모씨(35세)는 “지난해 오토바이 사고로 잠깐 일을 쉬어야한 적이 있다. 상병수당을 신청하려 했더니 노동 기준이 맞지 않아 포함이 안 된다고 했다. 결국 한 달간 수입이 없어 월세를 부모님에게 빌려야 했다”며 “지금도 대상에 포함되지 못하지만, 소득 기준까지 생긴다면 장벽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택배나 배달은 성수기에는 수입이 높지만 지속되지는 않는다. 일을 하다가 다치더라도 소득 기준 때문에 상병수당을 못 받는다면 너무 억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창원 지역에서 대리기사로 일하는 권모씨(50세)는 “고객을 만나러 가던 중 넘어져 팔 골절 수술을 받았다. 당장 돈벌이가 급해 완쾌되지 않은 상황에서 드문드문 일을 유지하다가 2차 사고를 당했다”며 “도저히 일을 못할 것 같아 고용보험 가입 기준을 살펴 상병수당을 신청했는데 2차 사고 때는 고용보험 사업소득 기준(80만원)을 미달해 배제됐다. 아프면 쉬라더니 신청 자체가 어렵다. 이런 부분의 개선 없이 대상 범위만 줄이는 것은 아쉽다”고 전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범사업 기본 방향은 예산 편성 대비 적절한 대상자 규모를 파악하고, 최적의 제도 조합을 찾는데 목적이 있다”라며 “2차 시범사업은 선별형식으로 진행하되, 향후 1차, 2차 결과를 비교해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제도화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8일 ‘상병수당 시범사업,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상병수당 1차 시범사업 평가 결과와 그에 따른 문제점을 논의하는 시간이 이뤄졌다.   사진=박선혜 기자

‘보편적’ 제도 → ‘선별’ 수당 전환, “개선 없이 취지만 퇴색” 

8일 ‘상병수당 시범사업,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한 국회 토론회에서는 상병수당 1차 시범사업 평가 결과와 그에 따른 문제점을 논의하는 시간이 이뤄졌다. 

이날 시민단체와 전문가는 1차 평가 중간 결과가 도출된 시점에서 2차 시범사업이 보완책 없이 대상 범위를 좁혀 진행된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했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진행됐던 1차 시범사업마저 이주노동자를 포함하지 못했다. 또한 사회보험에 가입조차 못한 비정규직 노동자, 임시 일용 노동자, 5인 미만 영세사업장의 일부 노동자, 노점 상인, 가정관리사, 초단기 노동자 등 정작 상병수당이 필요한 사람들이 포함되지 못했다”며 “2차 시범사업 범위는 더 좁아졌다. 배제되는 사람이 더 늘어난 것”이라고 평가했다.

나백주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 대표는 “저소득층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상병수당 근본 정책 취지를 크게 벗어난다. 정부 의도가 질병으로 인한 소득 상실로 소득 계층 하락을 막는 것이라면 중산층 보호가 제외돼선 안 된다. 제도 개선 없이 범위만 좁힌다면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2차 년도 사업 대상 소득 기준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이어 “질병에 걸리면 자동으로 상병수당이 적용되게 하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 따져봐야 하는 신청주의라면 제도 혜택 대상이 줄어드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대상 기준이나 연령 차별을 두기보다 노동 형태, 휴직이나 실직 여부, 앓게 된 질병이 근로 능력을 어느 정도 상실시키는지 파악하고, 합당한 상병수당 지급 방식이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혜주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도 “상병수당 제도는 생산가능인구 증가라는 사회투자적 관점에서 장기적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대상 기준을 좁힐 것이 아니라 ‘모든 일하는 사람’을 포괄해 고려해야 한다. 더 나아가 상병 기간에 대한 고용 유지, 고용 연계 등을 통해 쉬더라도 일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유급 병가 법제화 등이 연계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복지부도 시범사업에 대한 우려사항은 공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반영이 어려운 부분이 있어 단계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준미 보건복지부 상병수당추진단 상병수당제도팀장은 “지적해 준 여러 우려를 공감한다. 그러나 노동 여부를 인증하고, 근로불가 기능을 판단하는 데 있어 아직까지는 반영이 어려운 부분도 있다. 외국인은 시범사업 재원이 조세로 운영돼 적용이 어렵고, 연령 문제도 별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며 “생산연령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 고용관계가 파편화되는 현실 등을 전반적으로 참고해서 장기적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마련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박선혜 기자 betough@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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